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보가 아닌 책을 읽는다는 것

(<완벽한 읽기 기계 – 책의 인간공학으로 가는 길>, 롤란트 로이스, 강민경 역, 정제소, 2023)

 비대면이 선호되던 팬데믹 동안, 미디어가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냈지만 아이러니하게 책을 내는 사람도 늘었다. 번잡한 도시 생활, 생각할 여유 없이 살던 하루가 고립으로 고요해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의 내면,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1인 출판, 독립출판 등 출판 관련 업계도 덩달아 발전해나가며 e-book 시장에 밀려나는 듯했던 종이책 시장이 서서히 다시 역전해 나가고 있기도 하다. 

 1인 독립출판, <도서출판 선목>을 어렵게 유지하며 문서선교를 지속하는 이유도 그렇거니와 ‘책을 읽는다는 것‘과 ‘책을 잃는다는 것’은 받침자 하나 차이보다 훨씬 큰 격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잊어가는 이 시대를 ‘성경책’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몽상가적인 목회자일까? 
 
 아니다. 책은 정보가 아니다. 성경책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이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임하심으로 쓰인 성경책은 ‘정보의 홍수’에서 범람한 정보나 인공지능이 딥러닝으로 습득하는 정보도 아니다. 우리는 성경책의 존재를 통해 책이란 영적인 것과 인간의 지성적인 것이 함께 뒤섞인 무엇이며 로고스의 개념도 이해하고 있다. 
책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한층 더 끌어 올려주는 로이스의 『완벽한 읽기 기계 – 책의 인간공학으로 가는 길』은 출판업의 키워드를 설명하면서도 우리 시대의 ‘책’의 존재에 대한 성찰과 애정을 확인하게 한다. 

우리는 데이터 검색과 지식 습득을 혼동하게 되고, 사고에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사실, 공부에는 느림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14p)
책은 그저 실제로 존재한다. 데이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22p)

 십여년 전, <황금성경구절>을 처음 만들던 때가 떠오른다. 개척교회 목회를 하며 6년 동안 매일 성경을 소리 내어 낭독해 읽었다. 통독을 몇 번 했는지 횟수를 세지도 않았다. 통독의 의미나, 데이터,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그것이 ‘성경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성경책을 읽으면서 정확히 어떤 지식을 습득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내하며 꼭꼭 씹어 발음해 삼키고 뱉고 소리 질러 외치는 동안 어떤 사고思考가 일어났다. 성경 전권에서 황금같은 성경구절을 선별해 내고 그것을 필사하고 낭독하도록 책을 기획해 만들어 낸 후로 꾸준히 지금까지도 책을 낭독함, 손으로 직접 써서 필사함을 권하는 이유는 성경책이 성경‘책’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사랑’이란 성경구절을 검색하여 정보를 얻는 것은 아주 경미한 도움이 될 뿐이다. 성경책은 로고스로 있으며 수천 년을 실제로 존재해 왔다. 
 
...책은 가치 경험을 대표하며, 인간의 정신은 인간의 작업과 연결되어 있다. (17p)
또한 책은 사람에 의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다. 책은 사람들의 몸짓언어다. 반면에 화면 글쓰기의 2차원적 영역은 책과 달리 모이지 않고 흩어진다. (62p)

  때문에 저자의 ‘책’ 에 대한 성찰들은 많은 공감과 구체적인 감탄을 끌어냈다. 특히 미디어 시대, 반反 타이포그라피 시대에 디지털 글자와 책에 대한 비교는 주목할만하다. 디지털 치매는 이미 너무 오래된 말이지만 점점 더 이해와 기억력이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은 적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린다. 

디지털 글자는 마치 유령과 같아서 고정된 장소가 없다. 그래서 스크롤을 하며 읽다 보면 글자의 잔상이 자꾸 집중력을 빼앗아간다. 글로 쓰인 내용이 복잡할수록, 집중력이 약해짐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는 치명적이다. (11p) 즉 인터넷상의 글자에는 머묾이 없다. 인터넷상의 글자는 화면에 나타나기 위해서 때로는 사소하고 때로는 복잡한 기술적, 경제적, 정치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지만, 글의 저자와 그 글을 읽는 독자 모두 항상 그러한 조건이 충족되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 이런 점 때문에 화면에 나타난 글자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 (21p)

  인터넷상의 글자는 떠다니는 글자다. 스크롤바로 내리면 같은 화면 자리에 글자가 움직여 다음 글자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참 배려 깊은 글자들이지만 결국 그 글자들은 나에게 정을 붙여 머물지 않는다. 바삐 가버리는 글자로 설명된 지식은 아주 잠깐만 내 눈을 스쳐나갈 뿐이다. 저자는 이런 디지털 글자를 비교하며 글자가 품은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에 대해 독일어 단어를 예시로 든다.

책은 만질 수 있고 사람이 손에 쥘 수 있다. ...‘파악하다’를 뜻하는 독일어 단어 ‘Begreifen(잡다, 쥐다, 이해하다, 깨우치다)’은 비유적인 의미와 구체적인 의미를 모두 갖고 있는데, 이와 정확히 쌍을 이루는 단어 ‘Erfassen(잡다, 포착하다, 파악하다, 조사하여 기록하다)’과 마찬가지로 책의 물질적인 객관성에 해당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안에 쓰인 내용을 ‘쥔다’, 즉 파악한다는 뜻이다.(46p)

 우리가 쥐고 잡을 수 있는 것이 즉 파악하고 이해하고 깨우치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물질성, 구체성과 함께 결국 오감을 사용하는 인간에게 ‘책’이라는 존재가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끊임없이 설파한다. 책 안에 다양한 출판 기술을 이용해 완벽한 읽기 기계의 원활한 작용을 유발하도록 하라는 이 책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언어, 로고스를 성경책으로 전수되어 내려오는 이유를 안다. 말로 정확히 설명할 수 없어도 ‘나의 사랑하는 책’ 찬송가를 부르며 말씀이 내 손 안에 쥐어져 깨우칠 수 있는 존재로 다가오는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비록 미디어를 끼고 살 수 밖에 없는 세대를 살지만, ‘책은 모든 존재가 자신과 생생한 관계를 맺도록 하는, 영원히 살아 있는 것 (21p)’인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책’의 판판한 사각형의 질감을 만끽해 보는 것은 어떨까.

박창수 목사 (인천 성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