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를 기점으로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 것을 본다. 해가 길어진다는 것은 농사의 계절이 점차 다가왔음을 의미한다. 부지런한 농부는 이미 2월부터 움직이긴 하였다만, 나처럼 전문적으로 농사짓지 않는 사람은 얼추 3월 그것도 중순이 다가와서야 서서히 몸을 움직인다. 얼추에 맞게 며칠 전부터 농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매년 가을걷이를 마치면 내년엔 농사 규모를 줄여야지, 이젠 농사는 아니 지으리라 다짐하다가도 막상 봄 문턱에 다가서면 겨우내 품었던 결의와 푸념은 어디가고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딱히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진짜 몸이 저절로 움직여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올해의 농사 작물은 또 콩이다. 삼세번에 그치려고 했는데 여전히 아쉬움이 많이 남아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주위에서는 돈도 안되고 오히려 돈을 쏟아붓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고 하지만 주위의 유혹을 과감히 떨치고 나는 나대로 나의 길을 간다. 이번엔 작년보다 좀 세게 하기로 했다. 세게 한다는 것은 거름을 작년보다 더 기름지게 뿌리겠다는 것이다. 올해 하는 것을 봐서 만약 올해도 그럭저럭 된다면 내년엔 과감히 작물을 변경하기로 했다. 삼세번을 넘기고 네 번째 도전하는 콩 농사가 올해는 제발 잘 되었으면 한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나의 유기농 콩으로 두부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기도 하다. 본래는 콩농사를 하면 유기농 콩으로 두부를 만드는 콩세알에서 전매를 해주기로 했었는데 매번 실패하여 약속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연유로 올해는 아니 올해만이라도 꼭 콩 농사가 잘되길 바란다. 

올해는 작년에 했던 밭에 조금 더 늘어난다. 늘리려 해서 늘어난 것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집 주위도 가꿀만한 공간이 꽤 있어서 그곳을 어떻게 관리할지 여러모로 구상중이다. 한켠에는 비닐하우스도 튼튼하게 만들었고, 그 옆으로는 자급자족 할 수 있을 만한 갖가지 작물을 무수히 심어도 될 만큼 터를 닦아 놓았다. 며칠 전부터 돌을 치우는 작업에 돌입했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토목공사(?)를 했는데 돌이란 돌은 다 모아놓은 것처럼 돌이 가득하다. 흙보다 돌이 더 많아 보일 정도다. 호미로 가래로 삽으로 꺼내고 긁고 치워도 자꾸 눈에 띈다. 돌들을 모으니 어느새 비닐하우스 한쪽으로 돌담이 만들어지고 있다. 얕은 돌담 하나가 만들어지니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 하는 궁리가 그치질 않는다. 돌담은 기본이고 돌길, 닭장, 석벽, 나무창고 등 어디에 어떻게 만들 것인지 생각하며 돌을 고른다. 스케치도 해보고 설계도 해본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와도 될 듯 싶다. 

지난 토요일 오후에는 드디어 작년 가을에 수확한 들깨를 털었다. 닭은 옆에 와서 떨어진 들깨를 열심히 주워 먹고, 고양이들은 따뜻한 봄 햇살 아래 나른하게 졸음에 취했다. 한참을 터니 바닥에 수북이 쌓였다.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다. 속 빈 강정과 같다. 양은 많아 보이나 실질적으로 무게는 양에 비해 덜 나갔다. 그만큼 잘 영글지 않은 것이다. 기름을 짜도 별반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들깨 향은 향긋했다. 턴 깻단도 바짝 말라 가벼웠다. 하우스 옆 안 쓰는 밭 귀퉁이에 가지런히 세워놓았다. 해와 비와 바람에 묵히면 삭히고 분해되어 좋은 거름이 될 것이다. 사실 그렇게 오랫동안 해온 덕분에 농사는 짓지 않은 터지만 흙은 매우 윤택해졌다. 하우스 한쪽을 막고 있었던 들깨를 치우고 나니 하우스가 꽤 넓어 보였다. 하나를 치우니 치워야 할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것이 집안일이라 하는데, 농사일도 매한가지다.  

이번 주에는 밭의 비닐을 거둘 것이다. 다음 주 월요일에 밭을 갈 예정인데 그 전에 부지런히 거두어야 한다. 그런 다음 거름을 뿌리고 밭을 갈면 콩 농사를 위한 1차 준비를 마치는 것이다. 누구네는 감자를 심는다고 하는데 나도 한켠에 심어볼까 하는 유혹이 생긴다. 그래서 들깨를 털면서 감자를 심을 자리를 정리해놓기는 했다. 요즘 감자 종자가 너무 비싸서 사실 엄두도 못내고 있다. 사기는 그렇고 하여 작년에 먹다 남은 싹 난 감자를 심어보려 한다. 먹기는 어렵고 버리기는 아깝고 하여 생각해낸 것이다. 

다시 시작이다. 농사를 위해 준비할 것이 많지만 마음보다 몸이 앞서고 있으니 잔말 말고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농사 시작에 앞서 올해는 비가 적당히 내렸으면 하는 바램도 매우 크다.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