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말한 '섬'은 바울로 일행이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난파선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상륙한 멜리데 섬이다. 거기서 석달 동안 겨울을 나고 출발하여 시라쿠사, 레기움, 보디올리를 경유, 드디어 목적지 로마에 이르렀다. 그 사이에 배도 탔고 걷기도 했다.

  그들은 멜리데 섬에서 로마까지 가는 동안 여러 경유지를 거쳤다. 그렇다. 길을 가는 것은 경유지를 거치는 것이다. 경유지마다 거기에 터잡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그곳은 경유지가 아니라 정착지다.

  인생 자체를 나그네길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뿌리내려 머물 장소가 없다. 비록 몸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 평생 한 집에서 산다 해도, 그의 삶은 날마다 새로운 경유지를 찾아 길을 떠난다.

  겉사람은 세월따라 낡아가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말이 그말이다.

  공간이동은 시간이동을 수반한다. 그들이 멜리데 섬에서 로마까지 가는 동안 최소한 열이틀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거리는 공간에만 있지 않다. 시간에도 있다.

  나그네 인생은 어김없이 시간을 이동해야 한다. 혹시 공간이동은 하지 않고 한 곳에 머물 수 있을지 모르나, 시간이동은 그럴 수 없다. 사람이 어찌하든 흐르는 게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어디를 거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러는 사이에 속절없이 늙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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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 주님, 모든 것이 변하며 끝없이 흐른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하고 살게 도와주십시오. 무엇을 움켜잡지 않으려고 애쓰는 대신, 제가 이 손으로 움켜잡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확연히 깨달아 알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좋은 것을 움켜잡으려 하다가 오히려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더이상 되풀이하지 않고, 이 몸이 늙어가고 있으며, 머잖아 마지막숨을 거두게 되리라는 사실을 기억하여, 매순간을 나그네답게 살아가도록, 주님, 불쌍한 저를 부디 도와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