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아시아 여성, 두 번째 이야기, 

 아시아 여성, “우리는 다르다.”

70년대가 페미니즘의 르네상스라면 90년대는 페미니즘의 혼란기였다. 흑인 여성들은 백인 페미니스트들이 흑인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하는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했다. 학문의 권위에 눌리지 않은 흑인 페미니스트의 등장은 아시아 여성들, 제 3세계 여성들, 이슬람 여성들, 장애 여성들, 레즈비언 여성들도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하였다. 그들은 주장했다. “우리들은 다르다” 

▲ 흑인 여성의 등장

다른 목소리를 어떻게 수용하는가는 페미니즘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이슈였다. 페미니즘은 결국 분열로 끝나버릴 거라는 비판 속이 있었고 여성들의 연대는 소리만 요란했지 불가능할거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기에 페미니즘은 빛을 발하며 차이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다른 목소리는 정치적 소수자들의 목소리이며, 그들의 목소리는 페미니즘의 관점을 넓혀 문제해결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도나 하러웨이(Dona Haraway)는 노동자, 유색인종, 여성 등 다중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사이보그라고 불러 새로운 여성 이해를 요청했다. 침묵 되었던 소리를 듣기 위해 페미니스트 방법론이 발전하였다. 특히 흑인 페미니스트 법학자 킴벌리 크렌쇼( Kimberly Crenshaw)는 ‘여성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들이 성차별 뿐 아니라 인종차별 계급차별 등을 동시에 겪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차이를 막연하게 개인적, 지역적, 문화적 차이라고 하지 않고 분석 가능한 정치적 메커니즘으로 설명하였다. 

▲ 메리 존, Mary John 인도 여성발전 연구소 위원 (Centre for Women's Developement Studies, New Delhi, Women's Studies, Faculty Member

인도 페미니스트 메리 존(Mary John)은 가정폭력으로 쉼터에 온 인도 여성들은 서구 여성들과 달리 이혼하기보다 남편이 변해서 함께 살기를 원한다는 것을 밝혔다. 그들이 무지하고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계급차별로 경제적 기반이 없을 때 차라리 남편과 사는 것이 생존을 위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시아 페미니즘에서 교차성 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민족주의는 오랫동안 페미니즘에서 비판받은 개념이다. 여성을 시민으로 대하지 않았고 정치적 힘도 나누지 않았으며 단지 아이를 낳는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민지를 겪었던 아시아 여성들은 제국주의자들의 폭력을 겪으며 여성인권을 지키기 위해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을 분리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아시아 여성들에게 민족주의가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또한, 제국주의자에게 함께 고통당하는 남성파트너를 적대적으로 대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APWLD에 참여하는 6개국 7단체의 여성운동가들은 다양한 억압시스템을 교차적으로 겪으며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연대는 공통된 경험이 아니라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가능하다. 우리는 함께 서로의 다른 경험에 귀 기울이며 공감과 이해의 연대를 확장하고 있었다. 

스텝핑게임(stepping game)

▲ “만약 당신의 부모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밤에 일한다면 한발 뒤로 물러나라” 아틀란타 저널 위원회에서 특권 관련 스텝핑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 What is privilege 유트브 캡션

“서로의 차이에 어떻게 귀 기울일 수 있을까?” APWLD의 훈련을 진행하던 버니(Vernie)는 스텝핑 게임을 소개했다. 우리에겐 특권게임이라고 알려진 것이기도 하다. 참가자들은 같은 출발점에 서있다가 진행자의 질문에 해당하면 앞으로 한스텝 나아가고, 그렇지 못하면 한스텝 뒤로 물러나는 게임이다. “당신은 안전하게 쉴 집이 있는가?” “ 당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다 했나?” “ 종교 때문에 차별당하지 않았나?” “ 당신의 섹슈얼리티로 차별당하지 않았나?” 등등 

한국 참여자 송미령 국장이 가장 앞으로 나가 있었다. “난 한국에 살면서 한 번도 내가 특권을 가졌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곳에서 많은 특권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뒤에 처져 있는 사람은 자신이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다. 스텝핑 게임은 우리가 성차별 뿐 아니라 계급, 종교차별, 섹슈얼리티 차별 등 다양한 억압 아래 있기에 같은 아시아 여성이지만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환기했다. 여성의 문제를 바라볼 때 가부장제 뿐 아니라 다양한 억압시스템의 작동을 살펴보고 그것들의 영향력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 여성노동자를 억압하는 4가지 시스템

▲ 2013년 방글라데시, 다카의 라나플라자 의류 공장 붕괴 사건으로 1129명이 사망. 아시아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실태를 보여준 사건이다.

차이의 철학자 아이리스 영은 정치적 소수자들이 겪는 억압의 형태를 착취, 주변화, 무력화, 폭력, 문화제국주의 라고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많은 아시아 여성노동자들은 노동현장에서 저임금으로 착취당하고, 경제적으로 무력하며, 자기 결정권이 없고, 성폭력이 난무하고, 멸시받으며 그들의 문화가 평가절하되는 경험을 한다. APWLD는 그 원인과 메커니즘을 밝혀내기 위해 묻는다. 이들의 억압을 지속시키는 시스템은 무엇인가? 

억압시스템은 성차별 나이차별, 인종차별, 학벌차별  등등 수없이 다양하다. 그러나 APWLD는 지난 40여년의 연구축적을 통해서 아시아 여성들을 억압하는 시스템을 세계화, 근본주의, 군국주의, 가부장제( Globalization, Fundamentalism, Militalism, and Patriarchy, 이하 GFMP)인 4가지로 보았다. 인종주의와 가부장제가 교차하여 흑인 여성들이 더 억압받은 것처럼, 각 지역에 흩어진 아시아 여성들은 GFMP의 다양한 배열과 교차속에서 다양한 착취와 억압을 겪어왔다는 것이다. 특히 그 뿌리에 가부장제가 있고 그것이 세계화와 만나고, 근본주의와 만나고 군국주의와 만날 때 여성들에 대한 폭력과 착취가 더 심해진다.

앞으로 아시아 여성노동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어떻게 세계화, 근본주의 군국주의 작동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 글의 최종 목적지는 그것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어떤 변화 전략이 필요한가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