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새로운 대서사는 내가 선 자리에서

(<문명의 위기와 기독교의 새로운 대서사>, 돈 큐핏, 안재형, 한국기독교연구소, 2010.

거대담론의 시대가 저물고 개별적 자아나 필요에 의한 모임(동아리)으로 파편화된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주제에 관한 이야기(거대담론)를 하면 ‘진지빤다’란 비난을 받은지 오래되었다.(‘진지빤다’란 ‘진지한 마음을 갖거나 그러한 태도를 취하다’는 속되게 표현하는 말이다.) 거대담론을 다뤄본들 개인의 삶에 실재적 유익을 주지 못하고 말잔치로 끝나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에는 거대담론이라 말할 수 있는 대서사가 존재한다. 창조, 타락, 구속이란 세 단어로 표현되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구속사다. 종교철학자 돈 큐핏은 <문명의 위기와 기독교의 새로운 대서사>에서 기독교가 갖고 있는 대서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과거의 대서사는 영원 속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모든 것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였다. (중략) 그 중에서도 존 칼빈은 이러한 과거의 대서사를 치밀하게 발전시켜 일반 신자들이 온 우주의 역사를 지배하는 하느님이 절대 주권을 믿도록 하였고, 이들이 삶 속에서 어떤 일을 겪더라도 하느님의 은혜를 맛본 자라면 자신의 최종적 구원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칼빈이 종교개혁의 주자로서 기독교의 대서사를 설파한 이유는 중세교회가 대서사에 따른 하나님나라의 가시적 표현이 되기보다 신성군주제를 표방하며 신자들을 영적 노예로 전락시켰기 때문이었다. 이런 현상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개혁교회 역시 같은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윤리와 사상은 영성을 추구하지만 종교는 거부하는 가나안신자를 배출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구속사보다 개인의 안녕과 물질적 축복으로 가득하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보다 그 뒤를 따르는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에 방점을 두는 기복신앙이 판친다.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교회 회복을 위한 몸부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두 번째 회전의 4번에 위치해 있다. 

저자는 기독교의 대서사가 권력구조를 만들어 기독교의 타락을 가져왔다고 보고 새로운 대서사, 아니 위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과거의 교조에 묶여 옛 성인들의 뼈를 우려내는 추억팔이가 아니다. 종교는 세상을 지금 우리의 세상으로 전달하고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전달하는 일은 환수함으로써 자기 과업을 끝낸다. 그것은 절대적인 도덕적 선택의 현재에 헌신하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 주어진 삶에 온전히 헌신하는 소소한 실천들을 선택할 때 기독교의 새로운 대서사가 쓰여질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거대한 담론을 주장하며 종교적 껍데기만 키우기보다 작지만 아름다운 실천들이 쌓일 때 기독교의 대서사가 새롭게 쓰여질 것이다.
 
이원영 목사(예장통합 총회농촌선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