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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당김의 법칙쁘리야 5
이강무  |  lkmlh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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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2월 01일 (목) 07:05:56
최종편집 : 2024년 02월 01일 (목) 07:12:50 [조회수 :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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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 쁘리야가 돌보는 동생들

     “우리는 모두 무한하고 유일한 힘에 따라 움직인다. 모두 정확히 똑같은 우주 법칙들을 따라간다. 우주에 흐르는 자연법칙은 매우 정확해서 우리가 우주선을 제작하고, 사람을 달에 보내고, 우주선이 착륙할 시간을 극히 섬세하게 예측할 때, 법칙이 맞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그곳이 인도든, 호주든, 뉴질랜드든, 스톡홀름이든, 런던이든, 토론토든, 몬트리올이든, 뉴욕이든, 우리는 모두 동일한 힘에 따라 움직인다. 그 힘은 법칙이고, 그것은 바로 끌어당김의 법칙(low of attraction)이다.” -밥 프록터(철학자, 저술가)

 

     쁘리야를 처음 만나고 온 후부터 어렵게 동생들을 돌보며 사는 그 아이를 돕고 싶은 마음이 마음속에 불일 듯 일어났다. 내 힘으론 방도가 없어 기도만 하였다. 그리고 저리곳을 떠나기 전에 비말씨에게도 쁘리야를 계속 돕고 싶다고 이야기하였고 카투만두에 와서는 알차나 자매에게 “하나님이 이번엔 쁘리야를 나에게 소개하셨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이번엔 후원자들에게 나의 사역보고를 서면으로 하는 대신 매일 일어난 일의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로 날렸다. 나의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고 후원해 주시는 분들을 위해 감사하는 마음과 보고하는 마음으로 매일 동영상을 올린 것이다. 그러던 중 후원자는 아니지만 나의 동영상을 시청하던 분 중의 한 분이 쁘리야네 가정의 어렵게 사는 모습을 보고 불쌍한 마음이 생긴 모양이다. 그분은 실은 나와 고등학교 동창으로 2년 전에 고교 졸업 후 50여 년 만에 처음 만난 친구이다. 그 친구가 기독교인이라는 말은 들었으나 그 후 만난 적이 없어서 그가 나의 사역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내가 마이나포카리에서 사역을 마치고 카투만두로 복귀하여 알차네 집에 머물고 있을 때 그 친구로부터 갑자기 카톡 문자를 받았다. 그는 대뜸 쁘리야가 1개월 살려면 생활비가 얼마나 드느냐며 돕고 싶다고 말했다. 2년 전 50년에 만에 만나고 난 후 그동안 대면도 없었던 친구가 그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하였기에 깜짝 놀랐다. 나 혼자만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 친구가 어떻게 나의 마음을 알았단 말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놀랍게도 내가 쁘리야네 집을 방문하고 그 가정을 돕고 싶어 하던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멀리 한국에 있던 그 친구도 같은 마음을 가졌었다.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일치하는 사건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이를 비국소적((non-locality) 사건이라 말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다른 지역에서 동시에 똑같은 내용의 사건이 나타난 현상을 말한다.

 

     “생각은 자기(磁氣) 신호를 전송하여 비슷한 것이 되돌아오게 끌어강긴다.” -조 바이텔리 박사

 

     “지배적인 생각이나 마음가짐은 자석처럼 비슷한 것을 끌어당기는 법이므로, 마음가짐이 어떠하든 그에 어울리는 조건이 삶에 나타날 수밖에 없다.” - 찰스 해낼(1866-1949년)

 

     “생각은 자석이고 생각에는 주파수가 있다. 당신이 생각할 때 그 생각은 우주로 전송되어 같은 주파수에 있는 비슷한 것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전송된 것은 모조리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원점이란 바로 당신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라. 텔레비전 방송국이 특정 주파수를 이용하여 방송 신호를 보내면, 그것이 시청자의 텔레비전에 나타난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 작동 원리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채널마다 주파수가 있고 그 주파수에 채널을 맞추면 화면이 나타난다는 건 이해한다. 채널을 바꾸면서 주파수를 선택하면 그 채널에서 방송되는 내용이 화면에 보인다. 다른 방송하는 것을 보고 싶으면 채널을 바꿔서 다른 주파수에 맞추면 되는 것이다.

     당신은 ‘인간 송신탑’이고, 지상에 세운 어떤 텔레비전 송신탑보다 강력하다. 아니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송신탑이다. 당신이 보내는 전파는 당신의 인생과 이 세상을 만들어 낸다. 당신이 송신하는 주파수는 도시와 국경과 이 세상 너머까지 전달된다. 온 우주에 퍼진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바로 ‘당신의 생각’으로 일어난다!

     당신이 전송한 생각의 결과로 돌아오는 그림은 텔레비전 화면이 아니라 당신의 거실, 인생에 나타난다! 생각이 특정 주파수를 형성하여 그 주파수에 있는 것들을 끌어당기면, 그것들이 삶에서 나타난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생각을 바꿔서 주파수와 채널을 바꿔라.” -론다 번

 

     이런 영적인 사건을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에서는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중첩(superposition)’ 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멀리 떨어져서 서로 만나지도 않던 친구와 내가 똑같은 마음을 동시에 갖게 된 것은 우연한 사건이라기보다는 우주를 이끄는 어느 에너지(기운)의 작용인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쁘리야네 가정의 최소한의 1개월 생활비가 얼마나 들지 현지인 알차나에게 물어보니 그가 자세히 셈을 해 본다. 그러더니 동생 세 명과 학교 다니며 드는 학용품과 용돈을 합하여 약 12만 원 정도면 된단다. 산골이라서 웬만한 식재료는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으므로 그 정도면 최소한의 생활은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후원자가 부담을 느낄지 몰라 최소한의 생활비를 뽑아보라 하여 나온 계산이다. 이곳은 공산품과 생필품이 비싸서 이 금액으로 보통 가정에서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턱도 없는 금액이지만 산골에서 자급자족하며 사는 쁘리야는 그 정도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친구에게 그 내용을 그대로 자세히 카톡으로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친구가 ‘쁘리야 돕기’ 후원회를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거다. 우선 자기가 참여하고 시골에 사는 고향 친구들에게 매월 5천 원에서 1만 원 정도씩 하라고 권면하고 손자 손녀들에게도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1,000원 회원을 모집하면 쁘리야네 가정의 한 달 생계비는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 친구가 젊은 시절 사업할 때 같으면 얼마든지 혼자서도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을 후원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퇴임하고 70이 넘은 노인이 되었으니 혼자 감당하기는 힘든 일이다. 그만큼만 주선하여도 큰일 하는 거다. 그리고 부인하고 상의 했는데 쁘리야가 한국에 오게 되면 잠시 머물 장소도 제공하고 싶단다. 처음 쁘리야를 만났을 때 그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한글을 열심히 배워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싶다는 이야기를 동영상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친구가 귀담아들었다가 하는 말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9)

 

     관심이 식어갈 즈음

 

     카투만두 알차네 집에서 약 10일 정도 머물다가 한국에 귀국한 후 네팔 쁘리야의 소식도 듣지 못하고 후원하겠다던 친구와도 소식이 없이 지내던 어느 날 갑자기 앞서 맨 처음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쁘리야가 다친 사실을 페이스북 메신저로 알게 되어 즉시 친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렸다. 그랬더니 친구가 내 맘처럼 급하게 생각하여 20만 원을 즉시 송금해 주었다. 그가 후원하겠다던 말을 실천한 것이다. 그리고 주말에 만나서 뿌리야 후원에 관하여 자세한 것들을 상의하자는 카톡을 보내왔다.

     쁘리야에 관한 관심이 식어갈 즈음 그 아이가 갑자기 사고를 당하여 다시 그 아이에 관하여 관심이 고조 되었다. 왜 그 아이는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었을 뿐 아니라 또 그런 심한 사고를 당하여 또다시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그러나 어린 나이에 어미를 잃고 혼자 힘겹게 살면서도 그 아이의 모습에선 굳세게 살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였었다. 동생들 세 명을 마치 자기가 낳은 자식들처럼 이른 아침부터 밥을 해 먹이고 빨래하고 학교에 늦지 않도록 재촉하여 함께 데리고 가는 모습 그리고 지금 11학년이니 1년만 배우면 고등학교 과정까지 모두 마치니 그때는 한국에 가서 돈을 열심히 벌어 자기 동생들을 공부시키고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그 아이의 결심이 대단했었다. 그러던 착한 아이가 다시 큰 사고를 당하여 이마가 다 깨어지고 치아가 부러지는 대형 사고를 당하였다. 그러나 그 사건을 통하여 다시 나와 한국인 자원후원자인 친구가 더 깊은 관심을 두게 되었으니, 이도 단순한 사고가 아니고 쁘리야와 후원자들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주기 위하여 하늘의 기운(에너지)이 발동한 것 같다. 쁘리야의 거친 세상을 헤치고 열심히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에너지)가 우주의 기운(에너지)을 끌어들이고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끌어들여 협력자로 만드는 것 같다. 마치 작은 소용돌이가 모여 큰 파도를 일으키거나 작은 바람이 모여 세찬 태풍의 눈이 되듯이 말이다. 예수께서도 병든자를 고치시기 전에 “네가 낫고자 하느냐?”며 환자의 ‘의지’를 먼저 물으셨다. 사고를 당하거나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너무 당황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사고는 ‘경고의 메시지’임과 동시에 새로운 ‘희망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를 잘 깨달아 알아 자기에게 닥쳐온 불행을 딛고 더 멋진 인생의 길을 개척한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알고 있다.

     알차나에게 “이번에는 하나님이 나에게 쁘리야를 소개하셨다”라고 나도 모르게 말한 것처럼, 우주를 움직이는 거대한 기운이 우리를 움직여 어려운 상황에서도 굳세게 살려고 하는 쁘리야의 상황에 투입하는 것 같다. 아무리 극한 상황에 처한다고 하여도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으면 그 의지는 태풍의 눈처럼 주변을 빨아들이고 끌어들인다. 과학적 논란이 많지만, 이를 양자역학자들은 ‘끌어당김의 법칙’이라 말하여 실제로 이런 일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설명하기도 한다.

     “현실은 우리의 생각(=에너지)과 감정(=에너지)이 투영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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