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느릿느릿 그러나 검질진 발걸음으로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4년 01월 17일 (수) 01:21:15
최종편집 : 2024년 01월 17일 (수) 01:25:28 [조회수 : 693]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꽤 오래 전 일이다. 교회 전화기가 울려 수화기를 들자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함양에서 목회하는 양재성인데요….” 북산 최완택 목사님이 발행하던 ‘민들레 교회’ 주보에서 간간이 마주하던 이름이 내게 실제의 인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함양제일교회 사경회를 인도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함양이라는 지명은 알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도시였다. 소박한 예배당에서 사경회를 인도하는 동안 양재성 목사에 대한 신뢰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는 교인들 앞에 설 때마다 말 한 마디를 해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예배를 집례할 때는 더욱 그랬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제된 언어를 사용했다. 교인들 또한 진실하고 따뜻했다. 상림을 함께 걸으며 들려준 목회 이야기와 ‘지리산 열린 연대’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예수 정신으로 살려는 올곧은 영혼을 만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몇 해 후 그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고 자연스럽게 청파교회로 소속을 옮겼다. 청파교회가 환경문제에 조금 앞선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 덕분이다. 그는 환경 현안이 있는 곳마다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기도회를 개최하고, 항의 집회를 기획하는 등 분주한 일정을 소화했지만 청파교회 교인들과의 사귐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가슴에 붙은 불이 다른 이들의 가슴에도 옮겨 붙듯이 그의 열정은 많은 교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환경 파괴의 현장을 찾는 이들이 늘었고, 후원자들도 늘어났다. 깊이 각성된 한 사람이 검질기게 추구하는 새로운 세상의 꿈은 다른 이들에게도 옮겨 붙게 마련이다.

리 호이나키는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서 오늘날 권력과 부와 상상력과 지성과 문화생활을 조직하고 독점하려는 기관들은 세 종류의 분리 혹은 고립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한다. 그 기관들은 “사람을 그 육체와 장소와 시(詩)로부터 떼어놓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세 가지 소외를 극복하는 것이 건강한 삶의 비결인 동시에 문명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겠다. 양재성 목사가 좋은 사례이다.

그는 아버지의 적절한 충고를 따라 농사를 배우는 것을 통해 목회자의 자세를 가다듬었다. 성육신 신앙은 관념적 신학 이론이 아니라 삶을 통해 구현되어야 마땅한 믿음을 가르친다. 고백을 삶으로 번역하는 것이 믿음이다. 몸이 함께 하지 않는 믿음은 허위의식이 되기 쉽다. 호미를 손에 쥔 채 풀을 뽑고 식물들을 북돋는 일은 일종의 기도이다. 각성된 이에게 노동은 고역이 아니라 고요한 성찰의 시간이 된다. 그는 그렇게 육체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양재성 목사는 또 자기가 선 자리가 거룩한 자리임을 잊지 않는다. 모세가 호렙산 떨기나무 아래서 신을 벗고 엎드렸던 것처럼 그는 부르심을 받은 자리가 성지임을 알았기에 그 장소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정원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것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 주위에 살고 있는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지리산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종교인들과 연대한 것도 같은 동기에서 비롯된 일이다. 가재울녹색교회를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재울마을사람들이라는 주민조직을 만든 것도 장소를 아름답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양재성 목사는 시를 배달하는 우편배달부이다. 시는 ‘언어의 사원’이다. 시인은 일상에 깃든 영원의 빛을 예민하여 포착하여, 그것을 언어의 재배치를 통해 드러내는 사람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이 슬그머니 열어 보이는 세상에 주목하는 일이다. 헤르만 헤세는 “시는 시인의 호흡, 그의 아우성, 그의 꿈, 그의 미소, 그의 주먹질”이라고 말했다. 산문적 현실 속에서 바장이며 사는 동안 우리 영혼은 납작해지게 마련이다. 시인들은 그 납작해진 영혼에 숨을 불어 넣어 일어선 존재가 되게 한다. 매일 아침 그는 한편의 시가 빚어낸 자기 영혼의 풍경을 정갈한 언어로 드러내 보인다. 그가 불의와 싸우는 치열한 현장에 서 있으면서도 거칠어지지 않는 것은 시라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 몸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양재성 목사는 성공의 사다리 윗단으로 오르기 위해 자기 삶을 기획하지 않는다. 그는 길을 걷는 사람이지만 그 길은 자기가 능동적으로 선택한 길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주어진 길이다. 때로는 사람이 길을 택하지만 길이 사람을 택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요 21:18)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부름 받은 자들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이후에 그의 삶이 어디를 향하게 될지는 그의 주인이신 분의 뜻에 달려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내딛는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든 영원한 중심과 잇대어져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루미는 ‘샘을 향해’라는 시를 통해 이 놀라운 신비를 노래한다.

“샘을 향해 걸어라.
지구와 달이, 그들이 사랑하는 것을
맴돌 듯이 돌아라.
돌아가는 것은 무엇이든
중심(中心)에서 온다.”

느릿느릿한 말투로 사람들 속에 잠들어 있는 뜨거움을 끄집어내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단절되어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엮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그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이 무엇일까 궁금하기 이를 데 없다. 그와 순례길의 동행이 되어 기쁘다. 

 

   
 
   
 
   
 

 

 

 

 

 

김기석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6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