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나이, 완성된 삶을 위하여>, 로마노 과르디니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6) 
 
  저자 로마노 과르디니(1885-1968)는 이탈리아 태어나 독일에서 자랐다. 가톨릭 신학자요, 철학자로, 1923년 베를린 대학 종교철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으나 1935년에 쓴 논문 <구세주>에서 예수 역시 유대인이었다며, 예수를 신화화하는 나치를 비판한 것 때문에 강제로 퇴직을 당했고, 1943년부터 1945년까지는 나치를 피해 은거하며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이후 1948년에서 1962년까지 뮌헨대학에서 기독교 세계관 및 종교철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학, 철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연구한 올바른 삶에 대한 그의 강의와 저작들은 종교계 안팎에서 큰 울림을 가져왔다. 그는 인간의 삶의 본질을 탐구한 철학자이면서, 또한 신학자로서 기독교 신앙이 세상에서 지니는 희망의 근거를 제시하였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전후하여 가톨릭교회 쇄신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1952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평화와 인권에 공헌한 이에게 주는 독일 출판인 협회 평화상을 받았다. 

  “완성된 삶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삶과 나이>는 세계 대전과 나찌즘을 경험한, 그리고 전후 급속도로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기 위해 행한 강연을 묶은 책으로, 1953년 이래 지금까지도 꾸준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책 중의 하나이다. 

  저자는 삶의 시기를 넓게 유년, 청년, 성년, 중년, 노년, 그리고 말년으로 구분하면서 각각의 시기마다 “단 한 번밖에 오지 않기에 우리의 삶 전체에서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위를 갖는”다(12)면서 각 시기에 따른 과제들이 있으며, 이를 통해 추구해야 할 독특한 가치들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한 시기에서 다른 시기로 넘어갈 때마다 전형적인 위기를 겪는다고 말한다. 유년기와 청년기 사이에는 사춘기, 청년기와 성년기에는 경험의 위기, 그리고 성년과 노년 사이에는 물러남의 위기, 마지막으로 노년과 말년 사이에는 무기력해지는 데 따른 위기” 등이다(13). 

  저자는 유년기는 출산을 통한 엄마와의 분리를 경험하면서, 개인으로 존재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기로 보고 있다. 이 시기에 부모나 주변 어른은 아주 중요한 보호막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아이가 보호막 속에 계속 머물지 말고 성장을 통해 고유한 의지와 독립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28). 그러므로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자기 나름의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놓아주는 것이 아주 중요한 교육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이 유년기에서 청년의 시기로 넘어가면서 성숙의 위기를 맞게 된다고 본다. 이는 자기 주장 욕구와 성적 욕망이 깨어나는 신체적 변화 때문에 오는 것이라면서,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권위적이거나 윤리적 종교적 명령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겐 “새롭게 시작된 삶의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며, 그들이 그것을 뭔가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새로운 현실이 질서 속에 편입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그들이 이에 대해 인격을 걸고 책임을 질 줄 알며 명예를 해치지 않는 한도 안에 머무를 수” 있게 해야 한다(34-35).

  이 성숙의 위기를 거치고 나면 “이념과 소신의 힘이 과대평가되는 이상주의 시기”인 청년기에 접어든다. 저자는 청년 시기에 요구되는 “윤리의 핵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용기”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의 인격과 그에 따른 책임을 향한 용기,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일하며 자신의 생명력과 그것이 지닌 미래지향적 힘을 발휘하고자 하는 용기”이다(59). 그러나 청년 시기에 가장 아쉬운 것은 경험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시기는 ‘자신을 향한 용기와 새로운 것으로 과감히 나아가는 모험심과 타인의 경험을 이용하는 태도”가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했다(62).

  청년과 경험의 위기를 거치면 인격적 의미의 성년의 시기에 이르게 된다. 이때 성품이 완성되고, 인격이 내적으로 견고해 진다. 이는 특정한 가치들이 중요해지고,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원과 가까운 관계에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78). 그리고 가정은 이러한 내적 성숙과 힘의 토대 위에서 세워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성년의 시기에도 자신이 가진 힘의 한계를 분명하게 느끼는 ‘한계 경험의 위기’가 찾아온다. 삶의 모든 분야에서 일의 부담은 쌓여가고 요구받는 것들은 점점 늘어만 간다. 수많은 긴장과 난관, 저항이 도사리고 있다. 이같은 한계 경험의 위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고 다양한 요구들을 모두 아우르며 조화시켜 나가는 영리함, 주의력, 이기적이지 않은 균형감각을 갖춘 이들(83), 소위 “각성한 인간”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그 시대와 사회의 미래의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위기는 또 있다. 바로 노년의 문턱에서 만나는 “물러남의 위기”이다. 이는 이제 삶의 모든 것이 하강하면서 끝으로 가고 있다는 의식, 덧없음의 감정으로 인해 오는 위기이다. 저자는 인생의 진정한 성공은 이 끝자락에서 덧없음의 감정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교훈을 얻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가까이 다가오는 끝을 외면하지 말라고 한다. “마치 끝이 아직 저 멀리 있다는 양 행동하며, 끝나가는 삶의 마지막 단계에 악착같이 매달리고, 마치 젊은이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이죠. 이로부터 비참하고 안타까운 결과들이 생겨납니다. 우리 시대에 나타난 가장 수상쩍은 현상 가운데 하나는 가치 있는 삶을 단순히 젊음과 동일시하는 경향입니다.”(98~99).   끝을 잘 받아들이면, 삶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통찰, 용기, 평정심, 자존감, 그리고 이제까지 살아온 삶이나 업적들이 그 의미를 계속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100). 

  이처럼 물러남의 위기를 잘 극복하면 더 나아가 인생의 진정한 지혜, 곧 인격적 차원에서 영원을 추구하는 지혜로운 인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영원이란 단순히 목숨이 후손을 통해 이어지는 차원이 아니라 절대적 의미에서 인격을 충만하게 하는 것(114)라고 했다. 저자는 “절대적인 것과 영원한 것이 덧없고 유한한 의식 속에 파고들어와 삶에 빛을 비추어 줄 때 생기는 것이 지혜”이며, “바로 여기에 노년의 인간이 발휘하는 실천적 영향력의 원천이 있다”고 했다(105). 늙어감에 따라 육체의 힘은 약해지지만, “내면 속에서 위기를 극복해 가는 만큼, 노년에 이른 지혜로운 인간은 의미를 밝혀주는 존재”가 된다고 했다(106).    

   저자는 아주 간결하게 인생의 각각의 시기마다 있는 각각의 특징을 말하면서, 각 시기마다 주어진 과제들을 이루고, 각각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노라면 삶이 온전한 전체로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노년기는 삶을 근근이 연장하는 시간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시간, 삶에 있어 제대로 된 마침표를 찍는 시간임을 강조한다. 

 김수영 목사(대영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