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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한국 감리교회의 성탄절은?(1885-1887, 1897년)
노종해  |  ro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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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12월 18일 (월) 20:31:39
최종편집 : 2023년 12월 20일 (수) 16:04:30 [조회수 : 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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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한국 감리교회의 성탄절은?(1885-1887, 1897년)

-아펜젤러의 첫 성탄절, 첫 한국어 설교와 첫 교회 건축 봉헌-


 
사료제공 및 작성: 노종해(CM리서치)
 

   
▲ 한국 감리교 정동 선교부(the M.E. Mission, South) 가옥들 남쪽에서(1890년대)-남여 예배당, 남.여학교, 남여 병원! (사진: 아펜젤러의 앨범에서)

 
초기 감리교 선교사 가정과 교회의 성탄절은 어떤 모습일까? 1885년 엘라(아펜젤러의 부인)의 성탄절과 1886년, 1887년 성탄절에는 아펜젤러 목사의 첫 한국어 설교가 있었고, 1897년 성탄절에는 개신교 최초 교회건물이 봉헌되는 날이기도 했다.
 
또한 정동교인들이 힘을 모아 연보하여 이웃과 함께 그리스도의 축복을 나누는 모습도 있었다. 2023년 성탄절을 맞아 다시 그 의미를 생각하며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맞아 함께한 기쁨들을 사료 소개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1885년 성탄절: 엘라(Ella J. Dodge)-기쁘고도 슬픈 성탄절
 

   
▲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엘라 닷지와 헨리 아펜젤러!

 
한국에서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기쁘고 슬펐다. 엘리스는 우리에게 기쁨이요 축복이었다.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냉감한 타지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마리아와 요셉의 심경은 어떠하였을까? 우리는 서로 이야기하였다. 헨리가 말했다.(*엘라는 첫 딸 엘리스를 11월 9일 해산. 엘리스는 한국에서 태어난 첫 번째 외국인 아기)
 
“로마의 점령, 세금문제 등 그 당시 그 나라도 정치적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어요. 그래서 마리아가 낮선 곳에서 아기를 낳게 되었던 것이에요. 인구조사에 그들을 포함시켜야 했거든요. 그래야 세금을 더 걷을 수 있었으니까.”
 
“그녀를 보호해 줄 낡은 한옥조차 없고, 따듯하게 지켜줄 난로도 없는 그런 곳에서 마리아는 해산을 했었죠. 우리처럼 그들도 이방인이었고 안전하게 머믈 수 있는 곳을 찾아 백방으로 낮선 곳을 찾아 헤맸지요.”
 
에펜젤러 부부는 상대방이 모르게 조그마한 성탄 선물을 준비하였다. 엘라는 헨리를 위해 마 손수건 2개와 머리용 향유를 준비했고, 헨리는 거의 한 쌍처럼 생긴 청동 촛대 2개를 남대믄 시장에서 샀다.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다.
 
25일 오후 아펜젤러 부부는 마당을 가로질러 스크랜튼 집으로 갔고 헤론 가족, 언더우드 등이 롤리와 스크랜튼 대부인의 만찬 초대로 스크랜튼 박사의 집에서 모였다. 식사는 즐거웠고, 우리 단 둘이 외톨이로 성탄일을 보내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그러나 이 나라는 주님의 탄생 자체를 모른다. 담 밖에서는 어제와 전혀 다를 것 없는 오늘이 이어졌고, 성탄에 상업이 버젓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보내는 성탄일이 슬프고, 무언가 빠진 것 같았고, 아닌 척 서로 말하진 않았지만 한 없이 외로웠다.(캐롤 레이더 저/이원희 역):엘라 아펜젤러가 울린 사랑의 종, 도서출판 준, 2015. p94-95)


 
2. 1886년 성탄절-“빛나는 새벽별!”
 

   
▲ 아펜젤러와 스크랜튼의 정동 주택-앞: 스크랜튼, 뒷편: 아펜젤러-교회와 배재학당, 병원과 이화학당이 설립 된 곳(엘라 닷지 아펜젤러의 그림)

 
크리스마스는 밝고 즐거웠다. 오전 11시에 벙커씨가 짧게 설교를 했다. 아주 훌륭한 설교였다.
 
선교부 직원과 우리 어른들이 참석한 가운데 스크랜튼 대부인(Mrs M. F. Scranton)이 오귀스타에게 츄리를 주었다. 그러나 거기에 있던 다른 외국인 어린이들도 초대되었다.
 
주일 아침 “빛나는 새벽별”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축복하셔서 참 자유를 느꼈다. 청중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설교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이날 오후 일본인들과 즐거운 예배를 보았다.
 
크리스마스 내내 정말 즐거웠다. 이번처럼 나와 내 사람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깊이 감사해 본 기억이 없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았고 모두들 즐거워했다. 미국에서는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거기서도 큰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셨을 것이다.(아펜젤러 “일기” 1886년 12월 27일)


 
3. 1887년 성탄절-첫 감리교 예식서 예배와 최초 한국어 설교
 

   
▲ H.G. Appenzeller의 Diares, Sunday, Dec 25, 1887. Seoul

 
1887년 12월 25일(주일) 성탄절!
 
4개의 양말을 놓았다가 오늘 아침 앨리스와 피터 쿠퍼와 이임세와 최갑길(이 두 소년은 학교에서 일하는 소년이다)에게 주었다. 토요일 저녁에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은 처음 듣는지라 매우 재미있어하며 지금 상황에 즐거워하고 산타클로스가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엘라는 내게 금시계 줄과 손수 뜬 벙어리 장갑 한 켤레를 선사했다. 나는 그녀에게 은제 찻잔 세트(6개)를 선사했다. 아직 물건이 도착하지 않았다.
 
교회는 만원이었고 예식서에 따라 예배를 드렸는데 길모어가 사회를 보았다. 설교는 매우 짧았으나 핵심적이었다.
 
오후2시에 첫 한국어 설교를 하였다. 큰 사건이므로 설명을 해야겠다. 내가 직접 쓴 것은 아니고 권서인 최씨(최성균)에게 내 생각을 말하면 그가 한국어로 옮겼다. 그렇게 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한국어 설교를 한 것이 몹시 기쁘다. 본문은 마태복음 1장 21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였다.
 
물론 설교문을 그대로 읽었지만 영적인 의미를 최대한 살렸다. 예배는 다음과 같은 순으로 진행되었다.
 

   
▲ H.G. Appenzeller의 Diares, Sunday, Dec 25, 1887. Seoul!

 
1) 세례(김명옥)
2) 찬송
3) 기도-스크랜튼 의사(Dr. W.B. Scranton)
4) 마타복음 2장 낭독
5) 누가복음 낭독
6) 설교
7) 주기도문
8) “하나님께 더 가까이”
9) 축도
 
이 설교는 이 나라에서 최초 감리교 설교이고 아마 개신교 선교사에 의한 최초 공식적 설교일 것이다. 후자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보다 한국 사람을 더 많이 아는 언더우드가 자기 사람들에게 늘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2년 반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한국에 살면서 모임을 주관할 뿐만 아니라 이 백성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설교하려고 몹시 애를 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서툰 설교였지만 주의 이름으로 전달했기 때문에 그분께서 영광 받으시리라 믿는다. 내 자신과 듣는 사람들에게 좀 더 익숙하게 설교를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일기. 헨리 G. 아펜젤러/노종해 옮김: 자유와 빛을 주소서, CLSK, 1988. pp83-84.)


 
4. 1897년 성탄주일- 정동 새 예배당에서 행한 일
 

   
▲ 한국 최초 개신교 교회 건물, 정동 새 회당 봉헌(1897.12.26. 성탄주일).-사진: 아펜젤러의 앨범에서

 
1897년 성탄주일은 정동교회의 새 회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한국 최초의 개신교 교회 건물의 완성이므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많은 이들이 함께 축하를 하였다.

 

   
▲ 한국 최초 개신교 교회 건물, 정동 새 회당 봉헌-대한크리스도회보 , 1권 48호 . 광무 1년(1897) 12월 29일. p1.

 
24일: 하오 5시에 교우들이 새 회당에 모여 기이한 그림을 구경할 것이니 문표 일천장을 미리 나누어 주어 교중 형제와 교외(敎外) 친구들을 다 청하여 찬미하고 기도한 후에 아펜젤러 목사가 잠간 논설하고 여러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연보하다. 후에 기이한 그림을 재미있게 잘들 구경하고 7시쯤 되야 파하였다.
 
25일: 이 날은 우리 구세주의 탄신이다. 오전 10시에 새 회당에 모여 찬미 기도하고 아펜젤러 목사가 10년 전에 전도한 논설을 다시 읽다. 그 후에 교우 노병선씨가 “구세주 탄신이 세상에 가장 큰 明日”이라는 내용으로 논설하고 12시가 되어 파하였다.
 
오후에 전날 연보한 돈으로 남녀 교우 중 빈한한 이들과 병든 자들을 차등 있게 분배하여 구제하다. 또한 저녁 7시에 배재학당 회당 앞에 등불을 수백개를 켰는데 그 중 제일 큰 십자가등 1개를 만들어 金字로 光朝東方 네 글자를 써서 공중에 높이 달고 아이들에게 과자를 주어 기쁜 날을 축하하였다.
 
26일: 이날은 주일날이라 정동 새 예배당에 모여 회당을 하나님께 받치는 예식을 행하였다. 이 회당은 사역한 지 두 해 반에 역사를 겨우 마쳤는데 회당의 길이는 70척이요 넓이는 40척이며 지붕은 함석으로 꾸미고 사면을 유리로 창을 하여 매우 명랑한지라 기간 역사에 든 부비는 8,100원 가량인데 그중에 조선 교우들이 연보 한 돈은 700여 원이다. 이날 장안의 여러 교회의 교사와 서국 부인들과 달성 회당과 동문안 회당에 있는 남녀 교우들이 일제히 모였으며 기뿐 마음으로 연보한 돈이 350여 원이라. 시란돈 목사(Dr. W.B. Scranton)가 연설하되 이집은 노래하는 집이 아니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 하고 회당 바치는 예식을 행할 때 찬미 기도하고 시편 112편을 읽다. 아펜젤러 목사가 시란돈씨에게 “우리가 이 집으로 장로사(시란돈목사)에게 드려 전능하신 하나님을 복사하고 숭배하기를 위하여 한 예배당으로 하나님께 바치게 하나이다”라고 말하고 회당열쇠를 드린즉 여러 교우가 함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보내고 기쁜 마음으로 서로 치하하니라.

 

   
▲ 첫 정동 새 예배당 봉헌 행사-대한크리스도회보, 1권 48호. 광무 1년(1897) 12월 29일. p2-3.

 
오후 3시에 서국 목사와 부인들이 하나님께 받치는 예식을 행하며 이 집은 곳 거룩한 전이라고 감사한 뜻을 서로 설명하니라.
 
오후 7시에 다시 모여 원두우 목사가 론설하는데 가림다(고린도) 전서 십삼 장을 읽은 후에 말씀하되 우리가 십년 전에 전도하러 조선에 나아와 본즉 조선에 예수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니 지금은 경향 간에 구세주의 제자가 만명에 가까오니 하나님의 은혜를 참 감사할 것이요 더욱 감사할 것은 이곳에 이러한 좋은 회당을 설립하야 하나님께 바친신즉 여기 모인 형제와 자매들은 “이 성전에 들어올 때만 구세주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각기 마음 속에 성전을 하나씩 지어두어 항상 구세주를 모시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기를 바라노라 하니”모든 사람들이 다 감사히 여기고 기뻐 하나님을 찬송하더라.
 
27일: 이날 하오 3시에 서울에 있는 미이미 교회 중 형제들이 일제히 새 예배당에 모여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달성회당에 계신 로부안께서 회장이 되사 성경을 보신 후 우리도 서로 사랑하기를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같이 하여야 가히 영혼을 구하겠다 하고, 본국 자매 중 한 부인이 기도하고 예수께서 여인들에게 특별히 은혜 주심을 말씀하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참 마음으로 감사할지라 그러나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씨의 뜻을 받들어 행할 것이요 교만한 마음이 없어야 장구히 은혜를 받겠다 하고 찬미가를 노래하니 사람마다 감사하고 기쁘다 하더라.
 
28일: 이날 하오 3시에 각처에서 교우가 전날같이 성전에 모여 기도할  목사 시란돈씨와 니덕씨와 제물포 목사 조원시씨가 모였는데 목사 아펜젤러씨의 말씀은 우리 교회가 처음에 정동에서 설립하여 각처에 전파하였는즉 오늘날 우리가 이곳에 모임은 한 집안 식구 같이 하라는 뜻이라 하고, 동문안 교우 박윤섭씨, 협판 윤치호씨, 달성회당 교우 이은승씨, 제물포 목사 조원시씨 등 정동에 새 회당 지은 것을 치하 하노라 하며 좋은 말씀으로 전도하였더라.
 
31일: 이날은 금년이 마지막 가는 날이오 청년회에서 또한 토론회로 모이는 날이라 남녀를 같이 학문으로 가르치고 동등으로 토론할 때 김연근씨, 조한규씨, 제슨씨, 윤치호씨 등이 여성들에 대해 난상 토론하였다. 또한 교중 부인들이 말씀하되 하와가 비록 죄를 지었으나 마리아가 아니면 예수께서 어찌 세상에 오셔서 죄를 대속하셨으리오 하여 형제들과 자매들이 일장 토론하였더라.(대한그리스도회보, 1권 48호. 광무 1년(1897) 12월 29일)
 

   
▲ 첫 정동 새 예배당 봉헌 행사-대한크리스도회보, 1권 48호. 광무 1년(1897) 12월 29일. p4.

 

   
▲ 정동교회 성도들(18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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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일 찬미가

 
벳니헴에 나신 예수
구원하러 오셨네
우리들은 명심하여
주를 찬양 합시다.
 
우리 주님 나실 때에
동방에 밝은 별이
박사들을 인도하여
우리 주를 뵈었네.
 
우리들은 그와 같이
성신의 능력을 얻어
마음으로 예수 뵙고
박사 같이 섬기세
 
박사는 귀한 보배로
예물을 드렸으나
우리는 기쁜 맘으로
몸과 혼 다 드리세
 
우리 동포 형제들은
맘으로 힘 다하여
하늘 있는 천사 같이
영원히 찬송하세
 
후렴
하나님이 예수를
예물로 우리에게 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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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찬미가는 이화학당 여학도 아희가 지은 것이다. 아희의 노래를 짓는 것이 불가능 한 듯 하나 구세주 강생하심은 남녀노유(男女老幼)를 물론하고 일체로 구원하심이오. 또한 오실 때 아기로 나셨으니 성탄일을 당하면 아희들 마음까지 기쁠 것이요. 기쁨을 인하여 찬미가를 지은지라. 구세주를 믿는 형제와 자매들은 옛적 박사와 같이 귀중한 예물을 하나님께 바치고 이 찬미가를 노래하기를 원하노라.(대한그리스도인 회보, 제2권 52호. 98호. 광무 2년 12월 16일. p2)
 

   
▲ 이화학당 어린 학생들!(1890년대)
   
▲ 헨리.G. 아펜젤러(노종해 역): H.G. 아펜젤러의 일기(1886-1902), CLSK 1988.
   
▲ 1885년 정동 한국 감리교 선교부 기지!
   
▲ H.G. 아펜젤러의 공동번역 신약성서(1900년 출판)
   
▲ H.G. Appenzeller의 휴대용 성찬기!
   
▲ 순직하기 직 전 H.G. 아펜젤러의 가족 사진(19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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