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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단상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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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2월 20일 (화) 05:50:35 [조회수 : 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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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문에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이 신체 변화다. 오십, 그리고 코로나 시작일 때 갱년기를 맞았다. 걷잡을 수 없는, 내 청소년기를 돌아봤을 때 사춘기가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고 보는데, 갱년기는 달랐다. 이때 몸무게가 거의 10킬로 정도 늘었다. 처음에는 농사일이 거의 8시경에 마쳐 들어와 먹는 저녁 식사 습관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별의별 방법으로 식사 조절과 혹독(?)한 다이어트를 작심삼일 간격으로 하였는데 끝내 성공을 이뤄내지 못했다. 이때 우울한 심정이 훅 들이쳤다. 그중에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옷이었다. 맞는 옷이 없었다. 44와 55를 번갈아 입었던 나였다. 하지만 갑자기 늘어난 체중은 내 생애 처음으로 66조차 버겁게 느끼도록 했다. 외모에 각별한 지인이 나의 뒤태를 보고 알아차렸다. 황 목사, 어째 몸이 많이 부은거 같아? 살쪘다는 표현을 에둘러서 한 것이다. 남이 알아볼 정도니 아차! 싶었다. 

별의별 노력을 하였지만 성과는 없었다. 결국 불어난 몸을 은연중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옷이야 좀 큰 것으로 입으면 된다고 위안했다. 심한 갱년기 터널에 들어서고 이렇게 저렇게 적응해가면서 근 4년째가 되어가니 몸무게가 다시 옛 영화를 찾은 듯 싶었는데, 이상하다. 몸무게는 갱년기 전 무게로 돌아갔는데 몸에 붙은 군살 특히 사람의 몸 중간지대인 앞뒤 옆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열심히 땀 흘리며 농삿일을 하고, 세 끼 중 한두 끼는 설렁설렁 넘기고, 악소리 나도록 스트레칭을 해도, 몸은 자연스럽게 중년의 아주머니로 전이되고 있었다. 30대 중반, 마트에 가서 처음으로 아줌마라고 들었을 때의 그 기분은 정말 상대를 쏘아붙이고 싶을 정도로 노여움이 가득했었다. 그러나 50대에 들어서며 아줌마 소리를 무진장 들어도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여유가 내 몸 중간지대에 붙은 살만큼 넉넉해졌다. 

몸무게가 느는 것은 그렇다치고, 몸이 점점 아프기 시작하였다. 나이가 들면 느는 것이 밥보다 약 먹는 수라고 하는 것처럼 오십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찍부터 안경을 썼지만 시력은 괜찮았다. 엄마가 바느질을 하실 때 옆에서 바늘귀에 실을 꿰어줄 때 엄마는 말씀하셨다. 너도 나이들어 봐라. 그러던 것이 어느새 나도 내 스스로 바늘귀에 실 꿰는 것이 고되었다. 엄마는 딸인 나라도 옆에 있었는데, 혼자인 나는 단추 하나 달 때마다 씨름을 한다. 중년에 도전하려고 작은 재봉틀도 구해놨는데 한번 돌려봤을까? 순식간에 찾아온 노안으로 지금은 창고에서 썩고 있다. 바느질과 뜨개질에 대한 로망이 있던 나에게는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월 훈련원에서 2주 침묵피정이 있었다. 기도하는 자세가 가부좌를 트는 것인데 거의 일주일은 허리 통증으로 가부좌는커녕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어 기도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몸풀이 시간에 몸이 유연하도록 풀어보기도 했지만 작년과 같지 않았다. 이유는 고관절 때문이었다. 흔히 돌아다니는 인터넷 정보에 따른 고관절 통증 증상과 원인이 모두 나에게 적용되었다. 이 또한 오십 이후에 나타나는 신체 노화로 인한 퇴행성 관절염인데 그동안 간과하며 살아온 것이다. 하필 기도하려는 중에 그것도 양반다리 자세로 하였으니 통증이 극대화될 수 밖에 없었다. 의사의 처방은 하나였다. 운동을 하라는 것이다. 요즘은 나름 열심히 스트레칭과 걷기로 몸을 관리하고 있다. 그 덕에 고관절 통증은 완화되었지만 오십 이후의 몸은 언제 어느 때 삐그덕거릴지 모르니 매일매일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병원가는 것을 연기하거나 줄이는 방법일 것이다. 

어디 위에 쓴 것 뿐이랴! 다방면으로 저절로 곡소리가 나오는 때가 지금 이 나이 때인 듯 싶다. 오십은 지천명이라 했다. 오십 전까지는 내 방식대로 이리저리 힘을 발휘하며 살아왔는데 오십 이후는 하늘의 순응을 알아가며 살라는 것이리라. 인생이 내 맘대로 안되는 것이라 수도 없이 말들 하지만 그래도 젊은 날에는 굳이 애써 내 뜻과 계획대로 움직이려 했다. 우리 인생이 평생 그렇게 달려간다면 끝내는 쓰러져서 하늘을 바라볼 때는 죽음 앞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은혜다. 오십에 이르러 달려갈 때와 멈출 때를 알도록 브레이크를 선물로 주셨으니 이모저모 멈추고 돌아보고 살피게 하시지 않은가. 오십에 이르러 비록 몸은 이곳저곳 탈나는 곳이 생길지언정 그 덕에 나를 포함한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갖는다. 그 브레이크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많이 작동된다. 처음에는 억척스러울 정도로 힘을 과시(?)하며 농사를 지었는데 차츰 그런 경향을 내려놓는다. 때는 따르나 무리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최근의 농사짓는 자세다. 몸이 상하면 나만 손해다. 그 손해는 이전처럼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니 걸음걸이를 스스로 조절할 수 밖에 없다. 

입춘, 우수를 맞았다. 봄을 맞이하는 비치고는 지나치다 싶지만 그래도 농사가 시작될 봄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땅이 완전히 풀리면 작년에 거두지 못했던 비닐을 거두고 새로운 씨를 뿌릴 준비를 할 것이다. 엊그제 콩 종자도 주문했다. 집 앞 비닐하우스 안의 돌들도 골라내어 푸성귀를 심을 터를 마련했다. 이렇게 새로운 마음으로 농사 지을 준비를 한다. 12년째 맞는 농사이지만 농사에 있어서만은 여전히 도움이 많이 필요한 어린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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