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경성(김인혜 해냄출판사)

올 가을이 한참일 때 서점에 갔다. 한국 근대 화가들에 대한 책이 눈에 들어 왔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명화를 만나다 - 한국근현대회화 100선>展 감상한 기억이 나서 얼른 책을 구매해서 바로 읽었다. 2013년에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이라는 전시회가 덕수궁에서 열렸다. 무심코 들린 전시회는 나에게 우선 친숙하게 다가 왔다. 왜냐면 학교에서 배운 화가 이름과 그들의 그림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신선했다. 친숙한 화가의 또 다른 그림도 볼 수 있어서였다. 나는 그 감동에 도록도 샀다.

조선일보와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주최한 전시는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장욱진, 유영국, 이인성, 도상봉, 김기창 등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의 대표작 100점을 선정하여 전시하였다.  이중섭의 '황소', 박수근의 '빨래터', 김환기의 '산월', 천경자의 '길례언니', 김기창의 '군작'등1920년~1970년대까지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57여명의 걸작 100점을 선보이는 전시였다. 해외 여행 중에 들린 박물관 미술관의 그림 중 아는 그림도 있어 기뻤지만 영어 이탈리아 불어 독어 등 외국어로 된 전시 설명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화가가 그린 미술작품에 한글 설명이 붙어 있기 때문에 그림을 감상하는데 너무 편했다. 아니 그림이 구상이든 추상이든 친숙했기 때문에 편했다. 나는 도록에 수록된 100개의 작품을 스캔하여 설명과 함께 동영상도 만들어 일부 지인들에게 보냈다. 이런 차에 '살롱 드 경성'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살롱 드 경성'은 국립현대미술관의《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이중섭 백년의 신화》《내가 사랑한 미술관》《윤형근》등 블록버스터 전시를 기획했던 큐레이터 김인혜가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정리한 책이다. 2021년부터『조선일보』에 연재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동명의 칼럼을 수정, 보완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다. 구본웅,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나혜석, 이쾌대, 이인성, 이성자, 장욱진, 권진규, 문신 등 주요 미술가 30여 명과 문인들의 우정과 사랑, 작품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혼란의 개화기와 암흑의 일제강점기를 거쳐, 전쟁과 분단이라는 가혹한 시대를 뚫고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던 그들의 생애는 슬프도록 찬란하다. 김인혜는 전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이자 미술사학자이다. 197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 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1930년대 중국 목판화 운동에 대한 연구 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며, 프랑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 와 협업한 블록버스터 전시들을 기획했고, 아시아 미술 연 구에 주력하여 《아시아 큐비즘》, 《아시아 리얼리즘》 등을 공동 기획했다. (교보문고)

목차
1장 화가와 시인의 우정 미술과 문학이 났을 때
01 곡마단이라고 놀림을 받았던 경성의 두 천재 _이상과 구본웅
02『조선일보』편집국에는 세기의 시인과 화가가 있었다. _백석과 정현웅
03 경성의 베스트셀러 시집을 함께 만든 시대의 선구자들 _정지용과 길진섭
04 신문사 사회부장과 수습기자로 만난 시인과 화가 _김기림과 이여성
05 성북동 이웃사촌을 넘어 소울메이트가 되다 _이태준과 김용준
06 그림 같은 시를 쓴 시인, 그리고 그가 가장 아꼈던 화가 _김광균과 최재덕
07 박완서의 소설 『나목』은 박수근의 삶에서 시작되었다 _박수근과 박완서
08 텅 빈 시대를 글과 그림으로 채우다 _김환기와 그가 사랑한 시인들
2장 화가와 그의 아내 뜨겁게 사랑하고 열렬히 지지했다
09 소박해서 질리지 않는 조선백자처럼, 삶을 예술로 만들다 _도상봉과 나상윤
10 '국민 화가' 이중섭을 길러낸 유학파 부부 화가 _임용련과 백남순
11 아내와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미치지 않았을까 _이중섭과 이남덕
12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와 그의 삶을 지지한 아내 _유영국과 김기순
13 서로가 존재했기에, 마침내 완성된 우주 _김환기와 김향안
14 찬란히 빛나던 낮의 화가, 그보다 더 영롱하던 밤의 화가 _김기창과 박래현
3장 화가와 그의 시대 가혹한 세상을 온몸으로 관통하며
15 󰡒탐험하는 자가 없으면 그 길 영원히 못 갈 것이오󰡓 _나혜석
16 일제강점기 독일에서 한류의 씨앗을 뿌린 망국의 유학생들 _이미륵, 김재원, 배운성
17 전쟁이 할퀸 중국의 도시 풍경을 따듯한 시선으로 그리다 _임군홍
18 격랑의 시대 수많은 걸작을 남긴 한국의 미켈란젤로 _ 이쾌대
19 러시아에서 성공한 초상화의 대가, 죽어서야 고국의 품으로 _변월룡
20 누가 이 천재 화가에게 총을 쏘았는가 _이인성
21 그럼에도 삶은 총체적으로 환희다 _오지호
4장 예술가로 살아갈 운명 고통과 방황 속에서 만난 구원
22 전쟁의 트라우마를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리며 이겨내다 _ 이대원
23 절대 고독 속에서 그림에 모든 것을 소진해 버린 화가 _장욱진
24 그의 산에는 청년의 우울, 장년의 패기, 노년의 우수가 있다 _박고석
25 경계의 미학, 모순과 불확실성을 받아들인 화가 _김병기
26 헤어진 세 아들을 향한 그리움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다 _이성자
27 󰡒세상에 잠시 소풍 나온 아이가 죄 없이 끄적여놓은 감상문󰡓 _백영수
28 제주의 자연 속에서 존재의 근원을 탐색한 '폭풍의 화가' _변시지
29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구한 한국 근대 조각의 거장 _권진규
30 노예처럼 일하고 신처럼 창조했다 _문신

작가가 선정한 화가들 중에 이상과 구본웅, 김기창과 박례현, 그리고 장욱진에 대하여 책에 있는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화가와 시인의 우정 그리고 미술과 문학이 만났을 때라는 소제목의 첫 화가와 시인으로 구운봉과 이상을 선정하였다. 저자는 화가인 구본웅을 설명하면서 이상과 함께, '곡마단이라고 놀림을 받았던 경성의 두 천재'라 하였다. 이 둘은 괴짜이면서 천재이다. 구본웅(1906~1952)은 <친구의 초상>이라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고 2016년 홍익대 미대 입시 면접 문제에도 이 작품이 등장한다. 구본웅의 부친은 천도교도였으며, 손병희 선생의 비서였던 구자혁이다. 개벽의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모친은 구본웅이 태어나지 얼마 되지 않아 운명을 달리해 새 엄마인 '변동림'의 언니 밑에서 컸다. 어릴 적 사고로 평생 척추 장애인으로 살게 된다. 변동림은 훗날 이상의 아내가 되었고 이상이 죽고 난 후 김향안으로 개명한 후 김환기와 재혼한다. 김환기의 작품은 한국화가 작품 중 최고의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구본웅은 동병상련(이상도 모친이 일찍 돌아가서 큰아버지 밑에서 자람)으로 이상과 어릴 적 매우 친하였다. 이 둘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장애가 있던 구본웅은 당시 명문인 경성고등공업학교를 못 들어가고 부유했던 집안 덕에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 그의 그림은 일본 재야에 널리 알려 졌으며 1933년 귀국하게 되었고 이상이 도쿄로 떠날 1936년까지 약 3년 동안 늘 붙어 다녔다. 이런 모습을 이상만이 <이상과 구본웅>이란 삽화에 잘 나타내었다. 

▲ 이승만, <이상과 구본웅>, 풍류세시기 중앙일보 삽화(1977)

'덥수룩한 머리와 창백한 얼굴에 숱한 수염이 뻗친 이상과 꼽추인 데다가 땅에 끌리는 인버네스를 걸친 구본웅'은 장안 거리의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상은 종로에 다방 '제비'를 차렸고 여기에 이상의 작품과 구본웅의 작품이 걸려있었다고 한다. 그 중 구본웅의 <인형이 있는 정물>은 당시 파리에서 가장 핫했던 미술 잡지 'Cahiers d'Art'가 목각 인형과 함께 콜라주 하듯 겹쳐 놓은 정물화였다. 
이 책에서 구본웅을 소개한 첫번째 작품은 〈친구의 초상〉으로 돌아가 보자.  

▲ 구본웅, <인형이 있는 정물>, 1937, 리움미술관

▲ 구본웅, 〈친구의 초상〉, 1935, 국립현대미술관

〈친구의 초상〉은 구본웅의 친구인 시인 이상의 초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어릴 적 부상으로 평생 꼽추로 살았던 그는 사회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식이 강했던 이상과 우정과 예술관을 공유하는 특별한 관계를 가졌다. 당시 구본웅은 조선의 문화를 위하여 사람들이 미적 교양을 쌓아야 하고 기초를 다지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믿었으며 많은 이들과 교류하였다. 그러한 취지에서 구본웅은 문학 동인지인 구인회를 후원하여 1936년 구인회의 기관지인 『시와 소설』을 발간하였고 이때 이상은 편집을 담당하였다. 그 자신이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던 화가였기에 구본웅은 예술가라는 사회의 변방인 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서 저항적 시어를 구사했던 시인 이상을 더 잘 이해하고 서로 예술적 교감을 이룰 수 있었다. 이상의 염세적이면서 파격적인 시와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대담한 필치와 어두운 분위기로서 이상의 성격과 예술관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개성을 중요시했던 표현주의의 영향 아래 대상을 간략하게 처리하는 분방하고 힘센 붓질, 대담한 생략, 푸른색의 전체적인 배경 속에서 드러나는 붉은 색의 대비는 그림 그 자체, 나아가 주인공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면서 어딘가를 골똘히 바라보는 인물은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반항적인 예술관을 펼쳤던 이상의 성격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파격적인 작품은 대상의 외면보다는 내면세계를 드러내고자 했던 화가 특유의 표현주의적인 예술관에서 비롯되었다. <명화를 만나다 - 한국근현대회화 100선> 도록 중
이 책에선 구본웅과 이상과의 관계를 '천재들의 얼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라는 설명으로 끝낸다. 왜냐면 구본웅의 외손녀는 세계적 발레이나 인 강수진이다. 그리고 앞에 언급은 하지 않아 지만 구본웅의 또 다른 친구인 소설가 박태원(월북 작가)은 딸과 영화를 보기 좋아 했는데 그 딸의 아들이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석권한 봉준호 감독이다. 이 모든 이야기가 천일야화처럼 끝이 없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천재 예술가들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 지는 생산물은 우리의 유전자로 지켜야 하며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문화유산임을 강조하면서…

저자는 '화가와 그의 아내 뜨겁게 사랑하고 열렬히 지지했다'라는 소주제 속에 '찬란히 빛나던 낮의 화가, 그보다 더 영롱하던 밤의 화가'라고 김기창과 박래현을 소개하였다. 우리는 '운보 김기창'이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이 많을 것이다. 청각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자로서 말이다. 김기창은 1913년에 태어났고 장티푸스에 걸려 청각장애가 생겼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한국의 최고의 화가로 성장했다. 김기창은 한국의 자연과 풍속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군마도>는 김기창을 대표하는 그림이다. 김기창은 뛰어난 기량의 화가로서 특히 동물화의 일인자였다. 약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화면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진하는 말들의 힘찬 운동감이 압권이다. 

▲ 김기창, <군마도>, 1985 국립현대미술관

 
김기창의 필사적인 노력이 있었겠지만, 여기선 뒤에 가려진 두 여인, 어머니와 아내인 화가인 박래현이라는 동반자가 있었기 때문에 김기창이 최고의 화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김기창의 인간승리에는 한윤명이란 어머니가 있다. 그는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화가 나혜석, 의사 허영숙(소설가 이광수의 아내)과 동기 동창이다. 매우 지적인 그녀는 미국 유학을 포기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아들 때문이기도 하였다. 결국 김기창은 어머니에게 평생 미안한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가산을 탕진한 남편, 8명의 자녀를 키워야 하는 부담 속에서 특수교육이란 것이 없었던 때에 한글과 일본어를 가르쳤다. 세상의 전부였던 어머니와 생을 달리 하게 된 김기창은 화가 김은호에게 2년 정도를 그림을 배운 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게 되었다. 어머니 친구인 나혜석은 󰡒기창 군의 그림에는 돌아가신 어마니의 넋이 깃든 것 같다󰡓라고 했다. 1943년 서른이 된 김기창은 일본 유학을 다녀온 화가 박래현과 만나 1946년 결혼을 하게 된다. 박래현은 니혼여자미술학교에 재학 중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은 수상하고 잠시 머무를 때 김기창을 만난 것이다. 세간에는 '장애 화가'와 '엘리트 여성' 만남이 대서특필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박래현의 선택이다. 그저 간단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와 결혼하면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예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였다. 결론적으로 박래현의 선택은 옳았다. 그늘에서도 스스로 빛이 되었던 것이다. 1947년부터 거의 2년에 1번씩 부부전을 열었던 것이다. 부부전은 해외 까지 퍼져 나가게 되었다. 박래현이 생활하는 동안 장애는 현실로 다가왔다. 4 자녀의 양육 그리고 끊임없는 가사일 그리고 남편의 의사소통의 보조 역할로서 고된 삶을 살았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김기창에게 어눌하지만 말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했다. (나도 전에 TV에서 김기창이 어눌하게 인터뷰하는 장면을 본적이 있다) 박래현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노력하여 <노점>으로 1956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통령을 받는다. 그의 작품은 한국 회화의 현대화에 기여했다고 한다. 
  

▲ 박래현, <밤과 낮>, 1959, 국립현대미술관

<밤과 낮>이야 말로 그녀의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즉  김기창이 조명을 받는 낮이라면, 밤에 자기의 영역을 개척하는 자기의 모습을 이중생활으로 표현하였다. 그녀는 매번 젊어졌다. 현재에 안주 하지 않았다. 해외여행에서 얻은 영감을 자신의 작품에 표현하였다. 

▲ 박래현, <영광> 1966-1967, 국립현대미술관

이집트 여행에서 얻은 영감을 삼색으로 태양, 인간의 피, 시대의 신중성을 <영광>이란 그림에 표현하였다. 
김기창은 그녀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내의 유학길을 터주었다 너무 무리했는지 1976년 타계한다. 김기창에게 청천병력이었다. "하늘이 허락해 준다면 내 목숨을 당신께 넘겨주고 싶었소"라고. 김기창은 그녀의 사후에도 꾸준히 그녀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나도 작년에 그녀의 전시회를 다녀왔다. 물론 남편이 기획한 것은 아니지만. 박래현은 대접 받기에 충분한 화가이다. 나도 동감하기에, 책에는 도판이 없지만 내가 좋아 하는 그림을 이 독후감에 넣고 싶다. 
 

▲ 박래현, <노점>, 1956, 국립현대미술관

〈노점〉은 대상을 다각도에서 보고 3차원의 입체를 2차원의 면 단위로 분할하여 다시 재구성한 작품이다. 1950년대 이후 전통 수묵채색화단은 일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서구 모더니즘의 표현양식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주제에 있어서는 전통을 재현하거나 혹은 일상의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고답적인 특징을 떨치고자 노력하였다. <노점>은 박래현이 남편인 운보 김기창과 함께 6․25전쟁 당시 친정인 군산에서 피란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그린 그림이다. 전쟁의 여파로 힘들고 고된 생활을 하면서 시장으로 나오게 된 여인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어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으로 박래현은 1956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1950년대 운보 김기창과 박래현은 작품의 경향이 거의 비슷하지만 박래현의 작품은 대상을 가늘고 길게 늘어뜨림으로써 형태감에 대하여 좀 더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뒷골목에 늘어선 노점의 여인들의 모습은 건물과 함께 수직적으로 늘어서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이러한 수직성은 작품의 느낌을 더욱 동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여기에서 일부러 피부색을 조금 더 짙게 처리한 점은 작품을 이국적으로 보이게끔 만드는데 이러한 얼굴 표현은 1930년대 향토색 추구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명화를 만나다 - 한국근현대회화 100선> 도록 중

소제목 '예술가로 살아갈 운명 고통과 방황 속에서 만난 구원' 속에 '절대 고독 속에서 그림에 모든 것을 소진해 버린 화가'라고 장욱진(1917~1990)을 소개한다. 장욱진은 이중섭과 같이 너무 친숙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주위에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술가가 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은 환쟁이 였다. 충남 연기군 대지주 가문에서 태어났다. 경성사법학교부속보통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공부를 잘해 경성제2고보에 입학했다. 유영국, 이대원도 이학교 출신이다. 조선역사를 왜곡해서 가르치는 일본 선생에 항의하다가 의자를 들고 있는 벌을 받는데 다른 학생은 슬그머니 내렸지만 선생이 내리라고 하기 전까지 장욱진은 초인적으로 버텼다. 그러고 나서 냅다 의자를 일본인 선생 앞에 던지고 학교를 자퇴한다. 그리고 와서는 그림만 그리니 호랑이 같은 고모에게 혼났다.(부친이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고모와 함께 서울에서 생활) 고모의 가슴은 억장이 무너지는 듯 하였다고 한다. 장욱진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고모는 󰡒저 아이는 바보 아니면 성자일 거야󰡓라고 말 했다. 이후 장욱진은 성홍열에 걸려 수덕사에 요양하고 있는데 이때 전설적인 화가 나혜석을 만난다. 나혜석은 장욱진을 격려해주고 칭찬해 주었다. 장욱진은 1983년 조선일보 주최 전국학생미전에서 중등부 특별상을 받게 된다.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공기놀이>이다. 

▲ 장욱진, <공기놀이>, 1938, 국립현대미술관

집모퉁이에서 공기놀이하는 이이들과 이를 부러운 듯 바라보는 아이 업은 소녀가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자신의 집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이 수상으로 고모에게 인정받게 되고 상금으로 고모에게 비단치마 선물을 해주었다. 장욱진은 국사학자 이병도의 장녀 이순경과 결혼하고 대학교도 졸업하여 국립박물관이라는 직장도 다녔다. 6.25가 터지고 힘겨운 시절을 거치면서 이중섭과 마찬가지로 처자식만 부산 큰댁에 머물게 하였다. 정작 본인은 먹을 게 없으니 벌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이때부터 장욱진을 술과 사투를 벌리게 된다. 초조와 불안을 떨치기 위해 술을 마시면서 자신을 자학하였던 것이다.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때에 장욱진은 홀로 조부모가 사는 고향 충청도 찾는다. 마음의 평온을 얻었을까 위대한 작품이 탄생하였다. 

▲ 장욱진, <자화상>, 1951, 장욱진미술문화재단

혼란 속에서도 벼는 자라고 새들이 날아가니, 화가는 계속 길을 걸어갈 힘을 얻을 것이다. 농경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화가의 프록코트는 그가 결혼식 때 입었던 옷이다. 이 그림은 14.8X10.8센티미터의 작은 작품이다. 
장욱진은 고독을 느꼈지만 그 고독은 완전 고독이기 때문에 고독하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숫돌에 몸을 가는 것 같은 소모"로 자신을 철저한 고독 상태로 몰아갔다. 장욱진의 아내를 보살 같다고 했다. 그 보살은 캠퍼스에 밤낮없이 몰두하는 장욱진을 옆에서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 장욱진, <진진묘>, 1970,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사진 김종일, 갤럭시노트 23, 2023년 장욱진 회고전)

1970년 불경을 외는 부인을 보더니 덕소 화실로 내려가 일주일간 술도 끊고 아내를 금동불 같은 보살로 표현한 '진진묘'란 작품을 남겼다. 
장욱진의 그림에는 까치라는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이중섭에게 황소가 있다면 장욱진에겐 까치가 있다. 마을 주변을 낮게 날며 세상 사람을 관찰하는 이 작고 영리한 새를 좋아했다. 

▲ 장욱진, <까치>, 1958, 국립현대미술관

앙증맞은 까치 한 마리를 남기기 위해 장욱진은 철저한 고독 즐기고 과 치열한 내면세계와 소통하였다. 도무지 귀엽지 않고 오히려 아프고 처절해 보인다. 자신의 육신을 다 써버린 장욱진은 1990년 12월 세상을 떠난다. 마치 죽음을 예견한 듯 사망한 그해 <밤과 노인>이란 작품을 남겼다. 

▲ 장욱진, <밤과 노인>, 1990,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주변의 풍경은 거들떠보지 않고 수염 난 흰옷의 노인이 유유히 하늘로 날아오른다. 
인생의 허무함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그래서 작고 여린 것에의 소중함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장욱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장욱진은 가족, 해, 달 강아지 등을 소재로 유화 800여점, 그리고 매직 판화 등을 합치면 총 1,200여점에 이른다. 나는 장욱진 그림 중에 <가로수>를 좋아 한다. 이 책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그의 순수하고 동화적인 느낌이 좋아 추가 해본다. 

▲ 장욱진, <가로수> 1978년,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장욱진의 작품세계는 그가 머물렀던 장소를 기점으로 하이 바뀌기만 기법으로는 전업화가로서 본격적으로 작업하던 1972, 73년 무렵부터 새로운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유화물감으로 겹겹이 바른 질감이 사라지고 유화물감으로 그렸다고 하더라도 전통산수화의 담묵적인 표현 효과와 여백의 공간처리, 붓의 획일성이 강조됨에 따라 전통적인 수묵화 분위기를 자아내게 되었다. 더욱이 1975년경부터 나무의 형태 역시 변화하는데 기존의 둥근 형태에서 점차 선적인 요소가 강조되거나 나무가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특징은 그가 서양미술과 동양미술의 구분을 배제하고 양쪽의 장검을 취하여 자신만의 양식으로 만들어나가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가로수〉는 그의 작품 중에서 1970년대 후반기의 특징을 갈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캔버스 천의 직조가 드러날 정도로 물감은 묽게 처리되니 마치 캔버스 천을 염색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러한 표현은 덕소 시절 후반부터 시도했던 수묵화의 영향으로 짐작되며 나무, 집, 소는 자유로우면서도 속도감 있게 그려졌다. 화면 구성에 있어서도 이 작품은 휘청거리는 나무 위에 집을 그린 독특한 화면을 보여주고 있어 그의 작품이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고 있음을 보이주고 있다. <명화를 만나다 - 한국근현대회화 100선> 도록 중
우리나라 노래가 듣기 편하고, 우리나라 음식이 먹기 편하듯이 우리나라 그림이 보기 편하다. 외국 유명 화가의 그림도 중요하고 감상하기 좋지만 우리의 그림과 화가, 더 넓게는 우리 예술인 그리고 그들의 성과물을 더 가까이 하고 사랑해야만 할 것 같다. 특히 문자로 된 소설, 시는 전체를 읽어야 그것에 대한 느낌을 알 수 있다(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즉각적 느낌을 갖게 한다. 시각은 인간의 감각(촉각, 미각, 후각, 시각, 청각)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의 70~8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 만큼 시각은 󰡒seeing is believing󰡓처럼 어떻게 잘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개인은 개인의 감각을 통한 박물관을 갖고 있고 그 감각의 박물관에 자신의 삶과 사고를 저장하고 있다. 만약 나만의 시각 박물관이 있다면 한국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는 나만의 박물관을 갖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주 보고 느껴야 할 것이며, 공부해야 아는 만큼 볼 것이다. 본 독후감에서는 아주 간략하게 4명의 화가를 소개하였지만 나만의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이가 있다면 <살롱 드 경성>을 권하고 싶다.  

김종일 ((주) 비앤에이치웍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