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차나를 통하여 쁘리야에게 위로금 전달

     2023년 12월 15일 금요일, 하루 종일 비 오다.

     알차나(archana) 자매로부터 문자가 왔다. “오늘 아침 당신이 보낸 돈을 쁘리야에게 전해 주었습니다.”라는 간단한 문장과 함께 사진도 보내왔다. 알차나는 항상 필요한 말만 한다. 쁘리야가 머리를 붕대로 동여매고 그 위에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왼손은 깁스하여 오른손으로 돈을 받는 모습이다. 산속의 쁘리야 집에서 알차나가 근무하는 학교(Modern nepal School)까지는 약 2시간 정도 걸어야 하는 먼 거리인데 아픈 몸으로 어떻게 걸어갔는지 모르겠다. 사진 속에서는 웃는 모습이지만 얼굴이 퉁퉁 부었고 몸이 몹시 피곤해 보인다. 한국에서 후원자가 보낸 위로금 20만 원이 교통사고를 당한 쁘리야의 치료비로는 넉넉하진 않겠지만 큰 격려가 되어 빨리 회복하고 학교에 잘 다니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였으면 좋겠다.

     2023년 12월 16일 토요일, 갑자기 추워지고 눈오다.

     옛 친구의 방문

     “‘유쾌한 방문이 될 거야’나 ‘즐거운 여행이 될 거야’라고 혼잣말할 때, 당신은 문자 그대로 몸의 구성 요소들을 미래로 보내서 여행이나 방문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안배하는 셈이다. 방문이나 여행이나 쇼핑하러 가기에 앞서 기분 나쁘거나 불쾌한 일에 관해 겁내거나 걱정하면, 보이지 않는 대리자를 미리 보내서 불쾌한 일이 일어나게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 생각이나 말이나 마음가짐은 늘 움직이면서 실제보다 앞서서 상황을 좋거나 나쁘게 만든다.” -프렌티스 멀포드

     어제까지 비가 내려 가을인지 겨울인지 분간 못 할 정도로 포근하던 날씨가 비가 그치고 나니 갑자기 추워졌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다. 강원도 고성에는 ‘눈이 50센티까지 쌓였으니, 폭설에 주의하라’는 뉴스가 보도 되고 내 핸드폰에는 수시로 ‘제천 지역 한파주의보’가 뜬다. 밖을 내다보니 차가운 눈보라와 세찬 바람이 몰아쳐 나무들이 휘청거린다. 차에 가서 시동을 걸어 보려고 하니 차의 문이 얼어붙어 잘 열리지 않는다. 날씨가 너무 추워 오늘 저녁에 온다는 친구들(최ㅎㅁ, 전ㅁㅇ)이 걱정되어 “너무 추워서 올 수 있겠느냐?”는 문자를 보냈더니 두 친구 모두 유쾌한 마음으로 약속대로 시간 맞춰가겠으니 잠시 후에 만나자는 거다. 70세가 넘은 친구들이 대단한 열정이다.

     오후 4시에 추위를 헤치고 청량리역에서 출발한 친구들이 KTX를 타고 1시간 만에 제천역에 도착하였다. 세월은 참 좋은 세월이 되었다. 버스로 2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이제 겨우 저녁 5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날씨가 음산한 탓으로 벌써 한밤중 같은 느낌이다. 2층 플랫폼을 내려오는 사람들이 모두 추워서 옷깃을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나오는 사이에서 친구 둘이 멀리서 나를 먼저 알아보고 손짓하며 다가온다. 2년 전 해외 선교 다녀오던 나를 대접한다고 하여 서울에서 만나 함께 식사한 적이 있고 그동안 쭉 만나지 못하고 카톡으로만 통화를 하였는데도 바로 알아본다. 그들을 태워 어둠을 헤치고 밤길을 달려 제천시청 아래 추어탕 집으로 갔다. 추울 때는 뜨거운 음식이 최고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우리들의 이야기는 제쳐 놓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쁘리야에 관하여 지금까지 카톡으로만 이야기하다가 대면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50여 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인생의 사연들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런 사소한 일상 이야기는 뒤로 하고 바로 쁘리야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뜨거운 추어탕을 먹으니, 몸이 좀 후끈해진다. 가까운 카페로 자리를 옮겨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온 김에 하룻밤 자고 갔으면 좋으련만 각자 바쁜 일정이 있어서 오늘 밤 8시 기차로 다시 돌아갈 친구들이니 약 2시간 후면 헤어져야 한다. 우리는 쁘리야를 돕기 위하여 좀 더 진지하고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들은 앞으로 후원금이 좀 넉넉히 들어오면 쁘리야만 도울 것이 아니라 내가 선교하는 다른 지역의 제2, 제3의 쁘리야도 후원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였다. 참으로 고마운 말이다. 나는 주로 빈민촌을 방문하다 보니, 쁘리야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오늘 함께 오지 못한 강남 압구정에 사는 변ㅌㅈ 친구도 기꺼운 마음으로 동참하기로 하였다며 함께 기뻐하였다. 벌써 3명의 친구가 힘을 합치게 되었다.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비록 나이가 들어 사회에서는 힘없는 노인의 반열에 들어섰지만, 그리고 우리의 형편으로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남은 인생 조금이나마 나보다 못한 이들에게 작은 보탬이라도 되어 보자는 선한 생각이 친구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모양이다. 마음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워도 한 달에 1달러 정도는 누구나 협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모두 함께 ‘쁘리야 돕기 운동’을 위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다. 돌아갈 시간이 임박하여 친구들은 다음을 기약하고 노구에 피곤도 무릅쓰고 서둘러 다시 차가운 겨울바람을 헤치고 밤 8시 청량리행 열차로 떠났다. 나는 생각도 못 하고 부탁을 한 적도 없는데, 친구들 스스로 마음이 동하여서 이 추운 겨울 나를 만나러 왔다가 바삐 밤길을 떠났다. 친구들이 열차에 오르는 것을 보고 나 혼자 밤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하였다.

     “그래, 저런 친구들이 진짜 선한 삶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저런 친구들이야말로 예수의 삶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금액은 중요하지 않다. 고난에 처한 이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나는 중간에서 심부름이라도 열심히 하여 저들의 선한 일을 잘 도와야겠다!”

     끌어당김

     끌어당김의 법칙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끌어당긴다. 사람들, 직업, 환경, 건강, 부, 빚, 기쁨, 자동차, 소속된 단체 등,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외부로 드러난 것이 바로 삶이다. -리사 니콜스

     우리가 무언가 집중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우주의 힘(에너지)을 끌어들일 수도 있고 그 힘을 원하는 곳으로 보낼 수도 있다(론다 번, 시크릿). 내가 부탁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옛 친구들이 이 추운 겨울 자원하여 서울에서 제천까지 와서 나를 만나고 즉시 바쁘게 밤길을 달려 돌아가는 모습도 역시 우주의 힘(에너지)에 의한 이끌림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우주의 힘(에저지)이 하는 일을 알 수도 볼 수도 없지만 우리가 진정성을 갖고 집중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이 있을 때 우주의 힘(에너지)이 우리를 위하여 작용한다(론다 번).

     “당신이 무언가 하겠다고 결심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그 일이 이루어지게 만든다.”-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히브리서 11:1)

     내가 깊은 산속 쁘리야네 집을 방문하게 된 것도 순전히 우주의 힘(에너지)에 의하여 이끌림을 받은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비말씨네 집 같은 부잣집을 방문했을 것이다. 지난번 비말씨의 부모님이 사시는 시골집에 갔을 때, 지극정성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금방 짜 온 신선한 버펄로 우유로 끓인 찌아를 마시고 거실 앞 과수원과 밭에서 금방 따온 신선한 과일과 채소 그리고 염소 고기와 토종닭 등의 요리를 끼니마다 대접받으며 2박 3일을 잘 지냈다. 잘 사는 집을 방문하면 이렇게 호강하며 극진한 대접을 받는데 가난한 집을 방문하면 내 지갑을 털어서까지 그들을 도와주어야 하고 그뿐 아니라 그들의 어려운 사정을 들으며 마음까지도 울적하고 슬퍼진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 선교하고 돌아와 돌이켜보면 부잣집에서 환영받고 대접받은 것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의 집에서 그들과 애환을 함께 나눈 것이 더 기억에 남고 행복하고 흐뭇하다. 그야말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이제 황혼이 깃들어 머지않아 인생의 막을 내려야 하는 인생 드라마에서 조금이나마 나보다 못한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갈 수 있으면 그 인생극은 의미 있을 것이다. 이 일을 위해 동반자를 만나게 되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건강과 재산을 남을 돕는 일에 이용한다면, 그것들은 우리가 더 행복한 삶을 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