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시작과 함께 꽃샘 추위가 왔다. 집 안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가 제법 거칠었다. 단열을 위해 차양막을 드리운 처마에 천막을 둘렀는데 그 천막이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렸다. 지붕이 날아가지 않을까, 연통이 흔들리지 않을까, 마당에 쌓아놓은 아직 베지 않은 나무들이 거친 바람에 치이지 않을까 등 별의별 상상을 해본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힘없는 종이상자와 톤백 자루가 마당 한가운데에 덩그라니 놓여있었다. 집 옆 비닐하우스는 산 밑 바람에 심하게 흔들렸다. 혹시 비닐이 찢겨 날아가지 않을까 노심초사는 기본이다. 

얼마 전, 2월 말에 눈이 온 적이 있다. 그때 눈은 수분을 잔뜩 먹은 눈이었다. 제법 쌓였다. 수분을 먹은 눈이라 빗자루로 쓰니 무겁게 쓸렸다. 넉가래로 밀어도 잘 밀리지 않았다. 겨우 사람이 다닐 정도, 개들이 다닐 만한 길을 만들고 멈췄다. 기온이 따뜻하니 햇살에 녹기를 기다렸다. 눈 치우는 것은 고생스러웠으나 주위 설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이번 겨울이 여느 해보다 눈이 많이 오긴 했지만 이번처럼 나뭇가지에 쌓이기는 처음있는 듯 싶었다. 집 뒤 소나무에 앉은 눈은 멋있긴 한데 보고 있노라니 소나무가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돌을 던져 푸른 잎에 쌓인 눈을 떨구고 싶었다. 하지만 워낙 키가 크고 너무 높이 있는지라 그저 구경만 하였다. 

짧은 거리지만 출근을 하려고 길을 나섰다. 한참을 가는데 뒤에서 딱딱, 따닥거리는 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뭔소리지? 하며 가던 길을 돌아 집으로 향했다. 혹시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적설량이 많을 때 산의 나무들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얘기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시 돌아온 나에게 한라와 만두(새로 들여온 개다.)가 반갑다며 꼬리쳤다. 한번씩 쓰다듬어 주고 지붕과 보일러실을 둘러봤다. 집 앞의 산도 쳐다보았다.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아마 산속 어딘가에서 부러진 것이었으리라. 마음을 놓고 출근했다. 눈은 다행히 따뜻한 영상 기온에 녹기 시작했다. 눈이 녹아 길이 질척거리긴 했지만 얼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질척거리는 땅을 밟을 때 잘못했다가 미끄러질 수 있어서 훈련원 주위의 눈을 말끔히 치웠다. 그렇게 치워놓아야 더 빨리 녹기 때문이다. 

퇴근을 했다. 역시 산 밑은 눈이 녹지 않았다. 이곳은 오전 10시가 되어야 햇살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오후 4시 정도가 되면 어둑해진다. 집에서 200미터만 벗어나면 그곳은 전혀 새로운 곳이다. 해가 이미 들녘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러니 내 집 앞의 눈이 아침에 내린 그대로 있는 것은 몇 번의 경험으로 그러려니 한다. 대충 마당의 눈을 치우고 저녁을 먹은 뒤 보일러에 장작을 넣고 마당에 있는 장작을 실어 보일러실에 쌓았다. 농촌의 겨울은 장작이 그득하게 쌓여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스위치만 누르면 단열이 되는 도시가스나 기름보일러가 아니기 때문에 장작이 줄어드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러고보면 지난해까지 썼던 연탄보일러도 편안했던 단열 시스템인 것이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이제 눈을 쓸어볼까 하면서 비닐하우스 뒤를 돌았다. 허걱! 이게 뭐지? 깜깜한 밤 하늘 아래 헤드전등에 비친 것은 소나무였다. 이게 왜 여기 있지? 하면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아침에 위태롭게 보였던 소나무가 거의 반이나 부러져 땅으로 그것도 내 하우스 뒤쪽의 문 바로 앞에 떨어진 것이다. 소나무가 떨어지면서 그 무게가 얼마나 컸을까? 그 밑에 있던 작은 소나무는 아예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꺽였다.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펌프와 연결해 놓은 전기줄도 나무에 걸려 땅바닥에 내려져 있었다. 밤이 깊어지고 밤눈이 어두워 손을 쓸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급히 몸을 일으켜 어젯밤의 현장으로 달려가니 아, 해 아래서 보는 현장은 더 떨렸다. 정말 하마터면… 이란 표현이 저절로 나왔다. 그리고 감사도 저절로 나왔다. 나뭇더미가 하우스를 덮치지 않은 것과 얼마 전 장독대를 만든다면서 갖다 놓은 고추장 단지 3개가 무사한 것, 전기줄이 끊어지지 않은 것, 지하수 물을 채우는 센서등이 고장나지 않은 것 등 작은 눈으로 인해 마치 나비효과처럼 일어날 수 있었던 것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기상이 가득했던 소나무가 부러진 것이 안타까우나 자연이 그런 것임을 내 어찌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