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가 없는 세상>, 권정생 글, 김규정 그림, 개똥이, 2021)

  전쟁이 없는 세상은 요원한 것일까? 가인의 후예의 숙명일까? 하나님께서 뭇 생명들을 창조하실 때 가졌던 마음이 곧 인간의 본디 마음일텐데... 

  서로 기대고 서 있을 때 – 물론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도 있지만 홀로서기는 본디 하나님께서 그리 흡족해하신 모습은 아니다. 모든 짐승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아담을 보시고는 정작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의 짝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셨다. 그래서 아담이 잠든 틈에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셔서 창조의 완성을 이루셨다. 이때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며 참 좋아라 하셨다. -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어떤가? 전쟁도 이런 전쟁이 없다. 지금 우리네 삶은 매일매일이 전쟁터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만이 전쟁이 아니다.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 서로 끌어내리기 위해 갖은 음모와 폭력이 난무하는 일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보이지는 않지만 우린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절박감과 긴장감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권정생 선생님이 그려낸 평화로운 세상의 꿈이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권정생 선생님이 그린 세상은 복잡할 것 하나 없는 너무나도 단순한 세상이다. 그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내가 세상을 너무나 순진하게 바라보는 것일까? 서로가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받아들이는 평화의 세상이 그립다. 

  권정생 선생님의 그리 길지 않은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 김규정 작가의 그림이 더해져 귀한 그림책으로 만들어졌다.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곰들과 늑대들이 대치하고 있다. 오로지 내 나라, 내 민족을 지키기 위해 애국심에 불타 한 명의 적이라도 더 죽이겠다는 의지가 눈에 이글거린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건 생명이 아닌 죽여야 할 적들뿐이다. 

  그런 그들 사이에 애벌레 한 마리가 나타난다. 누구도 애벌레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서로를 쏘아볼 뿐이다. 이 살벌한 상황에서 애벌레는 증오와 미움의 균열을 내는 생명의 존재로 그 자리에 있다. 애벌레가 꿈틀거리자 서로 죽이고자 하는 그들의 강팍한 마음 속에서도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설명할 길이 없는 꿈틀대는 이 무언가는 삽시간에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손에 쥐고 있던 총을 내려놓고 곰들과 늑대들은 가면을 벗어 던진다. 그들의 이글거리던 눈빛도 온화한 눈빛으로 바뀌어 간다. 그렇게 눈빛이 달라지며 진정한 평화의 꿈을 꾸기 시작할 때 애벌레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평화의 날개짓을 하며 날아오른다. 평화는 이렇게 단순한 것이다. 

  애국이란 말이 참 숭고한 가치이지만, 애국이 자신들만의 번영과 안락과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이것은 이내 무자비한 폭력이 되고 만다. 애국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해야만 했는가! 

  애국, 애족을 넘어 더 큰 가치와 비전을 품어야만 평화에 복무하는 사람이 된다. 더 큰 가치와 비전은 다른 게 아니다.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좀 더 용기를 내어서 – 예수님께서 하라 하신 대로 – 원수도 사랑하고... 그러면 좋은 세상, 아름다운 세상, 평화의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 
  권정생 선생님이 꿈꾸었던 세상은 저 옛날 미가가 꿈꿨던 세상 -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미가 4:3-4) - 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이 꾸어야 할 꿈이기도 하다.

  우리가 걷는 평화의 여정은 인간의 본디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마주한 생명들을 수단이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영이 깃든 소중한 생명으로 여겨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궁리하는 그런 세상이 오면 참 좋겠다. 하여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다시금 되찾아 자유로이, 평화롭게 뭇 생명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거닐고 싶다.

이 혁 목사(의성서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