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한국어>, 문지혁, 민음사)

이 책 되게 재미있어요. 한 번 읽어보세요. 

일단 <중급 한국어>라는 제목이 재미있잖아요. 흥미를 불러일으키죠. 저만 그런가요? 이 책을 처음 발견했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해요. 인천의 작은 서점을 방문했을 때였는데, 오랜만에 소설을 읽고 싶어서 한국소설 코너를 기웃댔죠. 그러다 <중급 한국어>라고 적힌 책을 발견했어요. 어느 대학이나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언어 교육 프로그램에 붙을만한 이름이잖아요. 그런 제목을 달고 소설 코너에 꽂혀있는 것에 마음이 쓰였는지, 저도 모르게 책을 꺼내 들었죠. 

한국어에 대한 이야기인가?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나? 그런데 왜 하필 ‘중급’이지? ‘초급’도 있고 ‘고급’도 있나?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책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계산대에 있던 서점 주인이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 책 재미있어요.”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어요. “제가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재미있었어요. 추천합니다. 아…그리고, 같은 작가의 <초급 한국어>라는 책도 있어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추천사도 아니고, 마침 그 책을 꺼내든 나에게 하는 말이었죠.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재미있었다니, 그 말을 듣기 전에도 흥미가 돋긴 했지만 이렇게 강력한 추천의 말을 들은 이상 책을 제자리에 돌려놓기가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초급 한국어>도 있다지 않아요. 이런 제목으로 연달아 작품을 낸 작가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어요. 흥미와 호기심이 생겼으니 읽어야죠. 순서대로 초급부터 읽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먼저 내 손에 닿은 <중급 한국어>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니, 서점 주인이 그렇게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습니다. 보통 책이란 읽는 사람의 취향이 제각각이어서, 나에게 좋았던 책이라고 해도 다른 이에게 강하게 권하기는 어려운 법이잖아요. 하지만 서점 주인은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과 문장을 찾아다니는 사람이라면 <중급 한국어>의 내용에 틀림없이 공감하리라는 것을요. 

이 소설은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 ‘지혁’은 소설을 쓰는 작가이자 어느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시간강사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미국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며 작가 지망생으로 살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초급 한국어>에 담겨있다고 하네요.)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던 <초급 한국어>와 달리, <중급 한국어>에서 지혁은 한국 대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칩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나도 그 강의실에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내가 가진 언어를 사용하여 어떻게 문장을 만들어내고, 글을 지어내고, 삶을 담아낼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장은 쉽게 쓰이기도 하지만 어떤 글은 시작부터 애먹기도 합니다. 감정을 적확하게 그려낼 어휘를 찾지 못해 곤경에 빠지기도 하고요.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발견하고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지만, 내 삶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반경 안에서만 표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죠. ‘초급’ 딱지는 일치감치 뗀, ‘한국어 중급자’들의 고민인 것이죠.

주인공 지혁은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이자 동시에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와 같은 ‘중급자’라는 것입니다. 선생인 동시에 학생인 셈입니다. 그래서 소설은 지혁이 준비한 글쓰기 강의의 내용과 그 자신의 삶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됩니다. 글과 문장, 그리고 삶을 앞에 두고 분투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독자는 이야기에 빠져들고 공감하고 위로받고, 삶을 다시 마주할 힘을 얻게 됩니다. 이 책을 추천한 서점 주인이 내게 전해주고자 한 것이 바로 이것이겠지요. 저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서둘러 전하고 싶습니다. 이 책 되게 재미있어요. 꼭 한 번 읽어보세요.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글쓰기도 결국은 반복입니다. 반복에서 중요한 것은 되풀이 그 자체예요. 때로 우리는 희망에 도취해 반복을 벗어나거나, 절망에 빠져 되풀이를 그만두곤 합니다. (중략) 그러니 희망을 붙들지 말고 절망에 물들지 마세요. 그냥 하는 겁니다. 우리가 그냥 살 듯이. - 1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