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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도신경을 고백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윤형  |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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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11월 27일 (월) 23:19:32
최종편집 : 2023년 11월 27일 (월) 23:22:15 [조회수 :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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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도신경을 고백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 해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정용섭 옮김, 한들출판사, 2000

   
 

 아버지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감리교신학대학교 학부에 입학하고 난 뒤로부터 내 목표는 단 한 가지, 감신대를 벗어나는 거였다. 나는 목회를 할 생각도, 신학을 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은 적도 없었고, 특별한 소명이나 비전도 없었기에 하루빨리 이 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학교 생활이 재미있거나 신학이 재미있었다면 생각이 달라졌겠으나, 내가 감신대에 입학했던 2015년은 학내사태로 학교가 한참 시끄러울 때였다. 그리고 2016년에도, 2017년에도 학교는 늘 시끄러웠다. 그때마다 나는 학교와 몇몇 목사님들에게 크게 실망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도 어려운 일을 연달아 겪었고 사회적으로도 격동의 시기를 겪으면서 ‘이런 세상 속에서 대체 신앙과 신학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라고 회의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목회와 신학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인생이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지내다 보니 결국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내 마음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공존했다. 한편으로는 ‘젠장 결국 대학원까지 왔군. 하지만 대학원에 들어왔다고 꼭 목회나 신학을 할 필요는 없지. 수업은 대충 듣고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해봐야지’라고 생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왕 대학원까지 왔으니 전공 하나를 정해서 열심히 공부해보자. 그리고 논문도 써보자’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떤 전공을 공부할까 고민하다가 ‘신약학을 공부하자’로 결론내렸고, 1년간 신약학을 중점으로 공부하면서 바울의 ‘구원론’을 주제로 논문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운 좋게도 작년 2학기에 ‘로마서’ 세미나를 듣게 되었고, 그 수업의 기말페이퍼 과제로 로마서 5장에 나오는 구원론의 현대적 적용에 대해서 쓰고 있었다. 그런데 쓰다보니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인간과 다른 모든 것들은 피조물이다’라는 전제가 있었기에 가능한 진술이었다.

 하지만 이 진술 앞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다. 하나님은 정말 창조주인가? 오늘날 현대 과학의 발전은 점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진술이 허구였음을 밝혀주고 있지 않나? 창세기의 창조 설화는 오늘날 더 이상 통용될 수 없지 않나?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에게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

 이 의문이 해결되지 않자 바울의 구원론을 쓰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바울의 구원론 내용을 정리하고 쓰는 것은 할 수 있었으나, 그것이 오늘날 내 삶과 이 세계 안에 어떠한 유의미성을 갖는지까지는 나아갈 수 없었다.
 
 해결되지 않는 의문들로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때, 최태관 교수님과 함께 하는 스터디에서 판넨베르크라는 신학자를 태어나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때 내가 배운 것은 단지 판넨베르크의 생애와 그가 노을을 바라보면서 노을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꼈던 경험뿐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신학 공부를 하면서 무언가에 끌리는 느낌을 받았고 무언가에 고조되는 느낌이 들었다.

 스터디 이후에도 그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 도서관에 가서 판넨베르크의 책들을 찾아보았다. 그중에서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 해설󰡕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책의 초반부터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만났다.

“사도신경에 진술된 내용이 의심스럽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믿어 보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22)
“오늘날 상황은 악화되었다. 세상에서 하나님이 거할 자리는 더 이상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신학자들마저도 벌써 하나님의 죽음에 대해서 말한다. 기독교 전승에 놓여 있는 유일하게 확실한 거점은 사랑을 선포한 인간 예수인 것처럼 보인다.” (30)
“예수의 선포에서 볼 수 있는 대로 구원하는 그리고 용서하는 사랑에 대한 사신은 완전히, 그리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확신에 근거해 있다. 예수의 사신에서 이 하나님을 제거해버린다면 인간은 이 사신으로 인해서 오히려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없는 예수의 사신은 견고하게 유지될 수 없다.” (33)
“만약 하나님의 신성이 그가 모든 현실적인 것의 단초이며 또한 그가 없이는 모든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런 하나님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연에 놓여 있는 현실적인 것을 이해할 수 없으며, 아무리 올바르게 살펴본다고 해도 피상적으로만 묘사될 수 있을 뿐이다.” (54)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와 같은 문장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신학책을 보면서 가슴이 뛰었다. 판넨베르크는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들을 정확하게 짚어주었고, 이에 대한 설명을 굉장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풀어주었다. 이후 나는 판넨베르크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어 신약학에서 조직신학으로 전공을 바꾸었고, 논문 주제도 창조론과 구원론을 다루는 것으로 바뀌었다. 

 자연스럽게 논문에서 다루는 주된 학자는 판넨베르크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신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지평들을 보게 되었고, 앞으로 어떤 것을 공부하고 배워야할지를 차츰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전에는 추상적이고 초자연적으로만 느껴졌던 하나님이 역사적이고 역동적으로 활동하신다는 것을 강력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신학을 더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물론 내가 판넨베르크의 신학만이 절대적 진리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책과 판넨베르크를 통하여 내가 겪은 변화를 이야기할 뿐이다. 그러나 적어도 판넨베르크가 제기하는 문제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고민해봤거나 혹은 고민해 볼 문제들이기에 그의 주장을 살펴보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특별히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 해설>을 추천하는 이유는 우리가 매주 예배시간 때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숙고해보는 것이 일반 성도들의 신앙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사도신경에 담긴 의미도 알지 못하고 그저 습관적으로 외우기만 한다면, 이는 신앙고백이 아니라 공허한 진술 혹은 지루한 횡설수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윤형(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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