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농사에 들어서다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4년 04월 02일 (화) 01:33:45 [조회수 : 1575]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농사에 들어서다

잦은 비와 오르락내리락 하는 기온 차 속에서도 봄은 소리없이 그러나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으면 바삐 손길을 놀려 농사를 준비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나도 지난주 월요일에 밭을 갈아준다는 말에 서둘러 밭 정리를 마쳤다. 겨우내 묵혀 두었던 비닐을 거둬들이는데 이틀 걸렸다. 추위와 눈과 바람에 이리저리 찢긴 비닐들이었지만 비닐을 잡아 끌어들일 때마다 푸석푸석하게 녹은 땅속을 뚫고 나오는 비닐을 볼 때면 기분이 좋았다. 돌돌 말아 군데군데 모았다가 옮겨놓기를 수차례 하고 나니 어느새 밭은 파릇파릇 돋아난 풀들로 가득했다. 그 풀들은 조만간 트랙터 경운날에 모조리 갈리고 땅속 깊숙이 박힐 것이다. 그중에 끈질긴 생명력을 타고난 풀은 잔뿌리 하나로 다시 흙을 비집고 일어날 것이다.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는 생명력이 용한 풀들도 나름 보암직한 생명체들이다. 그러나 두둑이 만들어지고 비닐 멀칭을 하고 작물이 심기어지는 순간부터는 호미질에 뽑히고 던져지고 뙤약볕에 말라 죽는 생명들이 될 것이다. 그들에겐 야속할지 모르나 농부 입장에서는 작물을 더 잘 키우기 위한 생존 전략과 마찬가지다. 

몇 차례 트랙터가 쓸고 간 자리는 땅 본연(?)의 색을 보여준다. 흔히들 표현하는 흙색은 갈색 혹은 고동색이다. 600평 이상의 밭은 짙은 고동색을 보였다. 물을 촉촉이 머금고 있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보드랍고 빛이 났다. 옥토를 방불케 한다. 경운을 한 첫날 첫 시간은 매우 흡족한 상태다. 그리고 해를 넘긴 날부터는 표면이 서서히 말라지면서 며칠 후면 딱딱하게 굳기 시작한다. 그때의 흙은 밝게 빛은 나지만 거의 황무지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면 다시 경운을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린다. 지금의 잘 정리된 밭은 고양이들의 놀이터요 화장실이 되고 있다. 짝지어 혹은 무리를 지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노는 모습은 자연 그 자체다. 

어느새 감자를 심을 때다. 거름을 뿌리고 밭을 갈고 깊게 두둑을 낸 자리는 멀칭까지 하고 나서 한뼘 정도 사이를 띄어 감자를 심는다. 하지 감자다. 유월 장마가 시작되기 전 마늘과 함께 수확하는 감자는 예나 지금이나 좋은 먹거리다. 다양한 요리의 주재료가 되는 씨감자가 올해 매우 비싸졌다. 해마다 값이 조금씩 올라가겠지만 올해는 작년에 비해 값이 껑뚱 뛰었다. 종자값이 오르는 것은 농부의 시름이 된다. 사과와 같은 서민 과일이 요즘 장바구니에 담기 무섭게 된 것처럼 감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집집마다 작은 텃밭을 만들어 웬만한 것은 자급자족하여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번에는 감자를 조금 심었다. 작년에 먹고 남은 감자 몇 알에 싹이 나서 버리기보다는 심어보는 쪽을 택했다. 작은 고랑 두 개를 만들었다. 퇴비도 주고 재도 뿌려서 엊그제 토요일과 어제 주일에 심었다. 그 위에 다시 한번 재를 뿌려주고 낙엽으로 비닐 멀칭을 대신했다. 

이사한 곳의 장점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땅을 일구고 있다. 마치 화전민이 된 듯하다. 흙보다 돌이 더 많아 보이는 곳을 시간 내어 돌을 골라내고 작물을 심을 수 있도록 꾸미고 있다. 딱 내가 먹을 수 있을 만큼의 감자를 심었고, 부추와 파도 한켠에 심었다. 바람골이라 할 수 있는 곳은 돌들을 치워 물길을 만들고 담을 만들고 두 평 정도 구분하여 이웃에서 얻어온 곰취를 심었다. 그리고 거기에도 낙엽으로 해를 가렸다. 그곳은 곰취와 같은 약재 작물을 심을 예정이다. 당귀, 참나물, 취나물, 명이나물과 같은 것들이다. 큰 덩어리가 아닌 적당한 공간이라서 손을 쓰기가 편하다. 

4월! 본격적으로 먹을 작물을 심는 시기요 지천에도 먹을 만한 나물들이 넘쳐날 때다. 그리고 눈을 호강시켜 줄 꽃들의 향연도 여기저기서 누릴 때다. 나의 향연은 이미 시작됐다. 눈을 뜨고 문을 나서면 산속에서 청아한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아침저녁으로 다녀가고, 지나가는 오솔길은 예전에 못봤던, 아니 있었으나 눈에 안 들어왔던 꽃들과 나무들이 가득하다. 새로운 환경에서 맞는 봄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활기차고 아름답다. 

황은경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23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