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경계인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4년 02월 17일 (토) 10:24:54 [조회수 : 1075]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경계인

손원영/서울기독대학교 교수, (사)한국영성예술협회 대표

요즈음 한국사회에 ‘경계인’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 경계인이란 다층적인 의미를 갖는다. 가장 원초적인 경계인은 아마도 인종적인 이주민 경계인일 것이다. 그들은 외국인 관광객이나 최근 급속히 늘어난 외국인 노동자 혹은 외국인 학생들을 의미한다. 최근 한국에는 이러한 인종적인 이주민 경계인으로 차고 넘친다. 이들이 없이는 공장이나 식당도 돌아가지 않는다. 심지어 학교에서는 외국인 학생으로 불리는 경계인들로 정원을 채우고 있고, 교회들도 다인종 목회를 이제 운명처럼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인종적 경계인 못지않은 또 다른 경계인은 다름 아닌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경계인이다. 이들은 일종의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소외된 ‘주변인’(marginal man)으로서, 주류문화에 편입되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도는 소수자들을 의미한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성정체성과 관련하여 한창 논쟁이 되고 있는 LGBTQ를 비롯하여 한국근현대사의 비극과 연루되어 탄생된 중국 조선족을 비롯한 외국동포나 탈북민, 그리고 다종교사회에서 다중종교성으로 고민하는 종교인 등 문화적 종교적 경계인들은 정말로 허다하다. 민주주의의 성숙도는 다수결에서 배제된 경계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배려하며 오히려 그들을 존중하는 것으로 결정된다고 할 때, 우리 사회 및 교회가 가야할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이런 맥락에서 경계인의 문제의식을 가장 심층적으로 성찰한 고전영화 하나를 나누고 싶다. 그것은 1978년 만들어진 프랑스영화 <25시>(앙리 베르누이 감독, 안소니 퀸 주연)이다. 이 영화는 루마니아 태생의 소설가 게오르규(C. Virgil Gheorghiu)의 소설 <25시>(The 25 Hours)를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루마니아 산골 폰타나의 순박한 농부 요한 모리츠는 아내 수잔나의 미모를 탐낸 경찰서장의 모략으로 유대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으로 거짓보고 되어 유대인 강제수용소로 이송된다. 그리고 그는 장장 8년 동안 적어도 다섯 차례의 격동을 겪으면서 파란만장한 ‘경계인’의 삶을 산다.

첫 번째 경계인의 삶은 유대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으로 체포되어 유대인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을 하며 지내다가, 급기야는 몇몇 유대인들과 함께 헝가리로 탈출한다. 두 번째 경계인의 삶은 헝가리에서의 삶이다. 그는 거기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유를 얻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소련의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헝가리인을 대신하여 독일로 이송된 후 강제노역을 한다. 세 번째 경계인의 삶은 가장 역설적이게도 독일인 중의 독일인이 된 것이다. 즉 그는 루마니아인임에도 불구하고 독일 친위대 대령으로부터 아리안족의 순수혈통으로 선발되어 나찌 독일군의 영웅이 된다. 네 번째 경계인의 삶은 1944년 4월 소련의 루마니아 침공 이후 미군의 포로가 된 독일 전범자로서 뉘렌베르크 재판을 받는 운명적 삶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경계인의 삶은 뉘렌베르크 재판에서 검사의 사형구형에도 불구하고 부인 수잔나의 편지와 변호인의 감동적인 변호에 힘입어 극적으로 석방되어 자유인이 된다. 그리고 다시 루마니아인으로서 가족과 재회한다.

그런데 영화는 아내 수잔나 역시 남편에 못지않은 경계인의 삶을 살았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남편 요한 모리츠와 강제로 헤어진 뒤, 폰타나 경찰서장의 모략으로 이혼서에 서명을 해야 했다. 그리고 소련군의 침공 시에는 소련군의 성폭력으로 임신되어 세 번째 아들 마르크를 얻었다. 경계인이 겪는 모진 질고의 삶이다. 결국 영화는 전쟁의 격동 속에서 루마니아인이었으나 유대인으로, 소련인으로, 헝가리아인으로, 급기야는 독일인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한 경계인의 비극을 잘 보여준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큰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경계인 남편과 아내가 재회하는 장면이다. 그 때 요한은 아내와 자신의 두 아들과 반갑게 재회의 인사를 나누면서도 동시에 소련군의 성폭력으로 낳은 아내의 세 번째 아이를 자신의 품에 안아주면서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영화는 끝나지만, 영화는 요한이 셋째 아이 마르크를 가슴에 품듯이 우리도 경계인을 그렇게 품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은연 중 역설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이 영화가 제2차 세계대전과 동서냉전의 비극을 다룬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종적 경계인, 아니 더 나아가 문화적 종교적 경계인을 우리가 진지하게 다시 보도록 촉구하는 영화임이 자명하다.

사실 우리가 ‘경계인’의 시각으로 성서를 보면 성서의 이야기 거의 모두가 경계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도 철저한 이주민 경계인이었다. 그리고 모세는 또 어떤가? 그 뿐만 아니라 다윗의 가문을 탄생시킨 룻도 그렇고, 다니엘의 용맹담도 그 경계인을 배경으로 한다. 게다가 예수는 경계인 중의 가장 비극적인 경계인이었다. 그는 갈릴리 주변인으로 태어나서 영아살해의 위험을 피해 이집트로 이주하였고, 귀국한 후에는 도피자처럼 갈릴리에서 숨어 지내야했다. 하지만 주변인을 옹호하는 하나님의 나라 사상을 펼치다가 외로운 주변인으로서 십자가의 형틀에서 삶을 마감하였다. 바울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당시 유대교에 저항하는 주변인인 그리스도인이 된 후, 로마에서 주변인 그리스도를 옹호하다가 결국에는 권력자들에게 희생되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일까 자문하게 된다. 그는 다름 아니라 경계인의 의식을 갖고 경계인의 자부심으로 경계인을 돌보며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5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