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적 은총>, 랜디 매덕스, 강신환 역, 삼원서원, 2024)

감신과 협성에서 <감리교신학>을 7~8년 가르치게 되면서 1980년대 이후에 출간된 존 웨슬리에 관한 연구서들을 50권 이상 구입했다. 그중 30권은 읽었으며 랜디 매덕스의 『응답적 은총』(Randy L. Maddox, Responsible Grace. John Wesley’s Practical Theology)도 포함된다. 필자는 과정신학자 존 캅의 Grace and Responsibility를 <은총과 책임>으로 번역한 바 있는데, 캅의 책은 웨슬리 신학에 대한 과정 신학적 해석이 저변에 깔려 있는 반면, 매덕스는 웨슬리의 일차 문헌들에 철저히 집중한 책임을 금새 알 수 있다. 매덕스의 이 책은 테드 러년의 <새로운 창조>와 함께 가장 애독한 책이다. 바로 이 책을 강신환 박사가 완역하여 삼원서원에서 나왔다. 영문 416쪽의 책을 옮기느라고 얼마나 수고했을까, 그 노고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으면서 느끼고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필자는 이 책의 중요한 특징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신학의 실천적 성격이다. 신학은 중세의 사변적, 근대의 대학 중심의 스콜라스틱(Scholastics)만 있는 게 아니다. 수도원신학(Monastics), 수덕신학(Ascetics) 그리고 신비신학(Mystics)이 있다. 웨슬리에게 이 전통들이 통합적으로 나타난다.

필자가 신학공부를 시작할 1970년대는 독일어권 사상가들이 신학계를 주름잡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폴 틸리히는 사상사에서 서양 각국(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미국, 스위스)에서 펼쳐진 신학운동의 특징을 말하면서, 칸트 이후 독일의 근대 변증적 사유를 토대로 전개된 독일 신학의 우위성을 자랑하고 있다. 반면 영국은 성례전 문제, 정치 구조 문제, 윤리 문제, 이신론, 여기에 영국 국교회의 자비와 위대성이 있지만,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신학은 아니다, 라고 폄하한다. 

그런데 매덕스의 입장은 전연 다르다. 매덕스는 “진정한 신학자의 결정적인 임무는 기독교적 진리 주장들의 정교한 체계를 발전시키거나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들’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의 삶의 기질과 실천의 틀을 구성하는 세계관을 양육하고 형성하는 것이었다.”고 기독교 신학이 태생한 자리를 바르게 콕 짚는다. 신학은 사변적 변증학이 아니라 책의 부제처럼 ‘실천 신학’이다. 니케아 공의회로부터 시작된 삼위일체 신앙은 신에 대한 사변적, 형이상학적 관심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구원론적, 실천적 관심이 주도되어 발생한 것이다. 하여, 매덕스는 힘주어 말한다. 신학적 글쓰기 형식은 “조직신학이나 변증론이 아니라” 신학의 자료로 하찮게 여기지만 “세심하게 공들인 예배의식서, 교리문답서, 찬송가, 설교문, 기도문, 성경공부 교재 같은 것들”이며 “신학의 철저한 실천자란 무심한 강단신학자가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 제자들을 적극적으로 목양하는 목회자/신학자였다.”(18~19쪽)

둘째, 이 책을 일이관지하는 개념은 “은총”이다. 웨슬리가 이해하는 은총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자애로운 인격적 현존”이기 때문에 “영감을 불어넣고, 할 수 있게 하지만, 강제하지는 않는다.”(151쪽) 개신교의 무상의 은총(free Grace)이 값싼 은총으로 변질된 것에 대한 본회퍼의 비판대로 은총은 반드시 자발적인 인간의 응답, 곧 인격적, 사회적 책임을 불러 일으킨다.

셋째, 웨슬리의 ‘중용의 길’(via media)이다. 영국에서 18세기를 온전히 살아 낸  웨슬리(1703~1791)를 종교개혁의 연장선 상에서 종교개혁 사상을 최후로 완성한 인물로만 보는 것은 단견이다.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 전통에서 가톨릭 사상을 수용했고, 초대 교부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동방 정교회 전통도 수용하였다. 신관, 인간관 특히 구원관 이해에서 동방교회 전통이 도드라진다. 웨슬리는 시대나 지역에 따라 타당하고 제한된 신학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통(通) 패라다임을 실험한 신학자이다.

이 책은 8장으로 구성된다. 1장은 신학적 인식론 곧 신학적 인식의 출처와 방법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적 은총의 계시를 알 수 있는 원천과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웨슬리 신학에서 잘 알려진 사중표준(Quadrilateral)이다. 매덕스는 성서-이성-전통-경험 순으로 설명한다. 매덕스는 사중표준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계시로서 지각할 수 있는 ‘영적 감각’을 언급한다. ‘영적 감각’은 웨슬리의 인식론에서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다. 물리적 감각이 물리적 실재들을 감지하듯이 영적 감각은 영적 실재들을 감지할 수 있게 한다. 영적 감각은 결정적인 기독교의 계시이다.(44쪽)

2장은 신론이다. 물론 하나님은 응답적 은총의 하나님이다. 태양이 빛과 열의 근원이라면 안으로 신성의 본질은 은총이다. 은총이 창조세계에 비추일 때, 서방 신학에서 전통적으로 말했던 창조자와 보존자, 통치자와 심판자라는 개념 외에 부양자, 무엇보다 치유자로서의 성부 하나님을 부각하는 것이 색다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위해 치유를 제공하는 존재”(107쪽)이다.

3장은 인간론이다. 죄와 타락의 서방 신학의 인간을 전제하면서 타락보다는 창조에 기초를 두는 는 동방 교회의 전통을 가미한다.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문제에 대하여 치료적 관심들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웨슬리는 인간의 영적 발달의 역동적 본성을 강조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현존은 우리에게 용서를 베푸는 사랑을 확신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해 부패한 우리의 삶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에게 능력을 부여한다.”(165쪽)

4장은 응답적 은총의 주도자로서의 그리스도를 다룬다. 그리스도는 죄를 사면하고 용서할 뿐만 아니라 치유하고 회복하는 사랑의 하나님의 대표자이다. 매덕스는 그리스도의 삼중의 직분(직무)을 제사장—예언자-왕 순으로 전개한다.(197쪽) 용서는 각 개인의 삶에 현재적으로 중재되어야 하기 때문에 제사장의 직분으로부터 시작한다. 예언자로서의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깨닫는 회복된 인식의 원천이다. 매덕스는 웨슬리가 왕의 직분과 더불어 치료자의 직분을 부연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5장은 응답적 은총의 현존으로서의 성령을 다룬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죄를 용서하고 회복할 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서 우리의 삶 속에 능력을 부여하는 갱신된 현존을 제공하는 은혜를 베푸신다. “우리는 숨을 불어 넣고 생기를 주는 성령의 영감을 통해 하나님의 현존에 더 깊이 참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221쪽) 웨슬리의 삼위일체론은 응답적 은총의 문법이라고 매덕스는 해석한다.

6장과 7장은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인 구원론을 다룬다. 구원론은 기독교 신학의 핵심이며 가장 비중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두 장에 걸쳐 다룬다. 매덕스는 구원의 과정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은혜로운 주도권과 인간의 응답이 결합되는 구원의 점진적 과정을 추적한다. 웨슬리는 정지된 영적 성장을 치명적인 질병으로 여긴다. 그래서 웨슬리는 정태적인 ’구원의 질서‘(ordo salutis)라는 말보다 ’구원의 길‘(via salutis)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천국에 이르는 길”(1746), “성서적 구원의 길”(1765), “보다 탁월한 길”(1787). 그 길은 성령의 증언 속에서 중생-각성-회개-칭의-신앙-성화(그리스도인의 완전)-영화에 이르는 끊임없는 역동적인 길이다. 독일 신비주의와 선험적 분위기 속에서 자란 루터가 종교개혁적 은총의 수직적 돌파(Durchbruch)를 단행했다면, 영국의 경험주의적이고 초기 산업화 시대인 18세기를 온통 살아낸 웨슬리의 은총 이해는 수평 상승적이고 점진적이며 경험적일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8장은 교회론을 폭 넓게 “은총의 수단과 응답”이라는 제목으로 다룬다. 은총은 매개(수단)를 통해 전달된다. 거기에는 성찬, 공동예배, 세례뿐 아니라 설교, 기도문, 성서일과, 교회력, 찬송, 애찬, 공동체적 지원, 철야예배, 언약갱신, 책무, 자비의 행위 등이 속한다.
 
9장은 종말론인데 “응답적 은총의 승리”라는 이름으로 전개한다. 매덕스는 웨슬리의 사회 윤리와 경제 윤리뿐 아니라 생태 윤리에 해당하는 부분들을 제시한다. 웨슬리에게 우리 삶의 구원적 목표는 “새로운 창조”이다. 후기 웨슬리는 결정적으로 자신의 궁극적 희망의 초점을 “위에 있는 천국”에서 미래의 새로운 창조로 전환했다고 매덕스는 평가한다.(472쪽)

웨슬리의 신학은 프로테스탄트와 로마 가톨릭의 신학적 차이만이 아니라 동방 정교회 전통을 매개한 통 큰 저력으로, 21세기 세계가 직면한 새로운 과제들에 유연하고 책임적으로 응답하는 새로운 기독교 사상이 될 수 있다. 특히 구원의 사법적 전통과 치유적 전통의 창조적 통합은 신학적 온전성을 회복하여 지구적 생명을 온전히 보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매덕스는 책 후미에 방대한 비평적 각주(481~637쪽)를 남겼다. 본문은 풍성하면서도 분석을 통해 웨슬리의 신학적 장점과 특징을 간결하게 서술할 수 있는 이유가 다 철저한 1차 문헌 연구와 2차 자료의 비평적 연구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1차 문헌과 엄청난 2차 문헌 수록(640~691쪽)은 미래 웨슬리 연구에 큰 도움이 되리라 여긴다.

심광섭 목사 (감신대 은퇴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