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있을 법한 모든 것>, 구병모)

우리의 미래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누리게 될 유토피아인가, 기후위기와 갈등으로 맞게 될 디스토피아인가. 아니면 소수는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며 유토피아에 살고, 다수는 기후위기와 갈등의 짐을 지고 디스토피아에 사는 양극화 사회일까. 우리에게 닥칠 미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결정들이 모여 미래가 되리라는 사실만큼은 자명합니다.

지성의 가장 위대한 능력은 과거에 비추어 현실을 분석하는 힘, 현실에 비추어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입니다. 지성이 이익창출의 수단으로 비하되는 현실에서도 살아있는 지성은 선형으로 흐르는 시간을 비선형으로 활보합니다.

지성과 이익-성공은 비례한다고 상상해봅시다. 실제로 높은 지성으로 전문직이 되고, 좋은 사업 아이디어를 내서 성공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두루두루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현실에는 미래와 타인의 삶을 파괴한 댓가로 성공하는 지성도 만연합니다. 개인의 양심에 달린 문제인 듯 보이지만, 성찰하지 않는 지성은 창조적 지성과 파괴적 지성의 경계를 설정하는데 무능합니다. 그저 전문 지식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기술자에 불과합니다. 해악을 끼치는 파괴적 지성은 무지성보다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범죄라는 사건에 대한 회개뿐 아니라, 범죄로 이끄는 생각과 욕망에 대한 성찰이어야 함이 분명합니다. 회개는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거룩한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기 때문입니다. 텍스트만 다를 뿐이지 신앙과 지성이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 않습니다. 말씀에 비추어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 신앙이 지향하는 바입니다.

구병모 작가의 <있을 법한 모든 것>은 수십년 후에 닥칠 근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담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우리의 근미래, 정치와 언론이 조장하는 사회적 갈등과 폭력을 방치한 우리의 근미래, 과학 기술의 발달과 인간성의 소외를 충분히 고찰하지 않은 우리의 근미래… 로봇과 AI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행복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신앙과 지성이 향해야할 좌표를 설정합니다. 미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판도라의 상자도, 환상적인 과학기술이 담긴 보물상자도 아닙니다. 미래는 반투명한 아크릴 상자에 담긴 우리의 현재입니다. 현재에서 매면 미래에서도 매일 것이요, 현재에서 풀면 미래에서도 풀릴 것이라!

과학기술이 삶의 풍경은 바꿀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상호 의존성에 기인한다는 삶의 본질은 바꿀 수 없습니다. 편지지에 꾹꾹 눌러쓰던 러브레터가 현란한 엄지손가락으로 보내는 깨톡으로 바뀌었을 뿐, 사람은 서로 사랑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미래는, 지금,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사회,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드는 의지와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이런 세상이니까 무슨 일이든 못 일어나겠느냐고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면, 인간의 힘으로 저 건너편으로 이동하는 일 또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겠지요.”(<있을 법한 모든 것> p. 233)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을 토대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한 마디로 신본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할 일과 책임을 하나님께 미루는 것이 신본주의는 아닙니다. 신본주의로 정당화할 수 있는 혐오와 폭력은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라신 그리스도의 뜻을 하늘처럼 섬기는 것이 바로 신본주의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미래를 열어갈 역할과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의 토대가 되십니다. 교회의 미래는 사랑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우동혁 목사 (만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