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카를로 로벨리, 쌤앤파커스, 2013)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 평가받는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다. 그는 양자이론과 중력 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이론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설명한 우주론의 대가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양자역학이 보여준 미시 세계의 모습은 기이하여 난해하고, 수긍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한 입자가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하다니 이게 무슨 두뇌 섭섭한 말씀인가? 중첩, 간섭, 얽힘, 도약 등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에 이런 흉흉한 어조의 단어가 쓰인다는 사실이 못내 불편하다. 그런데 어쩌랴? 세상이 그렇다는데.

저명한 물리학자 머리 겔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양자역학은 우리 가운데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용할 줄은 아는 무척 신비롭고 당혹스러운 학문이다.” 양자 세계의 기괴함 만큼 양자이론은 많은 해석을 몰고 다닌다. 카를로 로벨리는 탄생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리되지 않는 이 문제를 에두르지 않았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양자이론으로 세계를 그려낸 책이다. 그가 말하는 세계는 고정된 속성을 지닌 자립적인 실체, 즉 물질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상호 간의 작용과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한 관계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다.(239)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양자역학의 ‘관계론적 해석’이다.  

저자는 대상의 속성은 그 속성이 발현될 때의 상호작용과 분리할 수 없으며, 나아가 그 속성이 발현되는 상대 대상과도 분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속성은 대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대상 사이에 놓인 다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입자성은 물질과 더불어 양자 현상이 아주 작은 세계에서는 입자적 형태로 나타남을 의미한다. 즉 불연속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세계가 입자와 같은 실체로 이루어졌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242) 저자는 물리적 세계를 확정된 속성을 가진 대상들의 집합으로 보는 대신 관계의 그물망으로 보는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세계가 사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은 낡은 편견이고 더 이상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낡은 수레라고 말한다. 

세계는 확정된 속성을 가진 대상들의 집합이 아닌 관계의 그물망이라는 저자의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저자는 양자이론의 태동과 성장 과정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리고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자연 밖의 것을 끌어오는 것이나 관념론을 비판한다. 정통이라 하는 코펜하겐 해석은 세상에 관하여 자세히 말하지 않지만 카를로 로벨리는 관찰, 확률 입자성의 의미를 관계라는 일관된 관점으로 재해석하며 세상을 설명하였다. 자신의 연구와 공부의 결과에 마주하여 몸부림치는 치열함과 솔직함이 인상적인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철학자들의 생각이나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인 나가르주나의 공(空) 사상에 빗대어 말하기도 한다. 

이게 다 뭐지?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지?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해할 법한 얘기, 여기 이런 얘기도 있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탈레스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가속 상승하는 꼴이랄까?

김국진 목사(산돌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