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2024)

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한 종교가 발생했을 때 이 종교는 새롭게 만들어진다기보다 대체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역사상 종교나 신앙이 전무한 상태는 없었기에 새로운 종교는 언제나 기존의 종교를 대체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종교는 기존 종교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신앙의 대상이나 내용은 바뀔지라도 신앙의 형식은 어느 정도 유지되기 때문이다. 성경의 예를 보자면 고린도교회와 방언의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고린도전도에서 바울은 결론적으로 질서를 강조하며 공적 예배에서는 방언을 삼갈 것을 권면한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교회 이외에는 그 어떤 교회에 대해서도 방언을 주제로 얘기한 적이 없다. 왜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추측이 가능하다.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고린도 사람들이 그 이전에 무교였을 리는 없다. 그러니 자신들이 믿던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받아들였을 때 당연하게도 그들은 예전의 방식대로, 즉 방언을 중심으로 한 영적 엑스타시의 형식 가운데 하나님을 섬겼을 것이 분명하다. 바로 이 특수 상황 속에서 바울은 방언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현상은 기독교가 전 세계로 퍼진 현재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미국의 백인 공동체 와 달리 노래와 춤과 흥이 결합된 흑인 공동체의 예배는 그들이 전통적으로 신을 믿고 예배했던 방식을 반영한다.그리고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새벽기도도 해당된다. 잘 알려진 대로 새벽기도는 한국 기독교가 발명해낸 새로운 신앙 형식이 아니다.기독교가 있기도 전에 우리에게는 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치성을 올리던 어머니들이 있었다. 바로 이 기도의 습관이 고스란히 기독교 예식 안으로 녹아든 것이 교회의 새벽기도다. 기도의 대상이 천지신명에게서 하나님으로 바뀌었을 뿐 정성을 드리는 행위는 동일하게 남은 것이다. 이렇게 어떤 새로운 문화나 풍습 등이 현지의 옷을 입는 현상은 ‘토착화’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개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엄청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파묘》는 바로 이런 맥락 속에서 한국의 기독교와 토속 신앙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다. 이장과 화장 등 매장풍습을 모티프로 한 영화 《파묘》에는 음양오행, 풍수지리, 무속 등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표현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는 아무리 현대문명이 발달했다 해도 한국인들은 여전히 이 영향권 아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스도인들조차 이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 한 것처럼 보이는 예도 많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이왕이면 손 없는 날 이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때 ‘손’이란 날짜에 따라 방향을 달리하여 돌아다니며 사람의 일을 방해하는 귀신을 뜻한다. 사주를 보고, 집터를 살피고, 4자를 피하는 등, 왠지 모를 찜찜함을 피하기 위한 모든 행동은 모두 영화가 주제로 삼은 토속적인 것들에 기인한다.

토속적인 모든 것들에 과하게 신령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그와 반대로 간단히 미신으로만 치부해버리는 것도 모두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무분별한 수용이나 배척의 양극단보다 그에 대한 충실한 이해가 어쩌면 우리의 신앙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의 DNA에는 이 땅에서 살아온 모든 조상들의 DNA가, 그들의 풍습과 문화와 종교가 이미 녹아있기 때문이다. 서양으로부터 전래되었기에 한국의 기독교 역시 주로 서양적인 외피를 입고 있긴 하지만 그 신앙을 받아들인 우리의 피 속에는 여전히 우리의 것들이 함께 흐르고 있다. 교회의 집사이기도 한 영화감독이 말한 것처럼 《파묘》는 감독의 전작들인 《검은 사제들》이나 《사바하》처럼 종교에 대한 성찰을 담은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 《파묘》는 오컬트라는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가 밟고 있는 땅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또 다른 면에서는 영화 처음에 등장하는 ‘밑도 끝도 없는 부자’들이 대대로 그러하려면 어떤 사람들이어야 했을까를 묻는 영화이기도 하다.

순수한 오락적 재미에 더해 영화를 본 후 우리의 신앙이 자라난 터전을 살펴보는 기회를 삼는다면, 그 터전과 그 속에 피어난 새로운 신앙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이해하는 기회를 삼는다면 이 또한 매우 유익한 감상이 될 것이다. 토속적인 것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숙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인 ‘영’(spirit)을 뜻하는 성경의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원래 ‘바람’이나 ‘숨’을 뜻한다. 그런데 이 말을 우리말로는 한자어로 靈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이 한자 속에는 내린다는 뜻을 지닌 령(霝) 아래 무당 무(巫)자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우리의 신앙 속에는 이렇게나 깊숙이 무속의 흔적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