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고자 할 때

(<불편하게 사는 게 당연하진 않습니다>, 백순심, 설렘, 2023)

“세상이 살기 편리해질수록 장애인의 고립은 심화하는 것 같다. 장애가 있어서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발달하는 기술로 인해 더 고립되는 느낌이다. 약자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이 어떠한 조건에 의해 배제당하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 주체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42)

  타자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한 모르는 일이다. 선험적인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증언’이라는 문학이 중요한 연유다. 당사자의 증언은 경청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야만의 역사는 반복된다. 책임감을 뜻하는 단어의 어원은 ‘응답response’과 ‘능력ability’이라 하더라. 누군가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것, 이 덕목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없다.

  뇌병변장애인이자 사회복지사인 백순심은 <불편하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에 이어 <불편하게 사는 게 당연하진 않습니다>를 출간했다. 서명에서 미세한 차이를 엿볼 수 있듯, <불편하게 사는 게 당연하진 않습니다>는 보다 공적인 부분, 시민으로서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에 방점을 찍으며,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다. 비장애인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아니 상상하지 않았을 이야기들이었기에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간접 차별이란, 형식상으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하지는 않으나 장애를 고려하지 않는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장애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말한다.”(51-2)

  키오스크에 대한 지적은 흔했다. 베리어프리나 유니버셜디자인도 평소 눈여겨보곤 했다. 그런데 대한민국 장애인이 국내든 해외든 여행경험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관광지가 대체로 신체가 건강한 사람의 기준으로 설계된 까닭일 터. 그뿐만이 아니다. 손이 떨리는 장애인에게 투표칸은 너무 비좁았다. 도우미에게 대신 부탁하기엔 비밀투표권리가 박탈되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면서, 특정 시민들의 선거권을 부정하는 형국이었다.

“선거 공보와 그림 투표용지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낯선 환경으로 인한 불안감을 줄이고 투표 과정에 불편함이 없도록 장애 당사자가 투표사무보조원을 지정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실행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다양한 기표 용구를 마련해 장애 당사자가 스스로 투표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가는 데도 힘써야 한다.”(37)

  혹여 소수자라는 이유로 타자화하고 그들을 희생시키는 방식을 고수한다면 인류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뇌병변장애인이라서 피아노를 배울 수 없는 게 아니었다.(65) 세부에서 어떤 관광주는 시각장애인이라서 고래상어를 보지 못하는 관광객에게 촉감을 통해 고래상어를 경험할 수 있게 안내했다.(102) 시혜나 적선이 답이 아니다. 응답하고자 할 때, 이것이 답이다.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