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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하늘을 본다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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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2월 10일 (토) 23:42:36 [조회수 : 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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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을 앞두고 걷기도에 나섰다. 16년째 이어온 것을 마냥 미룰 수는 없었다. 해마다 성탄절을 전후로 행하는 나만의 리츄얼(Ritual)인데, 지난 연말에는 예상되는 장례를 대기해야 하였다. 독일에 있는 유일한 딸이 어머니를 배웅할 수 없는 형편에 있었다. 어쩌다 예정을 훌쩍 넘겨 정초에야 장례식을 치루었다. 100년 동안 이 땅에 주소를 두었는데, 겨우 배웅하는 날짜 몇 날을 예측하는 것은 얼마나 얕은 생각이었을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이니만큼, 음력으로라도 지킬 수 있어 다행한 일이다. 입춘이 지나니, 짧은 한 달일망정 지구의 대기가 한층 따듯해졌다. 문경에서 상주를 향해 걷는 길에 아득한 설산(雪山)을 보는 일이 낯설었다. 길 오른편으로 멀리 보이는 이마가 흰 그 산은 아마 속리산으로 추정된다. 겨울비 틈으로 희끗거리는 백발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충청도 보은 하늘 아래일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경상북도를 걸었다. 팥시루떡처럼 넓은 땅이어서 골골마다 같은 인심일 리 없다. 다만 낙동강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제법 도시와 도시로 연결되어 걷기가 수월하였다. 적어도 제 때에 맞춰 점심을 먹었고, 땅거미가 내리기 전에 모텔을 찾았다. 의외로 거리에 사람이 드물었다. 인적이 없는 마을을 지나면서 사람을 궁금해 하였다. 어쩌다 마주하는 어르신을 향해 두 손을 흔들며 인사한 것은 사람이 반가워서였다.

  올해는 조금 변화를 주었다. 그동안 한 길을 쭉~ 이어서 걸었다면, 올해는 두 번 건너뛰었다. 문경-상주를 걷고 나서 저녁 무렵 상주터미날에서 구미까지 버스로 이동하였다. 이튿날에는 구미에서 왜관까지 걸은 후, 왜관에서 저녁을 먹고 동대구까지 무궁화호를 탔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경산 하양까지 걸었다. 걷기도가 극기(克己)도는 아니라면서, 변화의 재미를 주었다. 낙동강과 금호강을 차례로 건넜더니 경상북도가 한층 시야에 들어왔다.

  첫날 상주로 가던 길이다. 시골 동네 초입의 카페에 들러 늦은 커피를 마셨다. 이름이 아스만인데, 카페를 나설 때까지 그 뜻을 알지 못했다. 놀랍게도 자리마다 손님이 가득 차 있었는데, 거리에서 사람을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농한기였다. 귓등으로 곧 있을 선거 이야기가 들렸다. 여주인은 주문에 한 마디 응대 없이 고개만 끄덕거린다. 도시와 시골의 사람 사는 풍경이 조금씩 비슷해져 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카페를 나서면서 아스만이란 이름의 뜻을 알았다. 키르키즈스탄 말로 하늘이었다. 아마 여주인 이야기인 듯, 밖에 붙어 있는 작은 배너에 사연을 적었다. 키르키즈스탄에서 시집온 여성은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말 상대가 없었다. 우리 말을 모르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럴수록 친정이 그리웠단다.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보았는데 한국의 하늘과 키르키즈스탄의 하늘이 너무 똑같아서 놀랐다고 한다. 이후로 친정이 그리울 때면 하늘을 쳐다보았다. 겨우 1초면 그리운 사람들을 볼 수 있노라고 적었다. 이 땅으로 시집온 이들에게 설날이 필요하구나. 그들에게도 친정이 있었다.   
   
  걷기도는 걸으면서 기도만 하지 않는다. 고행을 자처하며 무리하지도 않는다. 초행길 몇 년 동안은 그런 미숙함을 반복하였다. 길 위에서 길을 찾고, 길을 잃고, 또 머뭇거린다. 그러는 도상(途上)에서 묵상하고, 생각하고, 간구하고, 또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노래하고, 마침내 외친다. 홀로 걷기에, 사람이 없기에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일도 가능하다. 얼마 동안 내 안에 가두어 둔 아우성일 것이다.

  스위스 쮜리히를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다. 그곳 한인교회 교인들은 걷는 데 익숙해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를 몇 번씩 다녀온 이들도 있다. 산티아고 순례는 프랑스 피레네 산맥 국경을 넘는 생장 페이드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델라까지 800km 코스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어떤 유럽사람들은 자기 집앞에서 부터 걷는다고 한다. 목적지는 같지만 출발점은 저마다 다른 셈이다. 스위스는 물론 독일 복흠이나 네덜란드 로테르담 순례자들은 내 집 앞에서 시작한다. 

  산티아고 순례나, 제주 올레길만 길이 아니다. 집만 나서면 길은 어디로나 열려있다. 순례는 자신 안의 경계를 넘고, 자기 밖의 한계를 넘는 일이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억지를 부릴 필요도 있다. 어언 스무 해가 다가오지만 오히려 길 나서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래도 용기 낼 마음을 먹는 것은 아내의 밀어내기 덕분이다. 
  “가슴 떨릴 때에 떠나라. 무릎 떨릴 때는 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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