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나의 올드 오크》 (The Old Oak, 2023)

질곡으로 가득 찬 하층민 노동자의 삶을 주제로 삼아 88세의 노년까지 일관된 영화를 만들어온 켄 로치(Ken Loach) 감독이 마침내 아마도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나의 올드 오크》를 내놓았다. 그의 이전 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미안해요, 리키》를 잇는 이 은퇴작은 영국의 쇠락 지역을 배경으로 한 소위 ‘영국 북동부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망해버린 폐광촌에서 ‘올드 오크’라는 술집을 운영하고 있다. 다 쓰러져가는 술집에 모인 몇 명의 단골들은 망해가는 동네와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한다.비어가는 건물과 함께 나날이 집값은 떨어지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빈곤의 삶을 살아가는 부모들과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 하는 아이들이 널린 폐광촌 동네, 바로 이 동네에 시리아 내전을 피해 영국으로 오게 된 난민들이 도착하면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된다. 난민들의 도착과 함께 직설적으로 가해지는 혐오와 적개심과 위협과 폭력 가운데 사진작가를 꿈꾸는 시리아 여성 청년의 카메라는 박살이 나고 이를 안쓰러워한 주인공은 옛 카메라 몇 대가 있는 술집의 뒷방으로 그녀를 인도한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큼지막한 공간의 뒷방은 과거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여 싸웠던 광부들의 치열했던 투쟁과 연대를 상징한다. 방 안에 가득 걸린 흑백 사진들은 그때의 기록들로 가득하다. 각각의 사진들에는 그에 해당하는 구호들도 함께 달려있다. 그중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When you eat together, you stick together.)라는 제목의 사진을 두고 주인공들은 과거와 현재를 회상하며 대화를 나눈다. 폭력적인 정부가 굶주림으로 위협했을 때 함께 모여 연대의 음식을 나누던 기억은 이후 낯선 이방인 난민들과 가난한 동네 사람 모두를 위한 연대의 밥상을 위한 공간으로 뒷방을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로 이어진다. 새롭게 뒷방을 정비하면서 과거의 투쟁과 연대를 부활시키며 주인공은 다음의 말로 희망의 근거를 삼는다. “이건 연대야. 자선이 아니라.”(This is solidarity. it’s not charity.) 공동의 식탁은 자선이 아닌 연대다. 하지만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하여 영화는 깊은 절망과 패배감은 결코 쉽게 희망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끝내 희망을 말한다. 영화의 배경은 시리아 난민이 처음으로 영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2016년이다. 그러나 영화는 과거의 사건으로 철저하게 현재를 비춘다. 저 마을의 상황이 지금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과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으로 삶이 팍팍해지자 모두의 마음도 그렇게 되고 만 현실을 우리는 지금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다. 우경화의 단순한 뿌리는 바로 빈곤이다. 가난한 내 처지도 이리 힘든데 대체 누굴 돌본다는 것인가? 이런 마음들에 부딪치며 상처받은 주인공은 과거 부모 세대의 투쟁을 함께 보며 자랐던 친구를 찾아가 이런 말을 던진다. “삶이 힘들 때 우린 희생양을 찾아. 절대 위는 안 보고 아래만 보면서 우리보다 약자를 비난해. 언제나 그들을 탓해. 약자들의 얼굴에 낙을 찍는 게 더 쉬우니까. 이 말을 하려고 왔어.” 이 말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끝내 희망을 말한다. 사진작가를 꿈꾸는 시리아 여성은 아버지가 선물한 카메라에 대한 의미를 회상하며 안 봤으면 좋았을 참혹한 광경들을 수도 없이 보았던 자신을 이 카메라가 살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카메라를 통해 조금이나마 희망과 용기를 봐요. 그래서 사진 찍으면서 살려고요.” 아마도 이 말은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일에 대한 감독의 자기투영이었을 것이다. ‘용기, 연대, 저항’(Strength, Solidarity, Resistance). 과거의 구호는 과거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거의 50년을 자본주의와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천착한 감독은 다시금 희망과 함께 용기와 연대와 저항을 외친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음을 영화는 주인공들의 나약함과 이기심과 상처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끝내 감히 희망을 말한다. 쇠락에 지쳐 절망에 빠진 세대 가운데, 희망이란 말을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현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던지는 그의 희망이 힘차고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