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월터 윙크, 한성수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제목부터가 사람들을 호불호로 갈리게 한다. 더구나 부제도 ‘지배체제 속의 악령들에 대한 분별과 저항’이니 더욱 그렇다. 특히 사탄이니 악령이니 하는 말은 일부 기도원 파를 빼곤 현대인들이 그리 관심 갖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얼마나 사실보다는 자기 소견에 따라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역설이다.

대체로 우리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이성과 감각으로 확인되는 것만을 사실로 인정하며 살아간다. 물론 우리 일상의 대부분은 이런 정도로도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살다 보면 현상과 이성, 감각을 벗어나는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신비를 체험하거나 기적을 경험하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때다. 그럴 때 비로소 사탄이니 천사니 하는 말도 더는 추상적, 우화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특정 교단이나 인물들이 주도해 온 병고침과 축귀 사역이 큰 영향을 끼치는 이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아직 부족하다. 월터 윙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을 장악한 지배체제라는 구조악에 영적인 실재가 역사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신약성경의 다양한 곳에서 확인된다. 

“내가 확신하기로는 사회 속의 악의 문제를 신약성경의 관점에서 취급하려는 모든 시도는 성경이 말하는 ‘천신(天神)들과 권세들’(Principalities and Powers)에 대한 이해와 직결되어 있다. …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권세들이란 가시적(visible)인 동시에 불가시적(invisible)이고, 땅의 것(earthly)인 동시에 하늘의 것(heavenly)이며, 영적인(spiritual) 동시에 제도적인 혹은 구조적인(inspiritual)인 것이다.”(27쪽)

저자는 신약성경 시대에 많은 이들이 강력한 로마 지배체제에서 악마적 영의 활동을 감지하였다고 한다. “1세기의 유대인과 크리스천 가운데 로마제국의 악마적인 영을 감지하고는 그것을 삼마엘 혹은 사탄이라고 부른 사람들이 있었다. … 그들이 감지한 영적인 힘은 바로 로마제국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그들의 세계관에 따라 그 영적인 힘을 단지 직관하고는 그것을 하늘에 살고 있는 영적 존재로서 하늘의 회의에서 로마를 대표하는 존재로 공상적인 모습으로 투영하였다.”(33쪽)

그러나 이는 신약성경과 그 시대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다. 20세기야말로 무자비하고 전면적인 대학살과 잔인성이 국가와 민족, 이데올로기 등을 통해 여과 없이 발산된 시기다. 그 사건들이 악한 영적 세력과 관계없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1930년대 후반에 나찌 독일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말하기를, 명백한 악의 기운이 ‘공기’ 중에 떠있고, 불길한 예감을 주는 위협으로 충만한 ‘대기’가 전 국토에 드리운 것을 느꼈다고 했다. 남아프리카를 떠나던 사람들은 그들이 실은 비행기가 남아프리카를 이륙하자 무거운 불안과 긴장감이 어깨에서 내려짐을 느꼈다고 했다. … 이런 ‘영적’인 기운들은 사실이었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위에서 별도로 내려와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관련된 각각의 국가들의 실제적 영성이며, 따라서 그런 악의 강도는 잠시동안 만이라도 거의 눈에 보일 정도로 나타난다.”(34쪽)

우리는 악한 영의 배후에 두고 땅에서 억압과 권세를 휘두르는 세력과 마주하여 그것에 저항하며 체제 변혁을 시도할 수 있다. 역사 이래 그러한 노력은 항상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보여주는 예수님의 길은 폭력을 그대로 되갚아 주는 것이 아니다. 먼저 자기 속의 폭력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원수를 사랑해 버리는 것으로 강력히 대응된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핵무기 시대에 인류의 생존과 개인적인 변혁 둘 모두를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 귀신을 쫓아내는 의식에서 악마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견디어내지 못하듯이, 오늘날 우리의 거짓 예언자들도 원수 사랑을 말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402쪽) 

다시 말하지만, 이는 지배세력이 흥왕해도 기도만 하거나 아무런 대응도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윤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악에게 져서 악의 세력과 똑같은 행동으로 악을 닮는 방식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믿음의 확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악을 제압하고 평정되는 승리는 분명히 약속되기 때문이다. “성서에는 지배체제가 반드시 끝장나고 만다는 절대적이고도 확고한 신념이 있다.”(485쪽)

구교형 목사 (성서한국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