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
십계명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적 속성과 형상화의 문제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사도 만들지 말며...(출(20:4-6)
곽일석  |  iskwag@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4년 01월 27일 (토) 01:11:32
최종편집 : 2024년 01월 27일 (토) 03:21:22 [조회수 : 814]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감리교신학대학교 경기연회동문회는 지난해 9월 25일(월) 오전 10시 30분 조암교회(담임 방일섭 목사)에서 ‘오늘 여기 우리와 맺은 언약’이라는 주제로 신학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신학 세미나는 이사야 교수가 십계명에 대해서 ‘목회자를 위한 구약특강, 십계명’에 대해서 강의했다.

그 때에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신앙의 대원칙인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에 주목하였으며, 이사야 교수는 “사람을 만든 신”, “사람이 만든 신”이라는 주제로 출애굽기의 금송아지 사건을 설명하면서 히스기야와 요시아의 종교개혁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갔다.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존재시며 가시적인 물질(material)로도 표현될 수 없는 분이시다(요1:18;딤전6:16). 성경은 하나님을 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내려는 모든 시도에 대하여 강경한 어조로 금하고 있어서(23절) 하나님의 영적인 속성을 매우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본문에 나타나 있는 십계명 중의 제 2계명은 하나님을 형상화(形象化)하는 문제와 관련된 계명으로서, 일반적으로 다른 신들의 형상 앞에 절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으로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옳다면 제 2계명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내게 있게 말라’는 제 1계명의 반복에 불과하다. 따라서 문맥상 제 2계명은 거짓 신들을 경배하는 것에 대한 금지를 내포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형상화하지 말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동일한 내용을 담은 말씀이 신5:8에서도 나타나는데, 이 둘에는 히브리어 ‘페셀 웨콜 테무나’라고 표기되는 ‘새긴 우상’이란 뜻의 단어가 공통으로 인용되고 있다. ‘페셀’은 고대 근동의 여러 다른 이방신을 의미하지 않고 ‘여호와 형상’을 뜻하는 단어이다(Keil).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을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어떤 형상으로도 표현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 말씀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본문 내용은 문맥으로나 어원으로 볼 때 다른 종교의 우상 신들을 만들어 섬기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이라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을 가시적으로 형상화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금지하는 명령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계명을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그 죄를 갚되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신다(5절).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적인 속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하나님을 가시적인 것으로 형상화할 때 하나님의 본성(nature)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가를 경계한다.

이에 하나님을 형상화한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본성을 어떻게 왜곡시키는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영광을 제한함: 출32:4의 금송아지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간은 하늘과 땅과 바다에 있는 여러 사물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가시화(可視化) 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신체적인 모습을 자연 안에 계시하신 적이 없으시며 모든 피조물 역시 하나님의 광대한 영광을 모두 드러내기에는 제한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형태로 형상화될 때 하나님의 영광은 거짓된 모습으로 왜곡될 것이다(Calvin).

그러므로 하나님을 형상화하려는 시도는 그 의도가 무엇이든 관계없이 그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며 하나님의 존재를 피조물의 위치로 격하시키는 망령된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다른 피조물의 형상으로 형태화되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금수(禽獸)와 버러지의 형상으로 격하되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롬1:23). 그리고 그 같은 행동 속에는 하나님을 거부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롬1:19-23).

(2) 우상숭배에 빠지게 함: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자 할 때, 그 형상은 곧 예배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형상, 그 자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지각이 점점 무감각해져 마침내는 마치 그 형상 자체가 무슨 신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이 그 형상을 다른 이방신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을 예배하기 위하여 그 앞에서 무릎 꿇을 때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이다.

‘우상’(idol)이란 인간의 이기심과 잘못된 종교적 심성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산물로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신적 속성이 인간의 시각에 의해 제한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비겨서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 것을 경고한다(23절). 특히, 25절에서 하나님은 돌로 제단을 쌓을 때 결코 다듬은 돌을 사용하지 말 것을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인간의 수고로 깔끔하게 다듬어진 제단이 예배의 대상으로 유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형상화시키는 일이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새로운 우상 종교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3) 그릇된 신 개념을 갖게 함: 조각물이나 화상(畵像)은 먼저 하나님을 거짓된 개념으로 전달한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피조물의 수준으로 끌어내려 함당치 않게 묘사함으로 그 형상 자체가 하나님의 참된 형상(image)에 관해 사고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십자가 상(象)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려 할 때 그리스도의 고난을 육적 영역으로만 이해하고 십자가가 지니고 있는 영적인 의미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고난 너머에 있는 부활의 승리를 놓치게 될 소지를 갖게 된다. 아울러 하나님을 나타내는 형상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왜곡된 개념으로 전달하여 하나님에 관한 그릇된 신관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4절의 하나님을 형상화하려는 것에 대한 금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제한하려는 인간의 그릇된 시도를 막고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나아가 인간으로 하여금 올바른 신지식(神知識)을 얻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결코 가시적으로 표현될 수 없는 불가견적(不可見的) 존재 양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기연회 남양지방 원천교회

담임 곽일석 목사(iskwag@naver.com)

곽일석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26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1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김경환 (218.48.116.237)
2024-01-28 00:39:31
왜 非可視的인 하나님과 可視的인 예수님이 동시에 있어야하는 지를 釋明할 수 없는 본문 글의 논리
본문 글의 논리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이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육신으로 인간에게 나타났다. 즉 하나님은 非可視的이고 예수님은 可視的이다.

본문 글의 논리를 있는 그대로 秋收하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1. 비가시적인 하나님으로는 인간을 다스리는 데 뭔가 부족함을 느껴 가시적인 예수님이 필요했다는 건가?

2. 신의 속성이 비가시적이라면, 과연 가시적인 예수님을 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三位一體 중 하나님과 성령님은 비가시적이고, 예수님은 가시적이다.)

3. 비가시적 형상으로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가 수가 틀리자 가시적 형상으로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면 一貫性 문제가 제기된다.

본문 글에서 칼뱅 曰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형태로 형상화될 때 하나님의 영광은 거짓된 모습으로 왜곡될 것이다.”라고 했는데... 인간에게 實體를 보였고, 각종 기적을 행하고 인간과 같이 먹고 마셨던 가시적인 예수님은 왜곡되지 아니 했는가? 오로지 가시적, 비가시적 여부가 神聖 왜곡 여부의 가장 결정적 원인인가?

하나님이 한사코 인간의 눈에 보여지길 꺼려했다는 이유를 설명하는 본문 글을 읽어봐도 정답이 되지 않아 오히려 답답하기만 하다.
리플달기
1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