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평화를 위한 희망의 발걸음

-개항도시에서 쓴 희망일지를 읽고-

안중덕 목사(부산, 샘터감리교회)

▲ 개항도시에서 쓴 희망일지(인천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이 걸어온 길 130년)

 사람의 경험과 흔적은 기억되고 기록된다. 그리고 기록된 것만 남는다. 그래서 인류는 문자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인식과 경험적 사실들을 기호와 그림으로 남겼다. 문자의 발명은 문명사회를 탄생시켰다. 역사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발달과 문명의 혜택은 역사가 빚어 준 선물이다.
 역사는 이야기이다.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이고 미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은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인식한다. 또한 세계를 발견하고 의미를 해석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끌어당기며, 한곳으로 모으는 힘이 있다. 그래서 지나온 이야기는 현재의 삶을 비추어 보는 거울이며,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가는 이정표이다.

 나는 최근에 한 기관의 방대한 이야기를 담은 특별한 책을 만나게 되었다. 책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개항도시에서 쓴 희망일지󰡕 1권과 2권이다. 만남에는 의도한 만남이 있고, 우연한 만남이 있다. 그러나 예상하거나 계획한 적 없지만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만남도 있다. 바로 이 책과의 만남이 그렇다. 태화복지재단의 관계자 모임에 참석했다가 선물을 가장한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만남은 소중하다. 사람뿐 아니라 책과의 만남도 그렇다. 사람이 책을 쓰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지만 책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변화시킨다. 흔하디흔한 게 책이라 하지만 사람도 저마다 개성이 있고 인격이 있는 것처럼, 책 한 권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책 한 권이 미치는 영향력과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시인 정현종은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 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며,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인 것이다. 한 사람과의 만남이 이처럼 어마어마한 일이라면 한 공동체의 이야기를 만나는 일은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는가.

 책 표지의 부제가 ‘인천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이 걸어 온 길 130년’이다. 혹자는 표지만 보고서 한 기관의 역사 기록물, 혹은 사료집으로 취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펼치는 순간 예사롭지 않은 직감에 사로잡힌다. 이 책은 내용상으로 볼 때 단순히 복지관의 지나온 과거를 담은 것이 아니다. 인천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의 뿌리 찾기를 위한 프로젝트도 아니다. 인천 최초의 사회복지관으로서 허세를 부리기 위한 일은 더욱 아니다. 개항 시기부터 130년이라는 시간과 인천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 오히려 인천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려는 소망이 엿보이는 책이다.
 '개항도시에서 쓴 희망일지' 1권은 1893년부터 일제 강점기로 해방된 1945년까지 기독교사회복지관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토대를 추적한다. 1권은 역사학자인 하희정 교수가 집필하였다. 글에서 문학의 향기가 난다. 학술적인 투박한 표현을 느낄 수가 없다. 오히려 문학적 수사와 은유적 표현이 배어있다. 문장의 수려함 때문인지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그렇다고 사료와 사실을 간과한 것도 아니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시공을 넘나들며 독자를 그때의 현장으로 이끈다. 집필자의 탁월한 내용 구성력을 바탕으로 개항기부터 해방 전까지 한국의 근대사와 기독교 선교 역사,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한국 사회와 경제적 상황까지 일목요연하게 구성하였다. 특히 개항 이후 미 감리회 여성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펼친 초기 사회선교와 사회 복지의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다룬 점은 독서의 보람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개항도시에서 쓴 희망일지' 2권은 해방 후인 1945년부터 2023년까지 인천 최초의 ‘기독교사회관’에서 인천을 대표하는 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2권은 한국교회사를 전공한 장미경 목사가 집필에 참여하였다. 화려한 수사보다는 사료를 바탕으로 담백하게 진술한 점이 특징이다. 방대한 사료를 글로 담아내야 할 때는 집필자에게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부담 없이 읽고 이해하도록 구성한 점이 돋보인다. 내용상으로 이 시기에 미국에서 파견된 여성 선교사들이 한국 사회의 발전과 요구의 변화에 따라 기독교사회관의 리더십을 전환하여 운영권을 한국 여성들에게 넘긴 것과 한국감리교회에서 ‘태화복지재단’을 설립하고 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으로 성장하도록 기반을 다진 과정, 특히 인천광역시 동구에서 서구로 이전하고 인천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으로 발돋움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풍성하게 담았다.
 이 책의 가치와 의의는 차고도 넘친다. 인천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의 130년 역사의 퍼즐을 맞춘 책으로 평가한다면 그것은 매우 무례한 행위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다루어진 내용의 구성과 방대한 객관적 사료들, 그리고 집필자들의 연구와 담론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한국 근대사와 지역사 연구, 한국선교역사와 한국의 사회복지사 연구에 충분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예수그리스도가 사랑한 ‘사람’이 보인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아동,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웃들에게 삶의 의미와 희망, 그리고 웃음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던가. 낮은 곳을 향해 보내는 따뜻한 시선이 머무는 곳,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는 공동체라서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곳이다.
 “고통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낯선 땅을 향하도록 선교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말씀이라 했다. 나의 시선이 사로잡은 문장이기도 하다. 박노해는 그의 시 ｢나 거기 서 있다｣에서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라 아픈 곳이고 가족의 중심은 아빠가 아니라 아픈 사람이라 했다. 또 세계의 중심은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양심과 정의와 아이들이 고통당하는 곳이라 했다.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이 중심이다. 기독교사회복지관이라면 항상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
 '개항도시에서 쓴 희망일지'는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이 어딘지를 가리킨다. 우리가 무엇에 희망을 두어야 하는지도 보여 준다. 일찍이 일제의 강점으로 민족의 존엄성이 짓밟힌 땅, 전쟁으로 파괴되고 절망의 먹구름이 드리워진 곳에 하나님이 서 계심을 믿었던 미국 여성 선교사들의 헌신과 희생 위에 세워진 희망의 보금자리, 한국 최초의 사회복지 베이스캠프 ‘갬블관’은 한국사회복지의 요람이었다. 그 마음과 정신을 머금고 거목으로 자라난 인천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은 인천 유일의 기독교 사회복지실천 기관으로서 앞으로도 큰 평화(泰和)를 이루시려는 그리스도의 꿈을 품고 희망의 발걸음을 이어갈 것이다.

 “나는 모두 잊힐지라도, 내가 말한 진실과 내가 행한 행실이 남게 하소서.”(로제타 일기)

 

출판된 역사서는 오프라인 인천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문의 : 032-568-3270), 온라인 교보문고, 예스24, 갓피플몰, 알라딘에서 구매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