「환희의 인간」, 환희의 삶!  크리스티앙 보뱅

 베토벤 교향곡 9번의 백미는 온갖 고뇌가 엉킨 듯한 격정적인 화성을 뚫고 단호하게 ‘Freude!’환희를 부르는 남성 솔로로 시작되는 4악장, 환희의 송가이다. 이를 두고 스위스 로잔의 무용가 모리스 베자르는 인간의 투쟁하는 환희, 흙을 뚫고 솟아가는 희망과 삶의 환희로 묘사하는 무용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 환희에 대한 찬사에 보뱅의 「환희의 인간」을 추가해 부활절이 있는 4월을 보냈다. 그 끝에는 잔잔한 물음이 남는다. “환희란 무엇인가.” 

 수도사처럼 생활하던 보뱅의 고요한 저서들은 튀어오르는 팝콘처럼 핀 벚꽃 같은 환희를 말하지는 않는다. 그에게 환희의 순간은 다만 삶이며, 인간이며 푸르름이다. 다만 그의 환희는 부활을 거쳐낸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그가 ‘죽음’을 거쳐낸 푸르름, ‘죽음의 어두움을 이미 경험한 푸름 말이에요. 나의 문장이 미소 짓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어둠에서 나왔기 때문(21p 서문)’인 푸르름으로 가득찬 페이지를 채웠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81p)

 이 책에는 ‘환희’라는 제목에 걸맞지 않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수차례 등장한다. 작가는 ‘삶이란 죽음으로 천천히 향하는 내리막길’이라는 톨스토이의 철학을 수긍한 듯이 죽음을 거친, 죽음에 대한, 죽음으로 묘사되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리 삶의 불안은 대체로 ‘죽음에 대한 불안’에서 기인하듯이 죽음은 참 불편한 단어지만 또한 결코 덜어낼 수 없는 단어다. 점차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뉴스의 사건 사고 소식을 들으면서 ‘환희’의 감정을 가장 크게 방해하는 것이 ‘죽음’아니던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서는 참 무딘 듯 하다. 고난주간동안 묵상할 때 몇몇 순간을 제외하고서는 예수님의 죽음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순간은 드물다. 그러나 보뱅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한 구절을 통해 신의 존재와 믿음과 우리의 확실한 친구의 윤곽을 보며 오히려 ‘어둠이 짙어져야 별이 보이’는 진리를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삶’이다. 

연약한 인생의 오솔길에 들어선 것이다.(54p) 나는 이 삶이라는 것을 더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죄로 붉게 물든 두 손으로 삶을 헤쳐나간다. (116p) 서투름으로 붉어진, 상처 입은 삶만큼 진실한 것을 본 적이 없다.( 128p) 그들의 손은 삶이라는 신성한 붉은 손이 검게 변하다가 이내 차갑게 굳지 않도록 붙잡아 준다. 아름다움에는 부활의 힘이 있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29p)
단 한 편의 시라도 주머니에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읽고, 쓰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삼위일체다. 시는 불타는 돌들에 둘러싸인 침묵이며 세상은 별들에까지 이르는 차가움이다. (84p)
 
 보뱅의 에세이는 죽음의 언급을 통해 그에 비례 되는 환희를 감각하게 만든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예수그리스도가 바탕에 얇게 비치는 시편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밑그림에 예수의 죽음을 깔아 놓고 그 위를 덮는 찬란한 산책길을 묘사한 시다. 
 결국, 그가 죽음에 대해 다룬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에 맞게 될 우리의 삶을 보듯이 ‘살아간다’는 소박한 즐거움을 깨닫기 위해서다. 그는 무시무시한 ‘죽음’이라는 단어 위에 여전히 흘러가는 연약한 인생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지만 계속 살아가는 부스러기같은 순간에 대한 환희를 말한다. 그것은 설거지하는 순간에도 있고 음악만 남겨놓고 싶어했던 글렌 굴드, 술라주(화가),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 연주자), 바흐의 윤곽에서도 그들이 발견했던 작은 환희를 더듬어가며 말해준다. 우리 생의 따사로움과 부스러기같은 환희의 인간을 돌보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환희를 보는 눈’을 가지기를 당부한다.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사랑스러운 점은 바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황폐할수록 더욱 아름답다. 나는 비천한 이들에게서 금을, 진창에 던져진 얼굴에서 보석을 보았다. 우리는 모두 한 줌의 부스러기로 끝난다. 하지만 이 부스러기는 금으로 되어 있고 때가 되면 천사가 그것으로부터 다시 온전한 빵을 만들 것이다. (127p)

 부활절 이후로 한 해가 9개월이 더 남아있다. 부활절의 뚜렷한 환희, 베토벤 교향곡의 장엄한 환희를 누리기에 우리의 일상은 매일의 설거지처럼 쌓여간다. 어쩌면 이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즐거움은 그보다 더 간단하고 단순한 보뱅식의 환희일 것이다. 

왕은 자신의 왕좌에서 잠시 내려와 길 위에 몇 걸음을 내디디며 ‘환의의 인간’이 되는 것이죠. 이렇게나 간단한 일이랍니다.(21p) 

「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 1984북스, 11,700원

박창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