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하다>, 김아타 사진·글, 맥스미디어, 2022)

 죽을 때를 알고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요? 아쉬움과 억울함일까요? 아니면 만족감과 후련함일까요?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면 아쉬울 것이 없겠지만 사람의 욕심은 채우면 채울수록 오히려 더 커져만 가니 죽음이 반가울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죽을 때를 안다면 스스로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아쉬움과 슬픔은 좀 줄어들지 않을까요?

 사진작가 김아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꼽히는 이어령 선생(작가의 표현)과의 마지막 대화를 글과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김아타는 자연이 수 놓을 수 있도록 땅속, 바닷속, 자연하는 여러 곳에 캔버스를 세우고, 그것을 <자연하다>라고 이름했습니다. 하지만 김아타의 작품은 미술사를 테러한다고 해서 한국 미술판에서 영원히 추방하겠다는 경고를 받아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김아타가 힘든 시간을 보고 있을 때 이어령 선생을 만나게 됩니다. 한국 미술계는 김아타를 천덕꾸러기로 여겼지만, 이어령 선생은 김아타의 작품을 보고 “눈물이 난다. 이타 선생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계시다.”라는 최고의 평을 해 주었습니다. 필요한 것이 없는 세상은 결국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해서 자연이 작품을 만들게 한 김아타는 열어놓음으로써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창조적 인간인 이어령 선생을 만났습니다. 그 만남은 추운 겨울만 같았던 김아타에게 따스한 봄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두 사람의 연은 7년 동안 이어졌고, 이어령 선생과 김아타가 주고받은 편지에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김아타는 이어령 선생을 생각하면서 여주에 작은 공간이지만, 자존감은 충만한 신학과 미학과 철학이 함께하는 사유와 성찰의 공간인 <아르테논> 만들고 초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거대한 벽이 가로막아 그 일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김아타는 이어령 선생에게서 “내 마지막 모습을 찍으세요.”라는 마음 한편은 무겁지만 기쁜 말을 듣게 됩니다. 김아타는 자신의 마지막 예술의 혼을 함께해 주신 고마움을 담아 이어령 선생의 초상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을 ‘얼굴하다’로 이름했습니다. 김아타는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포즈나 일체의 움직임을 배제한 채 오직 대상의 내면세계를 우선하는 Contemporary Photography로, 사진이지만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어서 만들어낸다는 뜻으로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이름합니다.

 열심을 냈지만, 인정받기는커녕 위협당하는 넘어서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며 허덕이고 있을 때, 자신의 열심을 가장 큰 칭찬으로 인정해 주는 존재를 만나게 되면 얼마나 기쁠까요? 김아타는 이어령 선생을 만났을 때 그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어령하다’를 존재하게 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계속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존재하도록 말이죠.

 어김없이 2024년에도 우리에게 다가온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죽을 때를 알고 그 죽음의 목적을 아신 예수님,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존중해 주시며 그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예수님, 예수님의 죽음은 명사인 ‘끝’이 아니고 동사인 ‘다시 시작하다’입니다. 죽음으로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셔서 다시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는 명사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믿고 맡겨 주신 일에 열심을 내는 동사로 살아가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사순절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오충환 목사(꿈이있는미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