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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 앞에서
김윤형  |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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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1월 27일 (토) 03:17:00
최종편집 : 2024년 01월 27일 (토) 03:21:01 [조회수 :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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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 앞에서

정본 백석 시집, 백석, 문학동네, 2020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난은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심지어는 사랑마저도. 그래서 신경림은 자신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백석은 조금 달랐다. 그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이 시의 화자 역시 <가난한 사랑 노래> 속 화자처럼 가난하다. 그러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속 화자는 가난하기에 모든 것을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가난하지만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오늘 밤 눈이 내리는 것은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즉, 백석은 자신의 사랑을 현실적 차원에서 우주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 시 속에서 그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눈만 내릴 뿐 나타샤는 오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시에서도 화자의 사랑은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난이 해결된 듯한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흰 바람 벽이 있어>에서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
내 사랑하는 어여뿐 사람이 ...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이 시에서 화자는 좁은 방에서 쓸쓸하게 살고 있다. 게다가 그가 사랑했던 사람은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 이러한 화자 앞에 다음과 같은 글자가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는 상황이 더 악화된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의 화자는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라고 말한다. 어떠한 희망도, 소망도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는 굴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들고 살아간다. 그러는 사이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며 다시금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백석의 시적 세계는 여전히 비참하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어 죽기도 하고(흰 밤), 남편은 집을 떠난 뒤 돌아오지 않고 딸은 엄마보다 일찍 죽고(여승), 거미는 인간에 의해서 가족이 해체되고 뿔뿔이 흩어진다(수라). 인간도, 동물도, 식물도, 자연도, 모두 슬픔과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세계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세계는 변할 수 없는 것인가? 산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슬픈 일일 뿐인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답을 <모닥불>이라는 시에서 찾았다.

새끼 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 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 조각도 막대 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짓도 개 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 사위도 갓 사돈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 장사도 땜장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모닥불 안에는 사물도, 생명도, 슬픈 역사도 함께 탄다. 모닥불 옆에는 성별도, 신분도, 나이도, 종(種)도 상관없다. 모닥불은 모든 것을 자기로 끌어오며 동시에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고 모든 것들이 결합될 수 있게 도와준다. 여기서는 그 무엇도 소외되지 않으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공존한다. 즉, 모닥불은 모든 것이 서로 만나는 공통의 장(場)이 된다.

 이 모닥불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규정할 수는 없다. 다만 모닥불 스스로가 드러낼 것이다. 

김윤형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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