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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 신의 혁명과 인간의 책임” 창세기3장9절~17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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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3월 01일 (금) 01:19:55 [조회수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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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 신의 혁명과 인간의 책임” 창세기3장9절~17절

 

 

1. 자의식(self-consciousness, 自意識)의 부작용

 

① (9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 하나님이 아담을 찾으신 까닭은 아담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의 결과는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친밀했던 관계가 ‘하나님의 낯을 회피’하는 관계로 단절된 것이다. 앞서 하나님은 ‘정녕 죽으리라(창 2:17)’ 말씀하셨고, 뱀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유혹했다. 아담과 하와가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는 까닭에 뱀의 말이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육체적인 목숨은 부지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영적인 죽음을 마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뱀이 주장하는 바대로 생물학적 죽음만을 생각하는 까닭에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 급급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죽음에는 살아있는 것이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한 ‘생불여사(生不如死)’와 같은 사회적 죽음도 있고, 사데 교회처럼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계 3:1)’ 같은 영적인 죽음의 차원이 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생명(生命, life)을 목숨보다 삶으로 번역해야 하는 이유다. 성경은 목숨보다 더 숭고한 삶 곧 영생(永生, eternal life)을 누누이 강조한다. 성경이 말하는 영생은 불로불사(不老不死)나 영혼불멸(immortality)이 아니다. 영생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참된 삶이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 13:25)”

 

② (10절~11절)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벗었으므로 두려워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의 결과는 무엇인가? 앞서 살펴본 대로 눈이 밝아져서 서로에게 수치심을 갖게 되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 3:7)” 본문은 이에 더해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고 증거 한다. (메시지 성경) ‘남자가 대답했다. 제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벌거벗은 것이 두려워 숨었습니다.’ 뱀은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고 미혹했다. 뱀의 말대로 선악과를 먹어서 눈이 밝아지긴 했지만 그 결과는 두려움과 수치심을 갖게 되었다. 눈이 밝아진 아담과 하와의 심리상태를 현대적으로 바꿔 말하면 ‘자의식(self-consciousness, 自意識)’을 갖게 된 것이다. 자의식은 자신의 실체를 인식하고 자각(自覺)할 수 있는 능력이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말이 자의식의 전형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자의식 과잉은 수치심(shame)과 죄책감(guilt), 자만심(pride)과 당혹감(embarrassment)에 빠지는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자의식 과잉은 결국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불안과 고독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불러왔다. 실제로 인간의 자의식을 추적한 실존주의가 다다른 결과는, 인간의 실존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처절한 자기 인식에 이른다. 한마디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Milan Kundera, 1929~2023)’이다. 대표적인 실존주의 문학가이자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1867~1916)는 ‘행인(行人)’이라는 장편소설에서 근대적 자아의 한계에 봉착한 주인공으로 하여금 “죽느냐, 미치느냐, 그것도 아니라면 종교에 귀의하느냐, 내 앞 길에는 이 세 가지밖에 없었다.” 라고 말한다. 인간의 유한성을 자각한 결과는 ‘자살(自殺), 발광(發狂), 종교(宗敎)’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2. 자유와 책임

 

① (12절~13절)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 하나님의 물음에 대한 아담의 비겁한 변명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사랑과 존중은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다. 자유의지는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혁명적으로 부여하신 고유의 권한이다. 따라서 자유에 따른 막중한 책임이 요구된다. 아담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아서 말씀대로 준행하지 않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죄를 아내에게 전가하고 돕는 배필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원망한다.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에 대한 책임회피다. 부창부수라고 하와도 말씀대로 준행하지 않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기보다 자신을 꾀인 뱀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결국은 선악과를 만들고 뱀을 지으신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했다. 자신의 죄악을 하나님께 자복하고 회개하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지도자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예나지금이나 부여된 권한은 다 누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지도자들이 문제다.

 

② (14절~15절)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게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고”

▶ 동산중앙에 나무 선악과는 에덴동산을 이루는 필수 조건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 천국이듯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곳이 에덴동산이기 때문이다. 뱀처럼 하나님의 통치를 대적하고 훼방하는 영적인 존재가 사단이다. 사단은 뱀의 유혹처럼 모든 것을 다 누리는 자유에 만족하지 못하고 소유할 수 없는 단 하나에 집착하게 한다. 주신 것과 있는 것에 자족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것과 없는 것에 매달리게 한다. 본문은 하나님의 통치를 대적하는 영적 존재인 사단에 대한 처벌이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사단의 역사는 지금도 벌어지고 있고 요한계시록까지 계속된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을 탄 음녀 바벨론... 저희가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계 17:1~14).”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듯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를 이길 수 없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슬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롬 16:17~20)” 의에 최후승리다.

 

③ (16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 성경이 시종일관 증언하는 축복과 저주를 가르는 기준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말씀대로 준행하면 축복을 누리지만 말씀을 거역하면 저주에 이르게 된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1:19~20).” 아담과 하와에게 저주와 고통이 임한 원인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지 않은 결과다. (메시지성경)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해산의 고통을 크게 더하겠다. 너는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을 것이다’ 여성이 필연적으로 감수할 수밖에 없는 출산의 고통에 대한 원인담이다. (메시지성경) ‘너는 네 남편을 기쁘게 해주려고 하겠지만 그는 너를 지배하려 들 것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오랜 세월 여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한 공공의 적(Public Enemy)인 ‘가부장제(家父長制)’의 원인담이다. 본문을 근거로 가부장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시대착오적 해석이다. 양성평등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자 인류가 지향해야 할 공동선(共同善, the common good)다.

 

 

3. 고난의 유익

 

① (17절)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은 결과이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지 않는 삶의 결과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았다. 사람을 가리켜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는데 ‘영장(靈長, lord)’은 특별한 지위를 맡은 책임자라는 뜻이다. 사람은 만물을 하나님의 창조질서대로 돌보는 사명을 맡은 청지기다. 오늘날 인류가 청지기의 사명을 망각한 오만과 탐욕으로 인해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환경파괴로 만물이 저주를 받아 신음하고 고통을 받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극심한 고통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시기 위한 징계다.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시는 과정이다.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목적은 멸망이 아니다. 돌이켜 회개함으로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히 12:6~10)”

 

② (시 119:67, 71)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 하나님의 본심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하나님을 경외하면 말씀대로 준행하고, 말씀대로 준행하면 친히 동행하시고 축복하신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을 멸시하고 말씀을 거역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저주가 임한다. 죄로 인한 저주에서 의로 인한 축복으로 뒤바꾸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이 고난이다. 고난에는 뜻이 있다. 고난으로 멸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죄를 깨달아 돌이켜 회개함으로 잃어버린 축복을 다시금 회복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났던 탕자가 인생의 실패와 쓰라린 고난을 통해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이킨 것처럼, 삶에서 경험하는 아픔과 고난이 새로운 삶으로 나가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난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면, 오늘날 인류가 겪는 고난과 재난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된다. 고난은 타락한 인류가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하고 하나님께 나가는 지름길이자, 죄악으로 주홍같이 물든 우리의 삶이 거룩하게 변화되고 깨끗하게 치유되는 유일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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