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음, 문학동네, 2021

곧 4월이 온다. 4월에는 이번에 10주기를 맞이하게 되는 세월호 4월 16일이 있고, 그 전에는 제주 4.3 사건이 있었던 4월 3일이 있다.

‘소년이 온다’는 오랜 기간 동안 읽어봐야지 마음만 먹고 실제로 읽지 못한 소설이다.

광주 5.18 배경이라는 것을 알고 왠지 읽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자꾸 미루다 보니 아직까지 숙제처럼 남아 있다.

그러던 중 작년 크리스마스에 같은 작가가 쓴 책을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제주 4.3에 대한 이야기였다. 화자인 작가는 제주 4.3사건에서 온 가족을 잃고 남에게 말할 수는 없으나 끊임없이 그 안의 기억에서 살고 있었던 부모님을 둔 친구 인선을 통해 제주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이어지는 이야기는 작가의 아픔과 함께 동반된다. 책 뒤에 적힌 서평에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이들 곁의 소설가 ’나‘는 생사의 경계 혹은 그 너머에 도달하고서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만한 고통만이 진실에 이를 자격을 준다는 듯이…“

소설을 보면 마치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소년이 온다’ - 제목이 나와 있지 않지만 연도와 내용을 보면 바로 그 이야기이다. - 를 쓰는 동안, 쓰고 난 후에도 계속되는 악몽 같은 꿈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쩌면 작가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다른 힘이 끌어당기는 것으로 인하여 이 소설을 쓰게 된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것도 고통과 함께…. 고통을 마주하며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힘듦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내가 제주 4.3 사건을 좀 더 알게 되었던 것은 언제였을까? 먼저는 10여 년 전 가족과 함께 제주 여행 중 다른 관광지와는 다르게 매우 한가하고 사람이 없었던 제주 4.3 평화 기념관을 방문하면서로 기억된다. 역사책 등을 통해서 어렴풋 알았던 그 당시의 사건을 기념관에서 세세하게 다시 접하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되게 생명을 잃어버린 제주의 아픈 역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재작년 겨울에 보았던 독립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란 영화를 접하고 나서다. 처음에는 재일 감독의 조총련 부모님에 대한 삶을 담은 다큐인지만 알았는데 영화를 보다 보니 때로는 딸로서 이해가 안 되었던 부모님의 삶이 제주의 4.3 사건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감독은 어머니와 함께 제주도를 방문하여 그 날을 기억하고 부모님의 삶의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그 일들을 알게 된다.

책에서 인선의 어머니는 몰살된 가족 외에 그 날 이후 볼 수 없게 된 오빠의 행방을 찾고자 애쓴다. 그러다가 오빠가 대구 형무소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경북 지역 피학살자 유족회와 함께 조용하지만 끊임없는 열심으로 실종자들의 행적을 찾아간다. 그리고 오빠의 마지막 행적을 3,500명이 총살된 폐광에서 찾아낸다.

빨갱이가 뭔지, 이념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는 체 빨갱이로 몰려 온가족이 몰살되고 그 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처절한 기억들…. 기억하기에는 너무 아픈 상처들이지만, 잊을 수도, 그들과 작별할 수도 없다.

8살 막내 동생을 죽은 가족들 사이에서 찾아낸 인선의 어머니는 수십 년전 그날의 기억을 말하지 않고 홀로 가지고 있다가 정신이 흐려지면서 딸에게 이야기해준다.

“처음에 어머니는 빨간 헝겊 더미가 떨어져 있는 줄 알았대. 피에 젖은 윗옷 속을 이모가 더듬어 배에 난 총알구멍을 찾아냈대. 빳빳하게 피로 뭉쳐진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은 걸 엄마가 떼어내 보니 턱 아래쪽에도 구멍이 있었대. 총알이 턱뼈의 일부를 깨고 날아간 거야... 중략... 의식 없는 동생을 두 언니가 교대로 업고 당숙네까지 걸어갔어. 팥죽에 담근 것같이 피에 젖은 한 덩어리가 되어서 세자매가 집에 들어서니까 놀란 어른들이 입을 열지 못했대.

통금 때문에 병원에 가지도, 의원을 부르지도 못하고 캄캄한 문간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대. 당숙네에서 내준 옷으로 갈아입힌 동생이 앓는 소리 없이 숨만 쉬고 있는데, 바로 곁에 누워서 엄마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대.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얼마 전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조금 돋은 자리에 꼭 맞게 집게 손가락이 들어갔대. 그 속으로 피가 흘러들어가는 게 좋았대. 한순간 동생이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지인은 이 책을 소개하면서 마음 안에 어떤, 커다란 공간이 생겼다고 한다. 이렇게 큰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하는 의문과 함께….

아직도 작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분들의 이야기 매듭이 풀리지 않은 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조주희 (회사원/색동교회 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