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국이 전쟁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여력이 없다고도 한다. 지난 주간 바이든 대통령이 상정한 안보 예산을 상원에서 부결시켰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가까스로 우세를 점한 상원마저 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속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셈이다. 이날 상정된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액은 500억 달러였다. “푸틴이 승리하게 놔둘 수 없다”는 대통령의 호소는 먹히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러시아 쌍뜨뻬쩨르부르그에 살고 있는 고려인 아셀 님은 지난 봄에 러시아 군대에 소집된 오빠가 우크라이나 제3전선에 있다면서 어머니의 깊은 근심을 전하였다. 오늘 통화한 남편은 50세에 다시 군인이 된 처남이 지금 우크라이나 돈바스에 있다면서 근황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제2전선으로 전쟁터로 다가간 셈이지만, 예비역이니 그리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직접 전투에 동원되는 사람은 직업적 용병이기 때문이다. 전쟁터에도 계약직이 맨 앞줄에 서있다.

아셀 님이 대표로 일하는 한글학교문화센터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고려인은 물론 러시아 사람과 우크라이나 사람이 섞여 있다. 러시아 사람치고 우크라이나에 친척이 없는 사람이 드믈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두 나라는 서로 적이 될 수 없는 친척국가이며, 전쟁터로 불려 나간 군인의 죽음이든, 전쟁 부산물로서 취급받는 민간인의 희생이든 결코 남의 이야기일 수 없다. 올겨울 추위가 무섭게 들이닥치기 전에 휴전협정 소식을 기대한다.

겨우 7일간 중단되었던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 전투가 다시 재개되었다. 너무 짧은 휴전 기간은 계속 이어가지 못하였다.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하는 UN 결의안은 안보리 이사국 15국 중 열세 나라가 찬성했으나 상임이사국 미국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영국은 기권하였다. 세계의 경찰을 자임한 그들이 계속 이어가려는 전쟁들의 본질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한국전쟁 개전 이후 지난 73년 동안 한미연합사령관이 쥐고 있는 한국군의 전시 작전통제권에 대해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

대림절은 평화를 위한 기도가 더욱 간절해지는 시기이다. 아기 예수는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불리는 캐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맞이하는 평화와 기쁨을 노래한다. ‘새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캐롤인데, 아기 예수를 기쁨과 향기를 주는 꽃으로 비유하여 온갖 새들이 반긴다는 내용이다. 이를 첼로 곡으로 편곡한 음악가는 파블로 카잘스(1876-1973)이다.

세계적인 첼리스트인 카잘스는 당시 유럽 파시즘의 광풍으로 인해 전쟁터가 된 자기 조국 스페인을 그리워하면서도,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그가 스페인을 암흑기로 만든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장기독재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프랑코는 1936년 스페인 내전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 1975년 죽을 때까지 38년 동안 종신총통으로서 국민 위에 군림하였다. 프랑코는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파괴한 죄로 그가 묻혔던 ‘전몰자의 계곡’에서 이장(移葬)을 요구받았다.

1971년 카잘스는 UN을 방문하여 연주하였는데, 이를 스페인의 비참한 현실을 알리는 기회로 삼았다. 세계연합의 무대에서 카잘스는 ‘새의 노래’로 연주를 마쳤다. 그가 연주한 많은 곡들 중에서 ‘새의 노래’는 가장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기억으로 남았다. 본래 ‘새의 노래’는 어린 카잘스가 고향에서 부르던 민요였다.

카잘스는 모든 연주회 레파토리 끝을 늘 ‘새의 노래’로 마무리했다. 그는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내가 태어난 고향의 민요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새의 노래’라는 곡으로 카탈루냐의 새들은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면 ‘피~스 피~스’라고 노래합니다.” ‘새의 노래’에서 새는 ‘peace peace’라고 노래한다. 마치 고요한 밤에 울려 퍼진 천사의 노래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눅 2:14)를 연상케 한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산타 테레사에 산타클로스 학교가 있다. 해마다 50명 남짓 예비 산타클로스를 양성하는데 졸업생들은 쇼핑몰이나 개인 행사에서 산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산타 학교의 사명은 “평화, 사랑, 행복, 애정, 부드러움, 포옹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산타 학교 커리큐럼에는 당연히 캐럴 가르치기도 포함된다. 그들은 ‘선한 어르신’이란 졸업장을 받아 평화를 전하는 천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아직 평화는 멀고도 먼데, 어느새 성탄이 가까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