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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폴라니- 왼편의 삶>, 개러스 데일(황성원 옮김), 마농지, 2019)
칼 폴라니라는 인물은 <거대한 전환>이라는 그의 기념비적 저술과 연관 검색어로 떠오르는 시사 상식 대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얼마 전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 빨간 표지의 <칼 폴라니-왼편의 삶>이라는 책이 유혹적으로 다가왔다. 평생을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리면서도 빨간색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아무튼 지난 설 명절 내내 5백 페이지가 넘는 이 책과 씨름했다.
폴라니는 “나의 삶은 ‘세계사”라고 썼다. 정말 그의 삶은 격동의 20세기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다. 헝가리 출신 유대인으로 시작해 오스트리아, 영국, 미국을 거쳐 캐나다에서 끝나는 지리적 삶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확산, 1차대전과 볼셰비키 혁명, ‘붉은 빈’의 경험, 파시즘의 탄압과 망명, 스탈린주의, 대공황과 뉴딜, 2차대전, 매카시즘의 공포와 냉전 등 당대의 거친 파도를 헤쳐나온 세계사적 삶이었다. 특별히 폴라니는 흥미롭게도 기독교사회주의자였다. 물론 전통적 의미의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다.
“그는 인간이 이 세상을 의미 있게 만드는 수단이 바로 종교라고 생각했고, 종말론과 운명론에 기대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프로젝트에 요구되는 윤리적 공동체를 구축하는 규범을 세우고 실천하기 위해 기독교에 관심을 기울었다. (..) 그는 예수에게서 인류가 “자기 힘으로, 이 세상에 하늘의 왕국”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을 보여준 “혁명가”를 보았다. 기독교는 “개인의 이익 너머에 있는 더 높은 삻의 방식”을 보여주고 개인들에게 “타협하지 않는 급진주의, 등골이 서늘해지는 예수의 급진주의와 함께 실천하는” 용기를 북돋기 때문이다”. (97-8쪽)
세계적인 폴라니 연구자 개러스 데일의 <칼 폴라니-왼편의 삶>은 최초의 폴라니 전기다. 데일은 폴라니의 저작을 다시 살피고, 아카이브 다섯 곳에 있는 모든 자료를 섭렵하고, 폴라니의 가족과 동료 및 제자들을 아우르는 인터뷰를 통해 세밀한 폴라니 초상화를 그려냈다. 본서는 부르주아 급진주의자에서 개혁적 사회주의자로 변모해가는 폴라니의 사유의 궤적을 추적하는 한편, 그의 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주요 저작의 핵심 내용을 압축해 전달하고 있다. 또한 '헝가리 망명자 4인조'라 불리는 동생 마이클 폴라니와 죄르지 루카치, 카를 만하임과 더불어 에릭 프롬, 드러커, 그리고 미제스, G.D.H. 콜, 토니, 월러스틴을 비롯한 수많은 인물과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은 20세기 지성사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이후에도 여전히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가 득세하고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폴라니의 혜안은 경제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사상 및 사회의 방향에 주목하도록 만든다. 시장이 사회를 지배함으로써 인간의 자유와 존엄과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사상적 자원, 바로 칼 폴라니다.
폴라니가 기대했던 '거대한 전환'(시장경제→사회적 경제 혹은 게젤샤프트→게마인샤프트)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에 폴라니의 예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예수와 기독교는 게마인샤프트, 즉 공동체주의 의식이 가장 자유주의적인 게젤샤프트-그것의 보편주의와, 개인의 도덕적 책임의 윤리-와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67쪽)
진광수 목사 (바나바평화선교회 대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