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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와서 유아 세례를 고집해야 하는가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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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1월 09일 (화) 17:05:58
최종편집 : 2024년 01월 24일 (수) 18:09:12 [조회수 : 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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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을 크게 번성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그 언약의 표시로 그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이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했다. 예수의 부모도 그 전통을 따라서 아기 예수에게 할례를 행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할례를 행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교회에서는 할례 대신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유아 세례를 베풀고 있다. 유아 세례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처럼, 세례를 받은 아이가 하나님 앞에 특별한 존재로 구별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부모의 입장에서 그것은 내 자녀를 믿음의 자녀로 키우겠다는 서원이다. 

유아 세례를 처음 내세운 사람은 어거스틴이었고 그의 주장을 가톨릭에서 받아들였다. 그리고 칼뱅을 비롯한 개혁자들이 유아 세례를 이어받았다. (개혁자들 가운데서 츠빙글리는 유아 세례를 반대했다.) 그들은 세례는 외적인 행위일 뿐 아니라 세례를 통해서 내적으로 성령이 역사하신다고 믿었다. 

그런데 개혁자들과는 달리 유아 세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6세기의 종교 개혁기에 츠빙글리의 거점이었던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그레벨과 만츠를 중심으로 당사자의 신앙 고백이나 회개가 없는 유아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유아 세례를 받은 사람은 성인이 된 후에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들을 재세례파라고 불렀다. 유아 세례를 반대한다는 죄목으로 그들은 모진 박해를 받았다. 종교개혁 시대에 개혁자들에 의해 화형이나 수장으로 혹은 칼에 찔려 살해당한 재세례파 교인들이 4, 5천 명에 달했다.

칼뱅은 유아 세례는 하나님이 유아에게 행하라고 명하신 할례에서 이미 인정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인이 되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는 사람은 언약 밖으로부터 언약 사회에 들어옴으로 믿음과 회개가 세례에 선행되어야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서 난 유아들은 이미 언약의 상속자로 태어났으므로 회개와 믿음이 선행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가 필요 없다고 거듭 주장한 바울이 유아 세례를 지지했을까? 세례 요한이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외치면서 세례를 베푼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예수는 재세례파의 선구자가 아닌가?

개혁자들은 개개인의 믿음을 중시해서 가톨릭과는 달리 평신도들이 직접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그리고 사제를 거치지 않고 개인이 직접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들이 가톨릭의 관행에 따라 세례받는 사람의 신앙 고백과 무관한 유아 세례를 유지함으로써 개인의 신앙을 중시하는 그들의 주장과 행위가 모순되고 말았다. 달리 말해서, 그들의 개혁은 미진했다.

현대에 와서 요아킴 예레미아스는 성서에서 ‘온 집안’의 세례를 언급하고 있으니 초대 교회에서는 유아에게도 세례를 베푼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이 세례를 받는 경우 옛날처럼 ‘온 집안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고 각자의 신앙 고백에 따라서 세례를 베푼다. 따라서 예레미아스의 말은 시대착오적이고 억지스럽다.

지금 유아 세례를 시행하는 교회에서는 유아 세례를 받은 아이가 14세 이상이 되면 세례 문답과 동일한 내용의 입교 문답에 응하도록 한다. 유아 세례를 받은 사람은 입교 문답에 합격한 후에야 그 교회의 세례 교인이 되고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 교회 공동체의 정식 회원이 된다. 

입교 문답은 그 유아 세례를 받은 사람의 개인적 신앙을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유아 세례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는 것 아닌가? 이렇게 유아 세례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아 세례를 고집할 필요가 있는가? (침례교회에서는 유아 세례를 실시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하면 교회의 전통이나 관례도 바뀔 수 있는 것 아닌가?

바르트, 본회퍼 등의 현대 신학자들은 재세례파에서 주장한 성인 세례를 지지한다. 특히 현대 신학에 큰 영향을 미친 본회퍼는 회개가 없는 용서나 세례를 값싼 은혜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개인의 책임과 선택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교회는 교인 각자의 신앙 고백을 중시해야 한다고 믿었다. 

성인 세례를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사회·문화적 상황이 변하면 교회의 전통이나 관행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진리’의 개념마저도 우리가 속한 사회·문화적 정황에 의해 제약될 수 있다. 전통을 중시하는 해석학자 가다머도 해석은 “역사적 지평과 현재의 지평의 융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지평의 융합에 의해서 전통이 재정립될 수 있다고 보았다. 독자반응비평에서는, 가다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자의 수용을 전적으로 중시한다.

여기서 한 마디 덧붙여야겠다. 오늘이 치아 정기 검진일이어서 치과에 갔다. 담당 의사가 치아를 살피더니 잘 관리했다고 칭찬하면서 임플란트를 하기를 참 잘했다고, 틀니를 한 사람들은 크게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술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사회·문화적 상황도 많이 달라졌다. 어설피 옛날 경험을 고집했다가는 ‘꼰대’로 취급받게 마련이다. 

개인의 책임과 선택을 중시하는 현대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무시하고 유아 세례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교회의 무익한 노력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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