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필요하다!

《잊혀진 교회의 길》, 앨런 허쉬(Alan Hirsch) 지음, 오찬규 옮김, (아르카, 2020)

‘내 목회를 한마디로 무엇이라 규정할 수 있을까?’ 내놓을 만한 성과는 없어도 목회를 하면서 늘 잊지 않았던 게 있긴 합니다. 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그 일은 그동안 내가 목회하는 교회 공동체의 문제일 뿐 아니라, 한국 감리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35년 전에 목회를 시작할 때부터 오지랖이 넓긴 했습니다. 교회 개혁과 갱신을 위한 각종 모임에 참여해왔던 게 그랬고, 물려받은 신학과 역사적 유산을 오늘 어떻게 되살려서 운동하게 할 것인지, 그 길을 끙끙대며 찾아왔던 모습이 그렇습니다. 씨름해 왔던 내용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를테면 예배와 영성을 회복하는 문제, 공교회성을 회복하는 문제, 지역을 어떻게 섬기고 소통할 것인지, 교회 공동체의 신앙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 등의 문제이지요. 한때는 감리교회 개혁 운동은 교회법(교리와 장정) 개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주장에 솔깃해서 귀를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감리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파적 특성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운동의 핵심은 교회를 바로 세우는 게 아니라, 교회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임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내가, 혹은 우리가 교회를 바로 세운다는 것은 교회 운동의 출발을 역사와 문화라는 외부 상황에서 찾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본질에 충실해야 합니다. 교회는 생명을 담고 있습니다. 성서적 교회가 담고 있는 생명에서 출발하는 운동이 제대로 된 교회 운동입니다. 엘런 허쉬(Alan Hirsch)는 <잊혀진 교회의 길>에서 이를 사도적 교회이며, 선교적 교회라고 합니다. 바로 초대교회의 원형입니다. 엘런 허쉬는 이 핵심 개념을 가지고 교회가 무엇인지를 밝혀줍니다. 이제서야 교과서를 제대로 만났구나! 싶습니다. 

그는 ‘교회는 잊혀졌다’고 진단합니다. 현대 교회는 초대 교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래 돌아가야 할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예를 들면 많은 그리스도인이 교회 성장, 그러면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모으는 것을 우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적 교회는 끌어모으는 게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를 뜻합니다. 생명 운동을 하는 ‘선교적 교회’입니다. 이렇게 운동하는 선교적 교회가 성서에서 말하는 ‘사도적 교회’입니다. 

원래 선교란 말은 성경 용어가 아니라 중세기 라틴어 ‘미시오’(Missio)에서 나온 말입니다. 저자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Apostle)라는 말로 선교의 근원을 정의합니다. 사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행하는 일이 선교입니다. 그러니까 선교의 시작은 하나님입니다. 선교의 주체도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0:21). 이 구절은 교회를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정의합니다. 교회는 세상 속으로 보내지는 공동체입니다. 교인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그냥 선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선교적이고, 사도적입니다.

하지만 현대 교회는 ‘하나님 선교’의 DNA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 선교’의 전제가 되는 ‘성육신’을 머릿속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속으로 보내진 교회가 세상으로 들어가는 방식이 성육신입니다. 성육신은 세상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미국교회 상황을 잠깐 살펴보지요. 앨런 허쉬는 미국교회의 전도 전략을 교회를 아는 사람, 혹은 교회에 다녔던 사람에게만 맞추어진 전략이라고 합니다. 미국 인구의 약 40%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교회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60%의 사람을 위해서는 아무런 대안도 없다는 것입니다. 성육신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어떨까요? 교회 밖에서 복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당하는 현실에 다가갈 방안을 얼마나 고민하고 있을까요? 

이 문제는 ‘기독교세계’(Christendom)에 기초한 교회관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대다수 그리스도인은 ‘기독교세계’가 이미 지나갔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크리스텐덤’적인 교회론에 기초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앨런 허쉬는 그 단적인 예로 에베소서에 나오는 5가지 은사의 왜곡을 이야기합니다. 5가지 은사는 사도적 은사, 선지자적 은사, 복음 증거자, 목사와 교사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목사라는 말은 본래 목자(shepherd)를 의미합니다. 목자는 돌보는 역할, 듣는 역할을 하는 은사로서 내부지향적이어서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은사입니다. 이에 반해, 사도적 은사와 선지자적 은사는 공동체를 세상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공동체 내부에 안주하지 않고 위험한 세상을 향해 용감하게 나아가도록 촉구하는 은사이지요.

현대 교회 안에는 사도적, 선지자적 은사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대신 목자의 은사가 과도해졌습니다. 교인들은 현실의 안녕과 축복을 추구하는 종교 소비자라고 자임합니다. 크리스텐덤 교회론의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럼에도 사도적-선교적 교회 운동이 특별하게 취급되고, 현실의 위로와 평안과 축복이 견고한 교회의 키워드로 자리 잡은 모습은 너무 마음 아픈 현실입니다. 

‘크리스텐덤’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정신 차려 보니 주님이 세우신 교회가 처한 상황이 초대교회 상황과 유사합니다. 교회가 몰려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제 사적인 영역에만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강제되고 있는 것이지요. 교회를 그림자 취급하는 그런 시대가 곧 닥칠지도 모릅니다. 깊은 어두움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사도적-선교적 교회)가 생명운동을 펼쳤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어두운 상황이었습니다. 오히려 사도적-선교적 교회 운동의 시기가 선명히 보이는 듯합니다. 문제는 이 어두운 시대에 교회의 길을 제대로 걸어가겠다고 용기 내어 주님의 손을 붙잡을 수 있는지 그게 정말 문제입니다. 

이광섭목사 / 전농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