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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창세기 1장 24절~31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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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1월 18일 (목) 21:30:17
최종편집 : 2024년 01월 18일 (목) 21:35:20 [조회수 : 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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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창세기 1장 24절~31절

 

 

1. 생물의 다양성

 

① (24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 육축은 가축, 기는 것은 곤충, 땅의 짐승은 야생동물을 가리킨다. 그밖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그 종류대로’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 ‘생물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종류는 대략 1,400만 종에 이른다. 생물의 다양성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다. 생물의 다양성은 모든 생태계가 조화롭고 풍요롭게 유지되는 바탕이다. 오늘날 생물의 다양성이라는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추구하는 인류의 탐욕으로 인해 파괴되고 있다. 달걀과 우유, 고기를 얻기 위해 소와 돼지, 닭과 같은 특정한 가축만을 획일적으로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업’의 폐해다. 쌀과 밀, 옥수수와 커피 같은 특정 곡물만 대량으로 경작하는 ‘공장식 농업’의 폐해다. 이로 인해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원시림이 훼손되고 인수공통감염병 의 위험, 축산분뇨로 인한 매탄가스와 이산화탄소량 증가, 먹이사슬 파괴라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과일이나 채소, 견과류와 같은 농산물의 1/3 이상이 꿀벌의 수정에 의존하는데 인류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뿌린 살충제와 제초제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생물학자들은 생물의 다양성이 지속적으로 파괴되면 2000년대 후반에는 현존하는 동식물의 절반이 멸종되거나 멸종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류의 편의를 위한 획일적인 대량생산 방식으로 인해 생물의 다양성이 파괴되면 결국 사람도 살 수 없다.

 

② (25절)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오늘날 동물권이나 동물복지에 관한 이슈는 창조질서의 원리와 맞닿아 있다.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출 23:19).” 유대인들은 이를 문자적으로 준수하지만 본뜻은 따로 있다. 부드러운 육질을 얻기 위해서 어미젖으로 새끼를 삶는 비인도적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말씀이다.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이 고래를 좋아하지만 고래를 구경하러 수족관에 가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래에게 수족관은 감옥입니다. 좁은 수조에 갇혀 냉동 생선만 먹으며 휴일도 없이 일 년 내내 쇼를 해야 하는 노예제도예요. 평균 수명이 40년인 돌고래들이 수족관에서 겨우 4년밖에 살지 못합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식물을 보호하는 것은 사람의 생존권과 직결된다. 생물의 다양성을 지키는 노력이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첩경이다.

 

 

2.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① (2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 여섯째 날에 하나님이 동물에 이어 사람을 창조하셨다. 창조의 전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사람의 창조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복수로 기록된 ‘우리’는 대표적인 난해 구절이다. 전통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키는 삼위일체라고 해석하거나 하늘에 천군천사와 같은 영적 존재들이라고 해석하지만 석연치 않다. 세 번이나 거듭해서 강조되는 본문을 잘 살펴보면 더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본문이 전하는 본래적 메시지는 하나님이 사람을 어떤 존재로 창조하셨는지를 뚜렷하게 밝히는 데 있다.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이어지는 창세기 2장 7절에 잘 드러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나님의 피조물인 대지의 흙과 창조주 하나님의 생기(רוּחַ, 숨결, 하나님의 영, 성령, 말씀)를 불어 넣어 사람을 만드셨다. 하나님이 사람을 물질적이면서 동시에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사람은 물질적 존재이자 영적 존재다.

▶ 왜, ‘우리’라고 표현했을까? ‘우리’는 사전적으로 너와 나, 나를 포함한 복수 또는 내가 속한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는 ‘너랑 나랑, 우리 함께’라는 뜻이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무려 49번이나 나오고 모두 문장의 주어로 쓰인다. 모든 문장의 술어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이다.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우리’에 해당되는 두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인 모든 만물을 가리킨다.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모든 피조물을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는 함축적인 단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지 않으시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듯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뜻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시 8:3~8)”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시는 만물을 파괴하는 것은 창조주를 대적하는 행위다.

▶ 사람의 영(Spirit)은 ‘우리 중 하나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사람의 육(flesh)은 ‘우리 중 하나인’ 피조물의 모양대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형상을 따라’는 하나님의 형상(본성, 영, 마음)을 가리키고 ‘우리의 모양대로’는 피조물의 모양(본능, 육, 몸)을 가리킨다. 이처럼 특별하고 존귀하게 만드신 사람을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다.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잠 17:5).”

사람을 창조하시며 ‘우리’라고 표현한 이유가 ‘아래의 표’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 김명섭, 루카스 단 한사람을 위한 복음서 2014. p.145

▶ 본문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다. 하나님이 흙이라는 물질적 존재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중간자적 존재(Spinoza, 1632~1677)’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다. “그로 바다의 고기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사람에게 하나님의 본성으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시기 위함이다. 사람은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임받은 ‘청지기(steward)’다. ‘다스리다’는 말을 정복과 압제로 오해하면 안 된다. ‘우리’라는 표현에서 잘 드러나듯 하나님의 통치방식은 지배와 군림이 아니라 돌봄과 섬김이다. (메시지성경)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 그들로 우리의 본성을 드러내게 하여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집짐승과 온 땅과 땅 위에 사는 온갖 동물을 돌보게 하자’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이어지는 28절에서 거듭해서 강조되고 있다.

 

②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다. ‘다스리라’는 마음대로 전횡하라는 말이 아니라 말씀대로 돌보라는 뜻이다. (메시지성경)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자녀를 낳고 번성하여라 온 땅에 가득 하여라 땅을 돌보아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특별한 권한과 더불어 특별한 책무를 부여하시기 위함이다. 사람은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권을 잠시 위임 받은 청지기다. 자고로 선한 리더십은 돌봄과 섬김을 실천하지만 악한 리더십은 정복과 수탈을 일삼는다. 예나지금이나 특권은 다 누리면서 책무는 감당하지 않는 지도자들이 문제다. 창조신앙의 핵심은 ‘청지기정신(Stewardship)’이다. 청지기는 맡기신 분의 뜻대로 행해야지 결코 제 멋대로 행하면 안 된다. 청지기정신은 환경과 자연, 경제와 보건, 건강과 재산 특히 현대 환경윤리학에 있어서 책임 있는 계획과 자원 관리를 구체화시키는 윤리개념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청지기정신을 망각한 몰지각한 이들로 인해 개발, 성장, 속도를 앞세운 무한경쟁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에 사람조차 안전하게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고 있다. 출산율 감소와 인구소멸이 그 방증이다.

 

3.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① (27절 상)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 (메시지성경)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을 닮게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본성을 드러내게 하셨다’ 사람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은 외형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이다. 하나님 형상은 무엇인가? 라틴어 ‘Imago Dei’는 영어로 ‘The image of God’이다. 이미지(image)는 사전적으로 ‘감각에 의하여 획득한 현상이 마음속에서 재생된 것’이라고 정의한다. 사람과 동물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뇌 과학자들은 뇌의 구조를 세 영역으로 구분한다. 첫째 파충류의 뇌(뇌간)는 일명 생존의 뇌다. 먹이, 번식, 경쟁에 해당하는 생존의 영역이다. 둘째 포유류의 뇌(번연계)는 일명 감정의 뇌다. 기억, 욕구, 감성에 해당되는 본능의 영역이다. 셋째 인간의 뇌(전두엽‧대뇌피질)는 일명 사고의 뇌다. 이성, 판단, 진선미를 추구하는 인간 본성의 영역이다. 사람의 뇌는 세 가지 영역을 모두 갖고 있으며 자주 사용하는 만큼 발달한다. 본능에 이끌려 사는 ‘짐승 같은 삶’과 본성에 이끌려 사는 ‘인간다운 삶’을 무엇이 결정하는지 분별할 수 있는 통찰을 준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갈 5:16~18)” 성경은 하나님의 본성대로 사람답게 사는 삶(생명, life)이 어디서 나오는지 누누이 강조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② (27절 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메시지성경)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대부분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구절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질서가 담겨있다. 남자와 여자는 단순한 성별의 구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스테디셀러로 알려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John Gray)’는 남녀 간의 차이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일깨워주는 연애의 교과서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제목만으로 내용을 단숨에 파악할 만큼 전달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남자와 여자는 신체적인 조건을 넘어 사고방식까지 전혀 다른 존재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것만큼이나 다른 존재로 지으셨다. 사람은 자신과 전혀 다른 ‘낯선 존재’와 만나서 함께 살아가야 갈 숙명이다. 연애와 결혼 할 때 서로 간에 충분한 공감대가 있어서 만나지만, 서로의 차이를 뼈저리게 경험하게 되고 공통점보다 차이점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혼자 살기를 선택하지 않는 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서로 다른 존재로 창조하셨나? ‘서로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낯선 존재’임을 인식하고, 차이를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수용과 공생을 가르치시기 위함이다. 차이와 다름을 통해 배려와 존중을 배우고 성숙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오늘날 나와 다른 상대를 두고 보질 못한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화를 강요한다. 이념과 인종, 문화와 종교 간의 차이를 악으로 규정하고 혐오와 배척, 갈등과 다툼, 차별과 전쟁을 일삼는다. 이와 같은 행태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역행하는 일이다.

 

③ (29절~31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어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 창세기 1장의 마지막 구절은 두 가지 심플한 메시지를 전한다.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세상에 모든 양식을 청지기로 지음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이다. 채집과 수확, 사냥과 목축으로 거둔 모든 양식이 사람의 공로인가, 하나님의 은혜인가, 아니면 50 대 50인가! 포도와 올리브가 신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고백대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양식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다.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람이, 하나님의 본성대로 돌보는 청지기적 삶이, 창조주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창세기가 전하는 오리지널 메시지, 창조신앙의 본원(本源 the origin)이자 창조질서의 본류(本流, the main strea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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