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서울 하늘 아래에 벚꽃이 활짝 폈습니다. 지난 월요일, 부활절 다음날이었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놀란 마음을 가라앉힌 후 집을 나섰습니다. 언제부턴가 꽃이 피면 이별할 생각이 먼저 들어 조바심이 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아이가 어릴 때 집에서 팝콘을 처음 튀겨 주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전자레인지용 팝콘을 프라이팬에 넣고 유리 뚜껑을 닫았는데 팝콘이 엄청나게 불어나서 뚜껑이 들썩거리더니 결국은 온 집안이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난장판이 되어버렸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바닥에 널브러진 팝콘을 주워 먹으며 팝콘을 닮은 함박웃음을 지었었지요. 올해의 벚꽃도 그때처럼 순식간에 폈고 그 풍성함으로, 그 행복함으로 그때만큼이나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새벽 기도회를 시작할 때 찬송가 541장 ‘꽃이 피는 봄날에만’을 이틀 동안 불렀습니다. 여러 가지 분주한 사역과 연회 일정으로 인해 그토록 기다리던 꽃이 찾아왔음에도 만끽할 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날은 아직 어둡고 봄꽃 가득한 꽃길 속은 아니었지만, 새벽기도의 동역자들과 함께 부르는 이 찬송가는 저의 마음을 봄과 같은 따스한 은혜와 생기로 가득 채워 주었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 은혜의 꽃잔치에 나온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이 찬송의 가사는 꽃이 피는 봄날이라는 하나의 계절만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위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찬송가의 제목도 그렇거니와 덩실덩실 봄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을 닮은 선율 때문에라도 봄꽃이 만개할 때 불러야 제맛인 찬송가입니다. 

꽃이 피는 봄날에만 주의 사랑 있음인가
열매 맺는 가을에만 주의 은혜 있음인가
땀을 쏟는 여름에도 주의 사랑 여전하며
추운 겨울 주릴 때도 주의 위로 변함 없네

이 찬송가의 또 다른 은혜는 작사자 이름의 자리에 있는 손양원이란 세 글자 때문입니다. 순간 투박해 보이던 이 찬송가의 가사에 엄청난 무게감이 실립니다. 말의 무게는 곧 그 말을 하는 사람의 무게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머릿속에서 가다듬어진 어떤 멋들어진 말보다 한 사람의 가감 없는 삶의 무게가 더 큰 것임을 깨닫습니다. 

대학 시절 기독교 동아리 친구들과 손양원 목사님에 관한 책을 함께 읽고 여수 애양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한센병을 앓으셨던 애양원의 몇몇 성도들은 성경 전체를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병으로 인해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고 점자를 읽을 손이 뭉개지고 눈마저 그 기능을 잃게 되자 아예 성경을 통째로 외워 버린 것입니다. 바꿔서 사용한 지가 언제인데 지금까지도 강단에서 찬송가 첫 장을 펴 놓지 않고서는 불안한 마음에 새번역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인도할 수 없는 저로서는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과연 그분들이 어떻게 성경 전체를 다 외울 수 있었을까요? ‘저 천국을 바라보니 이 세상은 나그네 길, 죽음의 길 피하라며 나의 갈 길 막지 말라’ 이 찬송가의 4절에서 드러나는 그대로, 그들의 스승이었던 손양원 목사님께서 몸소 보여 주셨던 믿음의 용기를 배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https://youtu.be/pVDMH7-oJl0?si=3yrNagnRbkltrij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