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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
성격장애는 A군, B군, C군으로 나뉜다. 사회적 고립과 기이한 성격을 특징으로 하는 A군 인격장애는 편집성, 분열성, 분열형 성격장애가 해당되고 감정적이고 극적인 성격을 특징으로 하는 B군 인격장애는 반사회성, 경계선, 연극성,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해당된다. 불안과 두려움의 경험을 특징으로 하는 C군 인격장애는 회피성, 의존성, 강박성 성격장애가 있다. 오늘은 A군 중에 편집성 성격장애를 살펴보자.
편집성 성격장애는 타인의 행동을 의심하고 타인의 의도를 불신하는 것이다. 편집성 성격장애자들은 항상 타인이 악의를 가지고 있다는 근거 없는 오해나 의심을 한다. 그래서 늘 적대적이고 완고하고 방어적이다. 친밀감을 느끼는 것을 회피하며, 경직되고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인다.
영화 「적과의 동침」에서 돈 많고 잘 생긴 마틴(래트릭 버긴)은 로라(줄리아 로버츠)를 공주처럼 떠받들며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후 로라는 마틴의 의처증과 결벽증을 견딜 수 없었다. 선반의 통조림 병부터 욕실의 수건까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마틴의 화가 폭발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로라는 마틴에게 총을 발사한다. 마틴은 편집성 성격장애자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시크릿 윈도우」에서 등장하는 존 슈터(존 터투로)도 편집성 성격장애자이니 기회가 있을 때 찾아보시라.
1. 배신을 두려워함.
편집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타인을 믿지 못한다. 이들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이들에게서도 항상 배신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어느 정도 이상은 친밀해지지 못한다. 친해진다는 것은 편집성 성격장애자에게는 의심과 고통의 시작이 된다. 그는 친한 사람을 감시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언제나 그 사람의 행동을 파악하려고 한다.
편집성 성격장애자는 배우자에 대해서도 강한 의심과 질투심을 느낀다. 언젠가는 배우자가 틀림없이 배신할 것이라고 굳게 믿어서 현실에서 벌어지지도 않은 일들을 상상하고는 부당하게 의심해 힐문하거나 그 증거를 찾아내려고 혈안이 된다. 배우자가 다른 이성과 조금이라도 친한 기색이 보이면 의혹과 질투에 휩싸인다. 끊임없이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를 확인하려고 한다. 배우자가 외출하거나 동성친구를 만나는 것조차 싫어한다. 이것이 격렬한 가정폭력의 원인이 될 때도 있다.
편집성 성격장애자는 끈질기고 집착이 강해서 경계성이나 자기애성 성격장애자 이상으로 무섭고 집요한 스토커가 되기도 한다. 인구대비 0.5%~2.5%로 간주된다. 성인기 초기에 시작되며, 여성보다 남성에게 발생하는 빈도가 더욱 높다.
편집성 성격장애자는 고독하고 상처받기 쉽다. 상냥함이나 애정을 보이는 사람에게도 처음에는 경계해서 마음을 열지 못하다가 일단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상대의 존재는 아주 특별해진다. 상대가 자기만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굳게 믿는다. 친절을 호의로 해석해 망상을 부풀려 갈 때도 있다. 이렇게 되면 열렬하고도 집요한 구애가 시작된다. 제멋대로 생각하고 있다가 상대가 자기 기대에서 벗어난 반응을 보이면 배신당했다며 이번에는 거꾸로 원망하기 시작한다. 그의 본성을 모르는 채 섣불리 사귀었다가는 나중에 큰 봉변을 당한다. “죽여 버리겠다”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기도 하고 실행하기도 한다.
이들은 신뢰관계나 애정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을 권력이나 힘으로 지배하려 든다. 사랑이라는 모호한 것보다는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질서나 계급, 법 등에 관심을 보이고 그런 분야에서 활약할 때가 많다. 또 이들은 권모술수에 능하다. 계급이나 지위 같은 데도 관심이 많아 인간관계를 마음과 마음의 연결로 이해하기 보다는 상하관계나 힘의 관계로 이해하려 든다.
2. 과도한 비밀주의
편집성 성격장애로 진단되는 핵심 중 하나가 과도한 비밀주의이다. 편집성 성격장애자는 아주 당연한 짐문이나 자기의 프라이버시, 출신에 관해서 과민한 반응을 보여 대체로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애매하게 말을 돌리거나 왜 그런 것을 묻느냐며 바대로 질문하기도 한다. 자신의 과거나 개인적인 일에 대해서도 “잊어버렸다”라든가 “글쎄”하는 식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척하기도 한다. 스탈린이나 히틀러가 자신의 과거를 철저하게 바꿕나 봉인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망상성 성격장애자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3. 독재자들의 병
편집성 성격장애는 독재자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절대 권력을 손에 쥔 만능감과 배신자에 의해 언제 권좌에서 물러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절대 권력을 가진 독재자의 마음을 좀먹는다. 네로와 같은 로마 황제로부터 스탈린, 히틀러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히틀러는 극도의 비밀주의와 시기심에 사로잡혀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자를 가차 없이 숙청하였을 뿐만 아니라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며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살해하였다. 편집성 성격장애자가 갖고 있는 피해망상신념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절대 권력의 독재자뿐만 아니라 원만하다는 평을 듣는 경영자나 관리직 사람들에게도 이런 유형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자기 지위나 권력을 지키는 것이 최대 관심사이므로 부하직원을 진심으로 믿지 못한다. 배신하지 않을지, 경쟁하는 회사로 가지 않을지, 장래에 라이벌이 되지 않을지 하는 불안에 떤다. 그래서 부하직원을 판단하는 기준은 공정한 업무능력이 아니라 자기에게 얼마나 충성심을 갖고 있느냐가 된다. 부하직원이 건설적인 의견을 내놓아도 채택여부는 의견의 내용이 아니라 자기 의향이 반영되어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런 상사는 생산적인 개혁이나 향상이 아니라 부하직원의 결점이나 흠만 찾으려 든다. 이러다보니 뭔가를 해 보려는 인재는 떠나고 무능하고 아첨하는 예스맨만 남는다. 자신의 상사가 편집성 성격장애자라면 부하직원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다.
4. 되도록 이들을 피하라!
이들을 대할 때 중요한 점은 너무 친해지지 않는 것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 친해져 마음을 터놓기 시작하면 반드시 후에 큰 재앙이 뒤따른다. 되도록 정면충돌은 피하고 파워게임을 벌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은 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존심이 상처받으면 그냥 물러나지 못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려 들기에 괜한 힘겨루기는 피하는 것이 좋다.
임석한목사(양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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