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식공작소, 1995)

글의 출처는 글을 지은 사람이다. 글 읽기는 결국 지은이 읽기로 들어간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다르다. 그가 쓴 수 많은 글들은 슈테판 츠바이크에게 회귀하지 않는다. 글을 쓰게 한 역사로 들어가게 한다. 

1881년 1월 28일. 도스토예프스키가 눈을 감았다. 정확히 10개월 뒤인 11월 28일. 합스부르크 제국의 빈에서 슈테판 츠바이크가 태어났다. 빈은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과 함께 유럽 문명의 중심지였다. 그곳은 주류 문명과 비주류 문명들이 충돌하고 화해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곳이었다. 그는 빈에서 지성과 자유의 세례를 받았다. 빈 대학에서 철학 박사를 받고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유랑한 전형적인 코스모폴리탄이다. 

그의 아버지는 직물 공장 대표였고 어머니는 유대계 은행 가문 출신이었다. 유대계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그는 출생이라는 사건을 통해 우연히 유대인이 되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그의 내면에는 코스모폴리탄과 히틀러 치하의 망명객 사이에 서 있는 불안한 영혼이 자리 잡고 있다. 지성도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 19세기와 20세기의 틈바구니에서 그는 한 세기라고 하는 운명의 서사를 살고 있었다.

우리도 20세기와 21세기의 틈바구니에서 한 세기를 살고 있다. 어떠한 서사와 연대기가 각자의 삶으로 들어오고 또 흘러가고 있을까. 

한글로 번역되어 출간된 책들이 다수 있다. 익히 알려진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비롯해서 <발자크 평전>과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등이다. 

<어제의 세계>를 굳이 치켜올리는 것은, 그가 만난 136명의 거인들을 만날 수 있어서다. 그 한 세기의 구석구석을 찾아가고 만나고 대화를 나눈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은 역사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길과 지팡이가 되어 준다. 오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가깝고 먼 미래의 누군가에게 길과 지팡이가 될 수 있기를 다짐할 수 있다면 500쪽이 넘는 이 책을 펼치는 기쁨을 만족스럽게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한 세기가 열리는 기쁨이다. 

참고로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은 그가 만난 사람들 몇 명의 이름을 올려본다. 오귀스트 로댕.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막심 고리키. 지그문트 프로이트. 

유성원 목사 (서초 주님의 몸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