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성큼! 어느새 봄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점심시간에 교회 화단 나무들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겨울눈 사이로 빼꼼 내다보고 있던 봄의 생명의 기운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도 못 하고 있었는데 벌써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늦기 전에 서둘러 봄의 전령인 삼각산 소귀천의 생강나무 꽃을 환영하러 나가야겠습니다. 매화, 산수유, 진달래, 벚꽃 등 그 후로도 맞이해야 할 봄 손님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도에는 이미 오래전에 매화가 폈고 예상보다 꽃이 일찍 피는 바람에 지자체들의 축제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지요.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지난 겨울이 저 혼자만의 마음은 아니었나 봅니다.

어둡고 음습하고 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독일 사람들은 그래서인지 봄을 더욱 그리워하고 그 어느 계절보다 봄을 만끽합니다. 그래서 봄에 관한 시와 그 시에 선율을 붙인 가곡이 다른 계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습니다. 

음악 시간에 ‘가곡의 왕’이라고 배웠던 슈베르트만 하더라도 ‘봄의 노래(Frühlingslied)’라는 제목으로만 네 개의 노래(D.243, 398, 914, 919)를 작곡했고, ‘봄을 노래함(Frühlingsgesang)’은 두 곡(D.709, 740), ‘봄에게 붙임(An den Frühling)’이란 제목으로도 세 곡(D.283, 338, 587)이 있습니다. ‘봄을 향한 믿음(Frühlingsglaube, D.686)’은 슈베르트의 가곡을 통틀어서도 가장 널리 애창되는 명곡이며, 연가곡 ‘겨울 나그네’의 열한 번째 곡 ‘봄의 꿈(Frühlingstraum)’은 여정에 지친 나그네가 꿈꾸는 애잔한 봄의 기억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또한 ‘봄에 깃든 하나님(Gott im Frühlinge, D. 448)’이란 슈베르트의 가곡의 첫 소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In seinem schimmernden Gewand, Hast du den Frühling uns gesandt/그에게 빛나는 옷을 입히셔서 당신은 우리에게 봄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현현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그토록 봄을 기뻐하는 것이지요.

슈베르트가 이처럼 봄에 관한 노래를 많이 남긴 것은 봄을 좋아하는 독일-오스트리아인들의 성향 때문만은 아닙니다. 봄이 그 어느 계절보다 음악적이기 때문이지요. 봄이라는 계절에는 그 자체에 있는 생명의 에너지나 꽃과 바람 대기 등의 소재뿐만 아니라 선율과 리듬과 화성과 질감 등 음악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넘쳐납니다. 아직 차가운 공기 사이에서 일렁이는 따스한 봄바람과 겨울에서 깨어난 시냇물, 꽃들이 살랑거리는 움직임과 봄의 생명이 깨어나는 울림은 물론이고 대지가 움 돋는 소리까지 슈베르트는 그의 봄 노래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봄 노래 중에서 '봄날에(Im Frühling)'는 해마다 봄이 오면 제가 늘 가장 먼저 그 악보를 펼치는 곡입니다. 피아노 반주 부분만 연주해도 봄 내음이 물씬 나지요. 이 노래는 봄기운이 가득한 언덕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총총거리며 걷는 듯한 피아노 반주처럼 아직 수줍은 사이의 연인이 함께 봄 언덕을 걷고 있습니다. 아기자기한 봄의 아름다움은 그 수줍은 연인들이 얼굴을 맞댈 정도로 가까이 있게 해 주었는데 두 사람 모두 봄에 집중하느라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덕 아래 계곡에는 작은 돌들 사이사이로 맑고 차가운 물이 흐르는데 그 물결에 비추인 한 폭의 그림 같은 파란 하늘이 물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습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연인의 모습도 시냇물에 비친 하늘에 담깁니다. 

한 송이 또 한 송이, 그들이 바라보는 꽃들은 똑같은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한 가지에서 꽃 한 송이를 꺾어 내게 주었습니다. 다시 갖고 싶은, 일평생 가장 아름다운 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노래의 봄은 오래전 추억 속의 봄이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피아노 반주가 단조로 바뀌더니 먹구름이 밀려오는 듯합니다. 꽃들도, 들판도, 햇빛도, 시냇물도 모든 것이 여전히 그때와 똑같지만, 연인은 곁에 없고 나 자신도 달라졌습니다. 그 시절의 풋풋함도 수줍음도 사라졌고 젊은 시절 사랑의 열망과 사랑을 향한 환상은 변해버렸습니다. 사랑은 떠나갔고 그 자리엔 사랑의 슬픔만이 남았습니다. 

다시금 장조로 바뀝니다. 이제는 추억이 아닌 현실의 봄입니다. 사랑은 저만치로 흘러갔고 나는 변했지만 그래도 시인은 한 마리 새가 되어 봄을 노래하겠노라고 말합니다. 어느새 여름이 찾아왔지만, 이 여름이 다 가도록 매일 매일 봄을 노래하겠다고 말합니다. 

https://youtu.be/MHmzzu4FAnM?si=z4-eZUX5aqO_qeJ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