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당한 기록이 불편한 이유

(<4천원 인생>, 안수찬,전종휘,임인택,임지선, 한겨레, 2010)

 책 <4천원 인생>은 2010년 한겨레21에서 연재한 비정규직에 관한 기획기사들을 엮어낸 저작이다. 벌써 출판된 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4명의 기자가 각기 위장 취업의 방식으로 한 달간 직접 노동을 하면서 써 내려간 노동의 현실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그래서인지 이 책은 2023년에 새롭게 출간되기도 했다.)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어떻게 통용되고 취급되며,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를 관찰일지의 형식으로 가슴 절절하게 말해주고 있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분노가 일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내 어머니 인생의 절반이 식당 노동자였고, 내 아버지 또한 인쇄소, 주차장, 마을버스를 전전하는 임시직 노동자였으며, 나 역시 온갖 알바로 20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경험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과정은 내게 지난날의 힘겨운 기억을 다시 소환하는 과정이었다.   

 '비정규직'의 특징이란 무엇인가? '현재'를 저당 잡힌 채 살아가지만 정작 '현재'가 없고, 끊임없는 삶의 경쟁에 내몰리지만 정작 '경쟁'의 규칙도 그에 따른 성과와 보상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감정노동으로 머리와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일하지만 정작 '감정'이 없는 인간으로 취급된다. 이들에겐 정식 계약서도, 노동조건에 대한 협상도, 직급도, 심지어는 이름도 없다. 그저 용역업체의 날품팔이, 파견직, 심지어 ‘불법’이란 단어와 같이 물건이나, 기계를 지칭하는 용어들만 난무할 뿐이다. 한 사람의 인간임을 부정당하고, 차별이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용인되며, 일정한 질서와 규칙도 없는 이 비정상적인 시스템 앞에는 '非 비'라는 형용사가 붙여진다. 그리고 나서는 원래부터 합법적인 표현인 것처럼 모두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책이 나오고 십수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이 불의한 표현을 바꾸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저 노동자를 노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비하는 사람으로 이미지화하는데 온 사회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뿐이다. 그 결과 이 유동적인 노동시장에서 그나마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은 ‘한 치 앞의 미래’이다. 아무리 달려간다 해도 ‘한 치 앞의 미래’는 항상 그 자리에 있으므로 삶의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겐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시간이 그날을 버티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며, 쥐꼬리만한 월급봉투는 한 달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오직 소비할 때만이 인간으로 취급받는 세상에서 노동자들은 '소비'의 순간을 위해 현실을 통째로 저당 잡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온몸으로 불의한 노동 현실을 기록하고 알려낸 이들의 노력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이 온당한 기록이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사실 어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관찰하고 그것을 이야기하는 과정은 때론 매우 잔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개인적인 관계나 애정이 아니라, 사회적인 구조의 문제로만 접근하거나, 어떤 당위적 목적을 지닌 채, 그 온당한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시도라면 자칫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네 명의 기자가 투철한 저널리즘을 가지고 비참한 노동현장을 온몸으로 폭로한 이 치열한 기록 속에서, 나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 진실의 기록에서 공감보다는 괴리감이 느껴진다. 책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노동 속에는 가난하지만 위대한 삶의 열정을 지닌 나의 어머니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오늘 하루의 행복을 위해 다짐하고, 미소로 ‘잘 다녀올께’ 이야기하던 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구조에 편입되려 하지만 결국 ‘비’인간이 되어 버린 실패자들의 기록들만이 즐비하다. 절망적인 구조를 폭로하려는 책의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흐르고 있는 사람냄새가 느껴졌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지옥 같은 노동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만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라오스에서 평화를 고민하는 이관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