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 이어령, 포이에마, 2014)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어령님의 첫 번째 영성문학 강의입니다. 겉표지에는 ‘평생 문학을 사랑하고 공부해 온 이어령님이 다섯 편의 소설에서 찾은 인생의 길, 생명의 길’이라는 설명이 있어 이 책의 내용을 짐작하게 합니다. 저자는 소설(小說)에서 소(小)자가 들어간 이유를 ‘소인(小人)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에는 왕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면, 신약에는 창녀, 세리 그리고 이름 없는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저자는 다섯 편의 소설을 통해 우리를 영성 순례의 길로 안내합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한 책은 망망대해에서  호랑이와 함께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 소년의 표류기를 담은 캐나다 소설가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입니다. 227일 동안이나 작은 구명보트 위에서 벵골 호랑이와 공생하면서 살아나온 인도 소년을 통해 생명의 민낯을 보게 됩니다. 

소설의 이야기는 인도의 정치적 상황이 나빠지면서 사업에 위기감을 느낀 파이의 아버지는 동물원 문을 닫고 캐나다로 이주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태풍을 만나 난파합니다. 결국 아버지, 어머니, 형, 식구들은 다 죽고 파이만 겨우 구명보트에 오릅니다. 구명보트에는 벵골 호랑이 한 마리와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이 있었습니다. 얼룩말과 오랑우탄이 차례로 하이에나에게 잡아먹히고, 하이에나도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이렇게 해서 열여섯 살 소년과 커다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파이는 구명보트 안의 많지 않은 식량과 장비를 통동원해 태평양 한 가운데서 호랑이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고자 사투를 벌입니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물고기를 낚아 호랑이에게 던져주기도 합니다. 참을 수 없는 목마름과 허기, 따가운 햇볕, 끔찍한 폭풍을 경험합니다. <파이 이야기>로 번역된 제목은 <Life of Pi>입니다. 이야기가 아닌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파이가 227일 동안 타고 있던 보트는 구명정(life boat)입니다. 생명의 보트, 생명의 조각배인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생명과 함께 ’목마름‘이 등장합니다. 구명보트에서 끝없이 물을 찾고 똑같은 목마름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호랑이와 물을 나눠 마시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은 생명을 위해 굶주림과 목마름을 해결하는 과정입니다. 저자는 <파이 이야기>는 종교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생명 이야기이고 영성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조난 신호를 못 보고 그냥 지나쳐버린 유조선 앞에서 파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정말로 사랑해. 사랑한다. 지금 네가 없다면 난 어째야 좋을지 모를 거야.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 못 견뎠을 거야. 희망이 없어서 죽었을 거야. 포기하지 마, 리차드 파커. 포기하면 안 돼. 내가 육지에 데려다줄게. 약속할게. 약속한다구!” 싸우기도 하고 서로 경계하기도 하지만, 고맙다. 사랑한다. 너 때문에 살았다고 말합니다. 두려움이 완전한 사랑으로 변합니다. 호랑이 혼자 보트에 탔으면 죽었을 겁니다. 소년 혼자 탔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호랑이와 함께 있어 살 수 있었다는 역설 속에서 생명의 역설을 발견합니다. 

이기철(응암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