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보리, 1997) 

“스코트 니어링이 백 년 동안 살아서 이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되었다.”

서점 가판대 구석에 놓여 있던 이 보물 같은 책을 발견하고 집어 들게 된 것은 이 구절 때문이었다. 스코트가 백 번째 생일을 맞던 날 이웃 사람들이 이와 같은 글을 적은 깃발을 들고 축하하였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이웃들에게 그런 찬사를 들을 수 있었을까?

책을 읽고 나서는 반해버려 한동안 주변에게 소개하며 선물하고 20년이 넘은 지금에도 가끔씩 선물을 하곤 한다. 오랜만에 다시 읽고 나서 책을 덮는데 또 한 번 가슴뻐근한 울림이 온다.

저자인 헬렌 니어링은 반세기 동안 함께 살았던 스코트 니어링과의 만남과 삶, 그리고 스코트의 죽음으로 인한 헤어짐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0살이 넘는 나이차 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가 평등하게 대하고 생각을 공유하였던 헬렌과 스코트의 검소하고 소박한, 그들이 원하고 또 생각하는 대로 삶을 꾸려갔던 조화로운 삶의 시간들이 펼쳐진다.

헬렌은 ‘원칙에 충실하고, 타협하지 않으며, 지적인 변혁가의 면모와 아울러 꾸밈없고 친절하며 현명한 남편으로서 스코트의 삶을 그대로 보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스코트가 세상을 떠난 지 8년 후인 헬렌이 87세 때였다.

스코트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상류층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점점 더 많은 빚을 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사회 개혁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신념을 따름으로 일하고 있던 대학으로부터 추방당해 교수직은 내려놓아야 했지만 평생에 걸친 업적은 경제학자, 교육자, 평화주의자, 인권옹호자, 좌파정치인, 국제 사회주의자, 생태주의자, 귀농운동가, 미래주의자로서 인정을 받았고 강연과 저술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스코트의 좌우명을 잠시 들여다보자.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을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중략)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 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책에는 여러 사람들의 소개 글이 들어있다. 한 목사의 글이다. “이 어리석은 새 시대에, 말 많은 바보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고, 손가락은 대중들의 잼항아리에 넣고서 양심은 꽁꽁 묶어놓은 채 대중을 속이는 지도자들이 들끓는 이때에, 스코트 니어링 덕택에 우리는 좀 더 용기있게 오늘의 이 세상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일찍이 스코트 니어링만큼 내 명료하지 못한 마음과 겉으로 드러난 양심, 나의 도덕적 오만과 혼란스런 정치관을 날카롭게 다듬는 데 모범이 된 교사를 알지 못하며 그이에게 경의로 보내는 바입니다.”

강연과 저술 뿐 아니라 소란스러운 도시의 삶을 떠나 직접 집을 짓고 땅을 일구어 자급자족하며 살던 집과 농장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개방되어 많은 이들이 찾아왔고 함께 일하고 식사하며 영감을 얻어가거나 희망을 품고 갔다. (한 해는 2,300명이나 다녀갔다고 한다!)

“니어링네를 찾으면 지식이 쓸모 있으면서도 기품 있게 응용된 예를 보게 된다. (중략) 거의 한 세기 동안 살아온 스코트와 마주 앉아 얘기를 주고받노라니, 오늘날의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넘어 변함없이 지속되는 자연의 리듬과 인간의 가치를 떠올리게 된다. 니어링네를 방문하는 것은 우리가 시작해야할 다른 일들이 있음을 생각나게 한다.“

원래 살고 있던 버몬트에 개발 광풍이 들어서면서 니어링 부부는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어 이전까지 살았던 땅을 팔아야했는데 떠나는 무렵 한국 전쟁 때문에 땅값이 치솟았다고 한다. 스코트는 전쟁에서 오는 이익을 원하지 않아 지역 산림 발전을 위해 자기 몫의 땅을 마을에 기부한다. 원칙대로 사는 삶은 명료하지만 실천은 어렵다. 아니, 무엇이 중요한가 다시금 정신 차리고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이는 듯 하다.

 100세까지 살았던 스코트는 죽음에 대한 것도 연구하며 준비하였고 100세 생일 3주 후에 사랑하는 헬렌의 옆에서 평온하고 조용하게 삶에서 떨어져나갔다. 축사와 조사가 1000통이 넘었는데 그 중에서도 그 구역 담당의 우편배달부의 엽서가 감동을 준다. “스코트는 지식과 사는 법, 새로운 사고법을 가져다 준 사람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자연이 또 다른 것을 요구할 때, 우리는 귀 기울여 멈춰섰다가 여기 많은 사람들의 방향을 바꾸고 발전시킨 사람이 있었음을 잘 기억하면서 우리가 갈 길을 계속 갈 것입니다.”

마지막 장의 헬렌의 글이다. “사랑의 그물이 지구를 가로지른다. 미묘하게 빛나는 선들이 세상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가는 망을 만든다.(중략) 사랑에 참여하고 사랑을 주는 것은 인생의 가장 위대한 보답이다. 사랑에는 끝이 없으며 영원히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과 떠남은 삶의 일부이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따라 하기에 쉽지 않지만 그들의 생각과 삶은 나의 자리를 되돌아보게 하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머리를 맴돌며 질문하게 한다.

덧말) 추억을 살금살금 더듬어 들어가 보니 이 책을 통해 ‘보리 출판사’를 알게 되었고, 그 때부터 이어진 인연은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면서 보리 출판사에서 나온 그림책, 동요, 월간지 개똥이네 놀이터 등등으로 이어져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삶의 많은 부분에 연결되어 있었다. 책을 통한 의외의 행복한 만남이 나를 그리고 나의 아이를 키워왔구나 싶다.

조주희 (회사원/색동교회 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