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봄>, 조선희, 한겨레출판사, 2023

필자와 동갑인 조선희는 내게 작가보다 기자로 익숙하다. 오랜 세월 신문사 기자와 잡지사 편집장을 역임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말하자면 기자 시절 조선희의 글을 좋아했다. 87년 6월항쟁의 뜨거운 열기가 여전하던 그 시절, 그녀가 일하던 신문사는 시대의 편견을 깨며 용맹정진 중이었다. 조 기자는 그 속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한참 시간이 흘러 ‘작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조선희를 마주했다. 조 작가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혁명가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의 삶을 현실에 재현한 <세 여자>로 요산김정한문학상, 허균문학상, 노근리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작가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그리고 봄>은 그로부터 5년여 만에 집필한 장편 소설이다. 그녀는 작가의 말에서 집필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작가는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걸 쓴다. <그리고 봄>을 쓴 것은, 우리 시대의 정치적 삶이 지금의 내게 가장 절실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 이후 스트레스가 상당해서 지식인으로서, 저널리스트로서, 작가로서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난폭 운전하는 버스의 승객이 되어 멀미만 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소설 속의 영한처럼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고 그것이 소설이었다.”

 “한 가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한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이기호의 추천사처럼, 이 소설은 대통령선거 이후에 우리의 혼란한 정치가 평범한 4인 가족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다룬 가족소설이자 정치소설이다. 부모와 딸과 아들의 가족 이야기는, 봄-정희(엄마), 여름-하민(딸), 가을-동민(아들), 겨울-영한(아빠), 그리고 봄-정희(엄마)로 이어진다. 가족 구성원 각자의 시점으로 쓰인 다섯 계절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현실적이고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봄>은 20대 대통령선거 당시 ‘1번’을 찍은 엄마와 ‘3번’을 찍은 딸의 은근한 신경전과, ‘1찍남’ 아빠와 ‘2찍남’ 아들의 첨예한 갈등을 끄집어냄에 더해, 이삼십 대 자녀 세대가 고민하고 있는 결혼, 젠더, 꿈, 미래, 취업 등의 문제와 부모 세대가 고민하고 있는 퇴직, 은퇴 생활, 건강, 성생활, 각종 질병 등의 문제도 솔직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그리고 봄>이 작금의 현실을 우울하고 비관적으로만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과 ‘화합’의 봄을 이야기하는 걸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상실과 혐오로 해체되었던 한 가족의 내밀한 ‘4인 4각 가정사 봉합기’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쉬어 보이는 일은 있어도 쉬운 일은 없단다.” (71쪽)

“혐오의 팬데믹이 우리 사이를 너무 벌려놨구나. 이걸 건너갈 수 있을까. 이걸 메우는 게 가능할까. 당장은 아니라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메워질 수 있는 골인가. 갑자기 이 사회에 대해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250쪽)

진광수 목사 (바나바평화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