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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창세기 2장 1절~3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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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2월 02일 (금) 20:27:58
최종편집 : 2024년 02월 02일 (금) 20:29:25 [조회수 :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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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창세기 2장 1절~3절

 

 

1. 첫째 날에서 일곱째 날까지

 

① (1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서 여섯째 날까지 천지와 만물을 다 조성하셨다. 첫째 날에서 여섯째 날이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벧후 3:8)’ 하나님의 특별한 시간을 가리키는 카이로스(καιρός)로 해석하듯, 일곱째 날도 하나님의 특별한 기회를 나타내는 카이로스(καιρός)로 해석해야 한다. 여섯째 날에 종결된 창조가 일곱째 날까지 계속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이 하나님의 섭리를 거슬러 자기 맘대로 생태계를 훼손하고 다른 생물들을 노예로 삼고 청지기가 주인 노릇하며 타락했기 때문이다. 1장이 전하는 성경적 세계관을 약술하면 ‘창조, 타락, 구속(구원), 완성’이다. 1장의 첫째 날에서 여섯째 날까지가 ‘창조’라면, 2장의 일곱째 날에 안식은 ‘완성’에 해당된다.

▶ ‘창조와 완성(안식)’은 있는데 ‘타락과 구속(구원)’은 어디에 나오는가? 타락과 구속의 전 과정이 창세기 2장 4절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진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범한 아담이 타락의 예표라면 말씀대로 준행한 노아의 방주는 구속의 예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요셉을 구원의 본보기로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보내셔서 출애굽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셨다. 다윗과 솔로몬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타락과 구원의 모델이다.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셨다. 타락한 세상을 구속하시기 위해 말씀이 육신이 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장차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마침내 구원을 완성하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곱째 날에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시고 안식하셨다”라는 말씀은 창조에서 완성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구절로 해석할 수 있다.

 

② (2절)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 본문은 하나님의 창조가 여섯째 날로 다 끝난 것이 아니라 일곱째 날까지 이어진 후에야 비로소 다 마치게 되었음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안식은 무엇인가? 우리말로 ‘편히 쉬다’는 뜻인데 히브리어로 ‘솨바트(שָׁבַת)’는 피곤으로 쉬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일을 뜻과 계획대로 다 마치고, 완료한 후에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온전한 상태를 뜻한다. 안식은 한마디로 ‘완성’이다.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뜻은 창조의 전 과정을 마침내 완성하실 것을 예표(豫表)하는 말씀이다. 창세기 1장 전체는 창세기를 비롯한 모든 성경 말씀이 구속사의 완성으로 완결될 것을 예고하며 하나님의 구원드라마를 한 눈에 보여주는 ‘인트로(intro, 서막)’와 같다. (인트로는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주제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거나,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본문은 성경이 전하는 구속사의 전 과정을 한 줄로 요약하는 말씀으로 읽는 편이 더 타당하다.

▶ 이러한 파격적인 해석의 근거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 5:16~17)”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문자적으로 준수하며 일하지 않고 쉬는데 급급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신앙인들이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시는 일에 무관심한 채 유대인들처럼 일곱째 날을 과거에 완료된 것으로 여기며 맹목적인 해석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일곱째 날이 전하는 안식일의 정신을 재해석하심으로 안식일에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행하셨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안식하심으로 쉬고 계신 것이 아니라 오늘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시는 일을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고 행하고 계신다. 안식일의 정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펼치는 날이다. 안식일의 정신은 하나님의 복을 널리 전파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하기 위해 힘쓰는 날이다. 안식일의 정신은 세상에 속한 헛된 일을 멈추고 오직 경외와 준행, 동행과 축복을 추구하며 거룩하게 변화되는 삶으로 나가는 날이다.

 

③ (3절)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는 ‘복 주시고’ 둘째는 ‘거룩하게’하신다. 성경의 핵심 주제는 ‘축복과 거룩’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복 주심과 하나님이 거룩하시게 하심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창세기 2장 4절 이후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일곱째 날에 복을 주사 거룩하게 하시는 전 과정으로 읽어야 마땅하다. 본문은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는 쉼이 아니라 지금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시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본문이 전하는 메시지는 지금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시며 마침내 창조의 완성인 안식으로 인도하시는 구속사의 완결이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히 4:9~11)” 본문이 예고하는 구원의 완성, 즉 안식을 가리켜 요한계시록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하나님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시는 일곱째 날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2.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무엇인가?

 

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무엇인지 신명기 10장 13절이 분명하게 전한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최종 목적은 ‘오늘 우리의 행복’이다. 안식일이 하나님을 위한 날이 아니라 쉴 새 없이 노예처럼 일하는 사람(人子)를 위한 날인 것처럼,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창세기의 핵심 메시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하나님의 창조하신 사람이 어떻게 하면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지를 증언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 66권을 관통하는 주제도 행복이다. 어떻게 하면 오늘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진정한 행복으로 나가는 길을 제시한다.

 

② 신명기 10장 12절은 행복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증언한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지난 20년간 신구약 66권을 한 구절도 빠짐없이 강독하면서 발견한 소중한 메시지가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말씀대로 준행하고, 말씀대로 준행하면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마침내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경외, 준행, 동행, 축복)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12:1).” 이 축복은 다산 정약용이 말한 화려한 열복이나 소박한 청복과 같은 세상이 주는 ‘행복(幸福)’과 다르다. 말씀대로 준행하는 ‘행복(行福)’이다.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의 가장 큰 축복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삶에서 맺는 것이다. 무엇보다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은 비가 오고 창수가 나는 날에도 반석 위에 지은 집처럼 흔들리지 않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

 

③ 신명기 10장 14절은 말씀대로 준행하는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증언한다.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세상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 속한 것, 하나님의 소유다. 생명과 건강, 물질과 자녀도 하나님의 것이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은혜다. 행복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는 삶에서 시작된다. 신명기 10장 15절은 참된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더 구체적으로 전한다.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경외, 준행, 동행, 축복’의 본보기로 삼으시고 그 후손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의 본보기로 선택하셨다. 모세를 통해 이 축복을 약속하셨고 다윗에게 이 축복을 주셨다. 이 축복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세상 모든 민족에게까지 확장되었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에게 동일한 축복을 약속하셨다. ‘너희를 만민 중에 택하셨음’이라는 말은 청지기로 택하셨다는 뜻이다. 성경이 전하는 행복의 길은 하나님이 택하신 청지기로 사는 삶이다. 오경의 마지막 책인 신명기가 전하는 복은 오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가 전하는 복과 일맥상통한다.

 

 

3. 거룩하게 하셨으니

 

①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거룩하게’ 하셨다. 신명기 8장 2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이스라엘 민족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택하신 길은 사십년 동안 광야를 걷게 하셨다. 인생의 광야에서 우리의 본심이 드러난다. 광야를 통과할 때 무엇을 의지하는지 신뢰하는지 낱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이 의뢰하고 신뢰하는 대상을 찾기 때문이다.

 

② 신명기 8장 3절~4절은 광야를 통해 어떻게 거룩하게 하시는지 전한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돈이나 기술, 명예나 권력이 아무 쓸모가 없다. 광야에서 낮아지고 겸손해진다.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사십년 동안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고살았다. 만나라는 단어의 뜻은 ‘이게 뭐지?’다. 만나는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만나는 하늘양식,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광야에서 만나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시고 입히시고 인도하심을 깨닫게 하셨다. 광야의 고난이 주는 유익이 있다. 먹고 마시고 숨 쉬고 잠자고 일하는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행복의 비결은 풍요가 아니라 결핍이고, 형통이 아니라 고난이다.

 

③ 신명기 8장5절~6절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시는 방법을 더 분명하게 전한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방법은 징계다.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삼하 7:14)’을 통해 바른 길로 인도하신다.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로 인도하시고,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지게 하시고 이스라엘 나라를 멸망시켜서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신 까닭이다.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회개를 통해 ‘거룩하게’ 회복하시기 위함이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히 12:6~10)”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 거룩하게 하신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67,71)”

④ 지금 광야 같은 인생과 삶의 고난을 통과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일곱째 날을 살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의 주인공들도 예외 없이 일곱째 날을 살아냈다.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요셉은 예외 없이 광야 같은 고난의 길을 걸었다.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도 사십 년 광야의 고난을 통과했다. 다윗도 광야의 사람이었고 예수님도 광야의 시험을 받으셨다. 사도바울도 광야 같은 인생에서 극심한 박해를 당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11~13)” 광야와 고난이 우리를 ‘경외와 준행, 동행과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거룩한 여정이다.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과정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켜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셔서 마침내 안식으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무심코 넘길 대목이 아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날들이 하나님이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시는 일곱째 날이라는 통찰로, 보석같이 아로새겨야 할 소중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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