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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
이 혁  |  의성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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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12월 02일 (토) 02:12:55
최종편집 : 2023년 12월 02일 (토) 02:41:42 [조회수 :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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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

(<자캐오에게 말을 건네다>, 토마시 할리크, 분도풀판사, 2016)

  대림절기가 다가왔다. 기다림의 시간이다. 이 절기는 우리들 마음에 두 가지 심상을 그려낸다. 칠흑같은 어둠과 같은 현실과 그 현실을 가르고 비추는 한 줄기 소망의 빛이다. 2천년 전 로마의 압제 속에 신음하던 민중의 한숨이 지금도 여전히 들려오고 있다. 그래서 우린 또 기다린다. 

  기다려 본 자는 안다. 기다림 안에 품고 있는 간절함과 애틋함과 일면 초조함을.. ‘무엇을 기다리는가’는 우리네 인생에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좌절과 절망을 경험한 이들은 다시금 딛고 설 한 줌의 희망을 기다릴 것이다. 죽음의 상황의 처한 사람이라면 구원과 회복을 기다릴 것이다. 만약 기다림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그의 종말을 의미한다.

  기다림의 절기에 난 체코 신학자 토마시 할리크의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을 다시 펼쳐 든다. 물론 이 책의 기다림(인내)과 대림절의 기다림(소망)의 의미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믿음과 희망에 가닿기 위한 지난한 과정을 지나는 우리의 신앙의 순례는 소망과 인내로 점철되어 완성되어가는 것이 아니던가. 

  이 책은 2014년에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 상을 수상한 신학자 토마시 할리크의 대표작으로, 예수님과 자캐오의 만남 이야기를 통해 ‘믿음과 의심’에 관한 주제를 다룬다. 이 책 표지엔 “신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라고 쓰여있다. 하나님을 믿었지만 생을 뒤흔드는 절망의 경험들을 통해 인생의 파고를 겪으며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그것을 넘어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한 기존 신앙인들에게, 또는 아예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는 무신론자들에게 저자는 ‘신앙’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안내한다. 

  누가복음 19장에 등장하는 키 작은 자캐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았던 세리였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이였다. 그는 예수에게 호기심은 있었지만 간절함에 군중을 헤치고 목청껏 소리 지르며 예수께 나아갔던 여느 병자들처럼 열정적이지 않았고, 그저 돌무화과나무에 조용히 올라 멀찍이서 예수를 바라보던 소심한 이였다. 그렇게 누구도 찾지 않던 자캐오에게 예수께서 다가가셨고 이에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하지만, 자캐오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구원을 감격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자캐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는 신앙인일 수도 있고, 타종교인일 수도 있고, 무신론자일 수도 있다. 우리 시대에는 이런 수많은 자캐오가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들에게 예수님처럼 말을 건네야 한다.

  저자는 책머리에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나도 간혹 하느님께서 침묵하시고 멀리 동떨어져 계시는 것 같은 느낌에 짓눌릴 때가 있다. 세상과 인생의 수많은 모순이 지닌 양면성은 숨어 계신 하느님을 설명하기 위해 ‘신은 죽었다’ 같은 말마디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나는 똑같은 이 체험도 달리 해석하고 ‘하느님의 부재’에 달리 접근할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느님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위한 서로 깊이 관련된 세 가지 인내가 있다. 이들은 각각 믿음・희망・사랑이라 불린다.”

  저자는 의심 또는 불신앙과 신앙의 차이를 ‘인내’라고 생각한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침묵을 대면하는 인내의 세 가지 얼굴이다. 인내는 곧 기다림의 시간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신비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옛 성인들은 ‘어두운 밤’, ‘구름 덮인 산’, ‘무지의 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런 의심의 시간들을 보내는 것은 뒤집어보면 열정적으로 신을 찾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저자는 밝히고 있다. 오히려 전혀 의심하지 않고 확고하게 믿는 이들의 그 믿음은 진정한 신앙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주저하고 의심하는 모든 이들의 표본으로 자캐오가 서 있다. 
  “자캐오가 고질적인 개인주의자나 ‘아웃사이더’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열광의 무리에, 또는 분노의 무리에 줄을 서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그는 본능적으로 돌무화과나무 가지 속에 은신처를 찾는다. 교만해서 그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절대적 기준과 요구 조건에 견주어 한없이 부족한 자신의 ‘작은 키’와 큰 결함,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름을 불러준다면’ 자신의 사생활과 집착을 버릴 수 있고 기꺼이 버리려 한다. 그는 덥석 그 절대적 도전을 받아들고 자기 삶을 바꿀 것이다. 그러나 돌무화과나무 가지에 숨어 있는 이들에게 낯설거나 이질적이지 않은 사람, 그들을 업신여기지 않는 사람, 그들을 염려하는 사람, 그들 마음과 정신에 일어나는 일에 응답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캐오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

  우리 가운데 수많은 자캐오가 있다. 우리 세계, 우리 교회, 우리 사회의 운명은 이 자캐오들을 얼마나 얻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렇다.” (24쪽)
  이 땅의 수많은 자캐오들에게 건네는 이 초대장에 우리 모두 응해야 하지 않을까?

이 혁 목사(의성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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