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짓기> 이재철, 홍성사, 2005

목회를 하는 입장에서 12월은 상당히 부담되는 시간이다. 교회적으로도 대강절과 성탄절, 송구영신예배, 내년 목회계획수립 등으로 분주함의 끝을 달리는 계절이다. 그것에 더해 당회와 구역회(교단마다 다른 명칭이 있겠지만)를 준비하는 시간이 결코 만만치 않다. 회무를 진행하다 보면 덮어 두고 지나갔던 일들이 들춰지는 경우도 있고, 일의 시시비비를 따지느라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충돌하고 그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일들도 부지기수다. 이런 다양한 이유로 올해만큼은 당회, 구역회를 대충 지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꼼수가 생각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당회와 구역회를 준비하다보면 깨닫게 되는 "은혜"가 있다. 이 시간이 교회를 위해 또한 목회자를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당회, 구역회가 없었더라면 지난 한 해 나의 삶을 이토록 치열하게 돌아보고 점검했을까? 어쩌면 이 시간은 목회자 스스로의 삶에 가장 유익한 '자아성찰'의 기회일 것이다. 냉철하게 한해를 돌아보고 부족함을 인정하고 보완하며, 잘한 부분은 격려하고 유지하는 시간을 통해 자기 스스로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노해 시인은 '걷는 독서'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세워야 할 것은 계획이 아니라 확고한 원칙이다" 깊이 공감되는 문장이다. 한 해를 돌아보면 수많은 계획들 속에 여러 행사를 진행했지만 과연 내 안에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원칙'이 있었나 돌아보게 된다. 

그런 차원에서 올해 당회와 구역회를 준비하다 우연히 책장에서 꺼내 읽게된 오래된 책 한 권이 있다. 목회 초년병 시절 읽었던 이채절 목사의 '매듭짓기'란 책이다. 문학도에서 경영인으로, 경영인에서 목회자로 다양한 삶의 변곡점을 살아왔던 이재철 목사는 이 책을 통해 크리스천의 삶과 믿음이 "매듭을 짓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다음은 이 책의 서문에 쓰여진 글이다. “줄기가 굵지 않은 대나무가 강한 것은, 다른 나무와는 달리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매듭을 지을 줄 알기 때문이다. 대나무의 강함은 높이가 아니라 매듭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만약 매듭을 결여한 대나무가 있다면 그것은 조금 크고 굵은 갈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부드러운 갈대는 꺽이는 법이 없지만, 매듭이 없는 대나무는 약간의 폭풍에도 쉬 꺾여지고 말 것이다. 믿음의 삶도 이와 같다. 건강한 크리스천은 진리의 매듭을 지닌 자다.”

이재철 목사가 말하는 대나무의 비유처럼, 신앙생활이나 목회에 아무리 열심이어도 매듭을 맺지 못한다면, 마치 매듭 없이 키만 큰 대나무 같아서 조그만 비바람에도 쓰러지고 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따라서 인생의 매듭짓기는 건강하고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제라 할수 있다. 한 해의 모든 사역을 매듭짓는 이 중요한 시기를 통해 이 지면의 독자들 모두가 한 단계 더 도약하고, 어떤 풍파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사람으로 세워져 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박상원 목사(이천만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