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하르 축제 - 개의 날

      2023년 12월 21일, 목요일, 흐리고 춥다.

     어제 오후 7시경, 쁘리야 아버지 디페쉬(Dipesh kc) 씨로부터 문자가 왔다. 문법도 틀리고 단어의 철자도 틀리지만 대충 조합해서 해석하면 이렇다.

     “저는 쁘리야 아버지입니다. 당신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도움을 잊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나와 쁘리야의 생명의 신입니다.”

     나를 ‘신’이라 칭한 것은 이 사람이 힌두인이라서 힌두식으로 표현한 말이다.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은인’이란 말이다. 문장을 다시 해석하면 ‘당신은 나와 쁘리야의 생명의 은인입니다.’라는 말이다.

     해외에 나가 외국인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상대방의 문화나 종교 심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오해하는 일이 간혹 있다. 특히 유일신을 믿는 종교인들이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 사회의 국가를 방문하였을 때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한다. 네팔은 민족 수가 126개나 되며 그들이 믿는 신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들보다 많은 다종교 국가다. 126개 민족이 믿는 민족신과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신들까지 모두 합하면 그들의 인구수보다도 신의 숫자가 더 많은 나라다. 그래서 이들의 종교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유일신론자들은 네팔을 우상이 난무하는 국가라고 폄훼하기도 한다.

     필리핀이 파티의 나라라면 네팔은 신들을 섬기는 축제의 나라이다. 국가에서 공인하는 민족의 축제가 매월 1개 이상씩이나 된다. 내가 이번에 2개월 동안 머무는 동안에도 큰 축제가 2번이나 있었다. 10월에는 ‘다사인(Dashain) 축제’로 공무원을 포함하여 모든 직장인이 10일 동안 휴무이다. 내가 근무하는 국립병원도 물론 휴무였다. 그리고 11월에 있은 ‘티하르 축제’ 기간에는 5일 동안 휴무였다. 그 바람에 나는 마이나포카리 병원에서 예정보다 일찍 사역을 마치고 축제 기간을 틈타 카투만두로 복귀하였다.

     티하르 축제

     카투만두에서 접한 티하르(Tihar)축제는 네팔인들의 전통 민족 문화를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힌두교인 가정에서 10일 동안 숙식하며 그들과 함께 축제 기간을 보냈다. 티하르 축제는 힌두교의 부와 행운의 여신 락슈미(Laxmi)를 숭배하는 축제다. 이 축제 기간에 이들은 동물을 숭배해 대접하는 축제도 벌인다. 이들이 하는 행위를 서양인의 관점에서 숭배(worship)라고 영어로 번역한 데는 좀 문제가 있다. 이들은 동물을 숭배한다기보다 동물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동물을 대접하는 의식을 행한다. 아마 세상에서 동물보호운동을 가장 먼저 한 사람들은 힌두인들일 것이다.

     첫째 날은 카그 푸자(kag puja)라고 하며 ‘까마귀를 숭배(감사)하는 날’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날 네팔인들은 지붕 위에 까마귀를 위해 음식을 올려놓는데, 힌두 신화에 따르면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슬픔과 비애, 비통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한 까마귀는 지하 세계의 신 야마(yama)의 명령을 전달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래서 가족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슬픔과 죽음을 막기 위해 액막이로 까마귀를 달래려 음식을 주는 것이다. 까마귀가 없으면 하늘을 나는 모든 새에게 음식을 나눠준다.

     둘째 날은 쿠쿠르 푸자(kukur puja)라고 불리는데, ‘쿠쿠르’는 개를 의미한다. 즉 개를 위한 의식을 행하는 날로, 마을에서 기르는 개나 떠돌이 개들에게 푸짐하게 음식을 마련해 주고, 심지어 개의 이마에 붉은 티카를 찍고 꽃목걸이도 걸어준다. 말하자면 이날은 개들이 왕처럼 대접받는 날이다. 개는 사람들의 집을 지켜주는 동물이며, 전설에 따르면 지하세계의 문을 지키는 존재이기도 하다. 또한 개는 파괴의 신 바이랍(Bhairab)을 태우고 다닌다고 전해진다. 네팔인들은 집에 불운이 들어오지 않도록 문을 지켜주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개를 정성껏 대접한다. 그리고 축젯날이 아닌 보통 때도 수십 마리의 개들이 떼를 지어 차들이 다니는 도로에 누워 있어도 내쫓지 않고 내버려 두고 차들이 피해 간다.

     셋째 날은 가이 티하르(Gai Tihar) 또는 락슈미 푸자(Laxmi puja)라고 하는데, 우주의 어머니 암소를 숭배(감사)하는 날이라는 의미다. 힌두교에서는 아기가 태어나 처음 3년 동안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지만, 그 이후에는 암소가 평생 우유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암소를 일종의 대리 어머니라고 여긴다. 네팔인의 가정에 묵어 보니 이들은 매일 수시로 찌아를 끓여 마신다. 찌아는 생우유에 녹차를 넣어 끓인 차이다. 이들은 찌아를 끓여 먹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다. 나는 지금도 매일 먹던 찌아가 생각난다. 따라서 암소는 세상의 어머니이며 가장 성스러운 동물로 숭배받는다. 이날 네팔인들은 암소의 머리에 티카를 찍고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

     넷째 날인 고바르단 푸자(Govardhan puja)는 황소를 숭배(감사)하는 날이라는 의미다. 황소는 땅을 갈고 곡식이 잘 자라도록 도와 풍년을 가져오는 존재로, 이날 황소에게 티카를 찍고 화환을 걸어주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

     이날 남자들은 ‘데우시(Deusi)라는 노래를 부른다. 여러 악기를 들고 연주하며 집집마다 찾아가 데우시를 부르는데, 티하르 축제기간에는 데우시와 바일로, 형제자매에 대한 민속 노래가 네팔 거리를 가득 메운다. 이 외에도 네팔의 소수민족 네와르(Newar)족은 이날을 ’마하 푸자(Mha puja)라 부르며 자기 자신을 숭배하는 날로 챙긴다. 네와르 족의 달력에 따르면 이날은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이기도 하다.

     다섯째 날은 티하르 축제의 마지막 날로 바이 티카(Bhai tika)라고 부르며, ‘바이’(Bahi)는 남자 형제를 의미한다. 즉 이날은 형제들이 서로 티카를 찍어주며 감사를 표하고 장수를 기원하는 날인데, 특히 여자 형제들이 남자 형제들에게 티카를 찍어주고 화환을 걸어주며 축복해 준다. 누이동생이 죽음의 신 야마로 인해 위기에 처한 오라비를 구했다는 전설에 따라 여자 형제들이 남자 형제에게 구원의 힘을 나눠준다는 의미를 지닌 의식이라고 한다. 나는 기독교인이라 티카는 받지 않았지만 알차나의 세 자매로부터 화환을 받았으며 그 답례로 알차나 엄마와 여자 조카를 포함하여 5명의 여자들에게 기부금을 주었다.

     티하르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내가 마이나포카리에서 사역을 마치고 카투만두로 간다는 말을 듣고 병원의 수석의사인 니라미카(Niramika) 여사가 카투만두에 가면 멋진 ‘티하르 축제’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네팔문화축제를 자랑스럽게 소개한 적이 있다. 이들은 이런 축제를 하면서 종교적인 의미로 행하기보다는 문화행사로 하며 이 행사를 모든 국민이 매우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즐기는 모습이다.

     변혁적 관계

     지금 우리는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급속한 전자기술과 항공기술의 발달로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 그리고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지구촌의 여러 민족이 함께 자주 통신하고 왕래하며 사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지구촌 시대가 다가오면 종교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큰 어려움이 생길 것을 염려한 책임 있는 신학자와 심리학자 철학자들이 있다. 이미 40여 년 전 내가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조직신학자 존 캅(John Cobb)은 ‘상호변혁(Mutual transformation)’을 이야기하였고 조직 심리학자 ‘벤저민 하디(Benjamin Hardy)’는 ‘변혁적 관계( A transformative relationship)’를 말하였다. ‘상호변혁’이나 ‘변혁적 관계’는 같은 말이다. 상대를 나처럼 되게 하려고 하지 말고 서로의 장점을 보고 배워서 나를 변혁시키자는 말이다.

     변혁적 관계를 맺으라는 건 서로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리지 말라는 말이다. 변혁적 관계에서는 서로 돕고 지원하려는 진정한 열망만 있다. 변혁적 관계의 목적이자 방식은 변화다. 베풂과 감사, 성장에 초점을 맞춘 변화가 변혁적 관계의 핵심이다.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먼저 다른 사람이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도와라. 거기서 출발해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변혁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당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으로 갈 수 있다. 변혁적 관계를 탄탄하게 구축하면, 미래의 당신은 상상 이상으로 훌륭하고 탁월해질 것이다. 거래적 관계로는 지금 이 지점까지만 올 수 있었다. 거래적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미래의 나는 더 멀리 갈 수 없다. -벤저민 하디, 퓨처 셀프.

     네팔에는 126개의 민족이 믿는 여러 신들이 있지만 그들은 만날 때마다 늘 “나마스떼”라며 서로 인사한다. 이 말은 ‘내 안에 있는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을 존중합니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다른 신을 믿는 다종교 민족이면서도 종교적으로 큰 갈등을 겪지 않고 평화롭게 잘 지낸다.

     “나마쓰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